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이후 전망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으니 얘기가 길어지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자유한국당이 반성도 하고 혁신도 한다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몰락한 보수정치의 재건은 쉽지 않으므로 앞으로 이번 지방선거의 구도가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안정적 다수를 차지하고 보수야당이 지리멸렬한 상황이 일시적인 것에 그칠 일은 아니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다만 이런 현상이 구조적 수준에까지 이른 것이냐에 대해선 따져볼 여지가 있다. 이번 선거를 ‘정초선거(foundation election)’로 볼 것인가를 놓고 여러 주장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다.

이번 지방선거는 ‘정초선거’였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핵심은 ‘정초선거’라는 개념을 어떻게 볼 것이냐 보다는 앞서 언급한대로 이번 선거가 유권자 및 정당 구조를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있다. 이번 선거를 ‘정초선거’로 보는 주장은 자유한국당이 다수를 유지하도록 해온 구조가 무너지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의 축이 새로 형성됐다고 보는 쪽에 가깝다. 이를 촉발한 것은 촛불시위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권의 선전이다. 특히 남북관계의 개선은 반공주의를 깨뜨려 고도성장 지향 및 영남 중심 지역주의의 붕괴와 함께 보수정치의 3대 기반을 모두 무너뜨렸다.

이런 설명에 일리가 있지만 이러한 변화가 영속적인 것이 될지는 따로 판단해야 한다. 그간의 사례로 볼 때 정치의 구조적 변화를 촉발하는 것은 통치 구조나 선거제도의 변화,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동, 전쟁 등에 의한 경제적 충격 등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3당합당은 민주화 이후 소수화 된 기득권의 대응이었다. 이 구조가 오늘날의 한국 정치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국 민주당의 경우 내전 이후 이념적 보수화가 촉진된 것은 남부 재건의 파국적 결과 때문이다. 그랬던 민주당이 오늘날과 같은 이념적 지향을 갖게 된 것은 잘 알려졌다시피 세계대전과 대공황의 와중에 실시된 뉴딜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촛불시위는 이와 같은 구조적 변화를 촉발했거나 수반하는 과정이었다고 보긴 어렵다. 이런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열린우리당이 참패했던 2006년 지방선거를 예로 드는 모양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08년 총선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야당이 된 통합민주당은 81석을 얻었다. 선거 직전 의석이 136석이었으므로 55석을 상실한 것이다. 지금 자유한국당의 상태보다는 나은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 때도 복구 불가능한 수준의 위기가 언급됐다.

그러나 바로 2년 뒤인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시의 제1야당은 재기하는데 성공했다. 야권의 성공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촛불시위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형성된 ‘반MB’ 전선이다. 두 번째는 ‘무상급식’이라는, 시대정신과 호응하는 정책구호가 야권의 대표 브랜드가 됐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요인은 참여정부 이후 사분오열돼있던 민주당계 정치 세력들이 이런 저런 일을 시도하며 통합을 모색할 수 있도록 했다. 민주통합당이 2012년 총선에서 127석을 회복하면서 2008년의 구조적 위기론은 자취를 감쳤다.

좀 더 가까운 예로 보면 2016년의 총선이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수도권의 더불어민주당, 호남의 국민의당, 영남의 새누리당(지금의 자유한국당)이라는 새로운 정당구도의 성립을 말했다. 그러나 이런 구도는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태세다. 이유는 역시 두 가지다. 첫째로 3당구도를 가능케 한 호남의 ‘전략적 선택’은 대선에서 더 경쟁력 있어 보이는 후보를 밀기 위한 판단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탄생하였으므로 호남은 더 이상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 결과 국민의당에 여당과 제1야당 양쪽에서 원심력이 강하게 걸렸다는 게 두 번째 이유이다. 안철수 전 의원이 너무 쉽게 보수야당의 노선을 선택하려 했다는 문제도 있지만 이 원심력의 근본적 동력은 구조적으로 고착화돼있는 양당제적 관성이라고 봐야 한다.

김성태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5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마치고 국민에게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며 사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점에서 보면 2020년이나 2022년에 보수정치가 다시 부활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번 지방선거와 앞서 언급한 2008년 이후 흐름의 유사성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보다는 요동치는 대중의 원한감정(ressentiment)이 반영된 결과라는 점에서 발견된다. 즉, 최근의 급격한 변화는 구조가 아니라 사건이 주도한 것이란 얘기다.

이 지면에서도 수차례 지적했듯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어떤 가치나 노선의 관철이라기보다는 기만적 행위를 지속하는 비정상적 권력을 하루빨리 제거하려는 욕망의 실현에 가까운 사건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앞서 글에서 지적했듯 이 사건의 영향 속에서 치러졌다. 따라서 앞서의 사례처럼 이후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느냐에 따라 유권자의 지향은 손바닥 뒤집듯 바뀔 수 있다.

물론 하기에 따라서는 현재의 구도가 구조적 차원으로 고정될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문재인 정권이 역대 그 어떤 정권보다도 성공적 마무리를 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의 여당이 10년 이상 장기집권을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세대를 넘는 장기집권은 사실상의 독재체제가 구축되거나 현실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정치가 해결하는데 지속적으로 성공해야 가능하다. 전자는 바람직하지 않고 후자는 집권세력이 지속적인 변화를 도모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양당 중심 대통령제 기반의 구조에선 이것이 쉽지 않다.

만일 정권교체가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라면 그때 대안으로 각인될 세력이 어떤 내용을 갖추고 있는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정치권 인사들이 말하는대로 보수정치가 혁신에 성공하고 전열을 정비해 ‘합리적 보수’라는 새로운 노선을 갖고 대안 세력으로 떠오른다면 최악의 결과는 아닐 것이다.

현재의 정치권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결과는 서구의 경우처럼 대중의 원한감정이 극우화된 형태로 돌출되는 것이다. ‘공정성’을 요구하는 대중의 목소리에서 이 길로 이어질지 모르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공정성에 대한 갈망은 민주주의와 시장논리의 결합이라는 근대 사회의 원리로 볼 때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이 갈망이 좌절될 때 사람들이 무엇을 요구하느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것은 사람들은 불공정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 평등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약육강식의 질서를 강화하는 시장원리의 확대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실질적 평등을 요구하는 길은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을 내면화한 상황에선 스스로 강자가 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방식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같은 ‘요구’도 결국은 정치의 효과인 셈이다.

서구의 경우 이런 요구가 소수자 및 난민으로부터의 분리 시도를 통한 정상성 회복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요즘 말하는 극우포퓰리즘이다. 인터넷이 세계만물을 통합하는 시대상 속에서 우리도 자유롭지 않다. 이걸 바람직한 미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을 자처하는 정치는 태평성대 속에서도 파국을 준비하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 실질적 평등의 달성이 가능하다는 사회적 신뢰가 만들어져야 하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들 역시 마련돼야 한다. 대안적 정치는 이런 조건을 스스로 만드는 속에서만 가능할 수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