방송사에서 월드컵을 중계하는 것은 국민들의 볼 권리 차원에서 당연하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 3사 모두가 월드컵 중계를 집중 편성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시청자들에게는 볼 권리를 빼앗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월드컵에 매몰된 방송;
볼 권리와 볼 권리의 충돌, 절충안 없는 월드컵 중계가 문제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경기를 방송 3사가 함께 중계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어느 한 방송사이 독점하는 것보다는 형평성이 맞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 돌아가며 중계하는 방식이 아닌 모든 채널이 한국 경기를 중계하는 것이 불합리하게 다가오기는 한다.

방송 3사가 모두 한국전을 중계할 수 있었던 요인은 중계권을 방송 3사가 함께 구매했기 때문이다. 과거 방송 3사가 경쟁해 중계권을 사오던 시절에는 그럴 수 없었다. 당연히 경쟁으로 인해 중계권료가 상승하는 부작용도 있었다. 한때는 스포츠 중계권을 구매해 되파는 사업이 성행하던 시절도 있었다.

가령 100억에 중계권료를 구입해 국내 방송사에 1000억에 판매하는 형식이었다. 독점 중계권을 구입해 어쩔 수 없이 높은 가격에 살 수밖에 없는 조건들로 돈을 벌던 시대도 있었다. 방송 3사가 출혈 많은 경쟁을 하기보다는 공동 구입해 사이좋게 나누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은 그래서 자연스러웠다.

18일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대한민국 대 스웨덴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드리블하고 있다. Ⓒ연합뉴스

케이블 방송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프로야구도 지상파에서 중계가 되고는 했었다. 경기가 중계 되면 말 그대로 기존 드라마나, 뉴스 등을 정해진 시간에 보던 시청자들은 모든 권리를 방송사에 빼앗겨야 했다. 프로야구 중계로 시간대가 밀리거나 아예 취소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몇 년에 한 번씩 열리는 국제 경기야 그럴 수도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매일 경기를 하는 프로야구의 경우는 문제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 케이블에 스포츠 전문 채널들이 생겨나며 이런 중계 논란은 사라졌다. 매일 프로야구 중계는 하지만 이는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기 때문이다.

다매체 시대가 오며 지상파 3사에 대한 관심은 많이 줄었다. 더욱 휴대폰에 모든 권리와 지위를 내주게 되는 환경 탓에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과거처럼 TV를 통해 방송을 보고 소비하는 시대가 아니다. 휴대폰을 통해 방송 시청 경향이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와 같이 한 방송사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세팅해 볼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방송사 로고는 가려지고 콘텐츠만 존재하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는 의미다.

6월 19일 지상파 TV 편성표(네이버 화면 갈무리)

19일 오늘 TV 편성표를 보면 저녁 시간대 방송 3사의 채널은 모두 일본의 월드컵 첫 경기 중계를 한다. 왜 시청자들이 일본 경기 때문에 평소 보던 많은 방송들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일까? 한국 대표팀 경기는 방송 3사가 모두 중계하는 것까지 비난할 수는 없다.

국가 대항전 경기에서 자국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한 그 정도 노력은 시청자들도 감수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일본 경기를 방송 3사가 같은 시간대 모두 생중계를 할 이유가 뭔가? 그러한 편성은 과연 정당한가?

방송 3사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중계권료로 1200억 정도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보다 30% 이상 상승한 금액이다. 단순하게 방송사 한 곳에서 400억씩 지출을 했다. 이를 회수하는 방법은 방송을 통해 광고를 파는 것이다. 최대한 많이 방송해서 광고비로 중계권료를 회수해야 하는 것이 방송사의 책무가 되었다.

민영 방송의 경우 이런 경제 논리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 방송의 경우는 다르다. KBS의 경우 채널이 2개이다 보니 요령껏 나누기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과연 월드컵을 볼모로 일반 시청자들의 볼 권리를 빼앗을 권리가 그들에게 있는 것일까?

예선전이 끝나면 이런 편성도 감소할 것이다. 16강전부터 점점 경기 수는 줄어드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방송 3사가 경쟁하듯 모든 시간을 할애해 월드컵 중계에 나서는 것은 축구 팬들을 위한 서비스가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상술일 뿐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연합뉴스 자료사진]

FIFA는 32강 체제에서 64강 체제로 확대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 당장 중국이 이번 월드컵 광고에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지만 실력이 안 되어 참여를 못한다. 64팀이 월드컵에 나가게 될 경우 실력은 안 되지만 돈은 많은 국가들까지 참여가 가능하다. 이는 엄청난 수익 증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황금알을 낳은 사업이 될 수 있다.

방송 3사가 진정 축구 팬들을 위한 서비스를 앞세웠다면, 스포츠 채널에 편성하면 된다. 물론 중요한 한국전이나 결승 같은 경기는 지상파에서 방송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케이블 가입을 하지 않은 이들도 그 정도 권리는 누려야 하니 말이다.

국제적 스포츠 축제만 벌어지면 불거지는 이 볼 권리 논쟁은 이제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모두가 국제 스포츠 축제를 즐기지 않는다. 다양한 볼 권리를 무시하고 모두가 하나의 방송만을 보도록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다양한 선택지가 있음에도 지상파에 집중 편성하는 것은 케이블보다 지상파 광고 판매권이 더 비싸기 때문일 뿐이다. 손해 보는 장사를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지만, 이런 식의 편성 장악은 시대에 너무 뒤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스포츠를 좋아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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