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한국영화계를 돌이켜보면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겉으로는 한미 FTA 타결이 한국영화계에 드리운 암울한 징조의 시작으로 보였지만, 속은 이미 곪을 데로 곪은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한국영화계는 개봉작 110편이라는 허울 좋은 수치만이 유일한 상승 곡선을 그렸을 뿐이다.

작년 이월작 <미녀는 괴로워>가 올해 1월까지 대박을 터트릴 때만해도 한국영화계는 경쟁력을 갖춘, 스크린쿼터제 사수라는 ‘제 밥그릇 챙기기’에 연연하는 집단으로 보였다. <그 놈 목소리>가 300만을 돌파하고, 극장가의 최대 성수기 중 하나인 설 연휴에 <일번가의 기적>만이 250만을 넘기며 체면치례를 할 때도 상황은 그리 비관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니, 비관적으로 보려하지 않았다.

6월이 되자 비로소 위기감은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100억 이상을 투입해 송혜교를 앞세워 금강산을 유람하고 온 <황진이>는 한국영화를 위기에서 구해낼 구원투수였다. <황진이>의 제작사 씨네2000의 이춘연 대표는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하지만 쉽게 꺼질 불이 아니었다. 이미 불씨는 오래전부터 시작된 거였다. 올 상반기 최고의 흥행작은 여전히 <그 놈 목소리>였다.

▲ 영화 <화려한 휴가>
여름방학 시즌을 맞아, 구원투수의 바통은 <화려한 휴가>로 넘어갔다. 제작 전부터 <화려한 휴가>의 시나리오는 ‘천만짜리 시나리오’라 불리던 ‘물건’이었다. 다행히도 <화려한 휴가>는 급한 불을 끄는데 성공했지만, <디 워>에 밀려 700만을 넘어서는데 만족해야했다. 843만 관객을 동원하며 올해 최고 흥행 성적을 거둔 <디 워>는 MBC ‘100분 토론’에서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2007 영화계의 최고 화두였다.

<디 워>의 ‘광풍’이 몰아쳤지만, 한국영화는 추석연휴라는 또 한 번의 성수기에도 철저하게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300만을 넘긴 <식객>이 <디 워> 이후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영화였지만, <그 놈 목소리>에 못 미쳤다. 눈먼 자금이 마냥 반갑던 영화계가 한탕을 노리며 제작한 날림 영화들이 지난 3~4년간 끊임없이 개봉했고, 관객들은 질릴만했다. 급격히 누적된 거품이 빠지기 시작한 한국영화는 11년 만의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참담한 결과에 직면했다.

▲ 심형래 감독의 <디워>
예년에 비해 극장을 찾는 관객수는 줄었지만, 외국영화는 전년도 대비 관객이 32% 증가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한국영화의 침체를 틈타 끊임없이 관객들을 불러 모으며 작년에 비해 한국영화의 관객을 26.7% 감소시켰다. <스파이더맨 3>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 <슈렉 3> <오션스 13>으로 이어지는 시리즈물의 세 번째 이야기들이 7주간 박스오피스 정상을 점령했고, 급기야 <트랜스포머>는 737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외화흥행기록을 갈아치웠다.

임권택 감독의 기념비적인 100번째 영화 <천년학>이 완성됐고, 전도연이 <밀양>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장동건, 전지현, 비, 이병헌 등 한류스타들이 할리우드에 진출했지만 침울한 분위기를 쇄신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떤 이들은 한국영화 몰락의 시작이라고, 홍콩영화와 비교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올해를 전화위복의 해로 여기며 비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기존 투자/배급사 중 3강으로 분류되는 CJ, 쇼박스, 롯데가 투자 규모를 올해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KT와 SK텔레콤이 새롭게 진입하는 2008년에 우려했던 영화자본의 축소는 당분간 없을 전망이며, 지난 4월 18일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 체결한 영화산업 2007 임금협약 및 단체협약을 기반으로 한 합리적 제작, 배급, 마케팅시스템의 변화를 통해 제작비 절감의 노력도 계속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 영화전문포털 '조이씨네' 서정환 편집장
올해 유독 돋보인 독립영화의 약진 속에서도 해법은 존재했다. 3월 개봉하며 10만 관객을 동원한 다큐멘터리 <우리학교>는 물론이고, 아일랜드산 독립영화 <원스>의 흥행신화는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듯) 영화의 만듦새는 물론이고 영화를 만듦에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일깨워줬다.

110편의 개봉작 중 7편만이 손익분기점을 넘긴 올해의 참혹한 현실이 한국영화의 위기 극복을 위한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한국영화의 체질 개선을 촉발한 2007년 한국영화계를 돌아보고 2008년의 변화를 초조하게 예의주시하는 건, 그래서 “힘들다”. 한국영화계는 지금 총체적 난국이다. 그리고 격변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