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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판 ‘보이지 않는 성기’[도우리의 미러볼] 불법촬영 편파시위 ‘생물학적 여성’ 한정 논란
도우리 객원기자 | 승인 2018.06.14 09:06

[미디어스=도우리 객원기자] ‘보이지 않는 성기’가 페미니즘 판을 배회하고 있다. 여성기를 갖춘 ‘생물학적 여성’만 페미니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주장 때문이다.

페미니즘 판에서 ‘생물학적 여성’ 논란은 지난해 워마드발 게이 및 MTF 트랜스젠더 배제 주장으로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지난 9일 4호선 혜화역 근처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 수사 2차 규탄 시위’에서 참가 조건으로 ‘생물학적 여성’을 내걸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번 시위는 주최측이 특정 단체에 속하지 않았다고 공지한 데다 2만여 명이 참가한 규모였다는 점에서 ‘생물학적 여성 운운’을 더 이상 일부 집단의 문제로 일축할 수 없게 되었다. 

혜화역 시위 주최측 '불편한 용기의 생물학적 여성 한정'에 대한 공지

혜화역 시위 주최측인 인터넷 카페 ‘불편한 용기’는 ‘생물학적 여성 한정’ 조건에 대한 공식 입장에서 ‘시위에 참여하는 여성들의 안전을 위해서, 시위의 주체가 여성이 되게 하려고’라며 ‘강남역 시위 정장남, 넥슨 시위 당시 남성 참가자로 인한 분란’ 사례를 언급했다. 같은 맥락에서 여성들만 모여야 이슈가 ‘물타기’ 되지 않고 시위의 ‘화력’이 강해진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결국 시위의 성공을 위한 전략적 측면에서 ‘생물학적 여성’을 강조한 셈이다.

불법 촬영 피해는 압도적으로 여성의 몫이었으므로 ‘시위의 주체’는 여성이어야 한다. 하지만 ‘생물학적 여성’이란 조건은 이 목적에 반대된다. ‘생물학적 여성’은 기존 가부장제에서 성차별과 폭력의 근본 원인인 성별 이분법과 고정관념을 정당화할 때 동원되는 상상물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여성’이란 개념은 양 성기를 모두 가진 ‘인터섹스’의 존재가 증명하듯 ‘생물학적으로 허구’다. 성염색체, 성호르몬 등 다른 조건을 살펴도 마찬가지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여성기 자체가 아닌, 여성기를 구실로 성별을 나누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관점 때문에 일어난다. 

6월 9일 4호선 혜화역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2차 시위 모습(연합뉴스)

이런 점에서 이번 시위에서 배제된 MTF 트랜스젠더야말로 ‘시위의 주체’였다. 성별 이분법과 그 성별 이분법이 부여한 ‘여성성’을 이유로 폭력을 당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불법 촬영의 피해 당사자인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번 시위를 계기로 각종 SNS와 인터넷에서 커뮤니티에서 MTF 트랜스젠더나 게이에 대한 혐오 표현과 조리돌림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시위 중 ‘우리의 몸은 포르노가 아니다’라는 구호는 한 인간이 아닌 성기로 환원되는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였다. 마찬가지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다양한 주체들을 ‘X까’라며 성기로 환원시키는 것은 명백한 폭력이다.

소위 ‘생물학적 여성’들도 ‘보이지 않는 성기’ 때문에 당한 수모들을 잘 알지 않나. 정말 ‘보일락 말락’하는 성기 하나 가지고 부리는 만용과 젠더 폭력에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가. ‘남성기가 보이지 않아서’ 수 없는 외모 품평이나 임금 차별에 시달리지 않았는가. ‘진정한 여성’은 성기 모양과 색깔도 예뻐야 한다는 마케팅을 들어야 하지 않았는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조건은 이러한 기존 가부장제의 ‘성기 순혈주의’의 닮은꼴에 불과하다.

게다가 ‘생물학적 여성 한정’은 일부 남성의 존재로 인한 분란은 막았을지 몰라도, 많은 페미니스트의 지지 철회 및 안티페미 쪽에게 비난의 빌미를 주는 등 근본적인 분란을 일으켰다. 동일성을 강조하는 것은 ‘화력’을 모으는 데 빠르고 손쉬운 접착제이지만, 동시에 떨어지기도 쉽다. ‘자기 투사(projection)’로서의 동일시 이상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성기로 강조하는 결속과 안전함은 허약할 수밖에 없다. 계속 차이를 노출하는 와중에 함께 할 지점을 발견할 때 단단한 결속이 가능하고, 작은 분란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이번 혜화역 시위 때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조건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나, ‘자이루’ 등 남성을 향한 욕설을 자제해 달라는 쪽지도 돈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러한 일부의 자정 노력만으로 시위 전체가 내건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조건이 면책될 수 없다. 전략적으로도 효과적이지 못하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성기’가 페미니즘 판을 배회하게 해서는 안 된다. 너무 그로테스크한 일이 아닌가.

도우리 객원기자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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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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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당히해라 2018-06-14 12:22:56

    성기가 안보여서가 차별 받은게 아니라 생산활동에서 역할이 작았기 때문에 차별 받은 거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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