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단 이틀 앞으로 돌아왔다. 판세는 여전히 더불어민주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듯 보인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앞서가는 쪽이 끝까지 안심할 수 없는 것 또한 선거의 현실이자 묘미이다. 이런 점에서 막판 표심의 변화 가능성을 전망해볼 필요도 있다.

예를 들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태도 변화는 나름대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동안의 2선 후퇴 입장을 물리고 유세에 복귀한 홍준표 대표는 9일 부산에서 큰절까지 해가며 그간의 논란에 대해 유권자들에게 사과했다. 막말과 ‘마이웨이’로 일관하던 그간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물론 홍준표 대표의 이런 갑작스런 태도 변화가 진지한 반성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순 없다. 그러나 적어도 자유한국당을 지지할 이유를 찾지 못해 투표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낼 구실로 작용할 가능성은 있다. 특히 원래 자유한국당 지지세가 상당한 부산경남 지역에서는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 쉽게 장담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더라도 이런 퍼포먼스가 기존의 지지층에게는 자유한국당이 뭔가 진지하게 선거에 임해보려는 의지를 보여준 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정태옥 의원의 ‘이부망천’ 발언도 마찬가지다. 정태옥 의원은 인천 부천 비하 논란이 불거지자 재빨리 탈당했는데, 이는 홍준표 대표의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식의 대응과는 결을 달리한다. 망하든 말든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보다는 부족하더라도 뭔가 잘해보겠다는 태도가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기존 지지층의 마음을 돌리는 데에는 더 효과적일 수 있다.

9일 부산 중구 대규모 총력 유세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서병수 부산시장 후보, 김대식 해운대을 보궐선거 출마 후보가 부산시민에게 절을 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의 네거티브 공방도 자유한국당이 기대를 걸어볼만한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불륜’ 의혹 당사자인 배우 김부선 씨는 10일 KBS와의 인터뷰에 직접 응해 세간의 의혹이 사실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KBS 보도에 대해 이재명 후보 측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두 성인이 스스로의 행위에 나름대로 책임지면 될 일이 이렇게까지 번진 것은 그동안 이재명 후보 측이 부적절한 대응으로 일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부선 씨는 KBS 인터뷰에서 과거 이재명 후보가 대마초 전과 등을 언급하며 불륜 사실을 함구하도록 협박했다고도 주장했다. 실제 이재명 후보는 과거 김부선 씨와의 관계 의혹에 대해 트위터 등에서 ‘대마’를 거론한 일이 있다. 불륜이 인격적 결함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맥락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간의 여론조사 결과로 보면 이재명 후보는 자유한국당 남경필 후보 등을 큰 차이로 앞서고 있기 때문에 이 사건으로 승부가 뒤집힐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서의 예와 마찬가지로 포기 상태의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을 투표장에 나오게 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국 사회의 선거는 가장 상위의 차원에서 봤을 때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이 각각 거의 절반에 이르는 지지층을 확보한 상태에서 맞붙는 구도로 치러진다. 특히 탄핵으로 인한 조기대선 이후 처음 치르는 전국 선거라는 점에서 자유한국당의 1차적 전략은 원래 지지층을 복원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런 시각에서 주의깊게 볼만한 또 하나의 소재는 북미정상회담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2일 회담을 위해 이미 싱가포르에 도착해있다. 양쪽 모두 회담에 대한 긍정적 기대감을 키우며 성과를 자신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어떤 수준에서 합의가 도출될 것인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북미정상회담의 실무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성김 주 필리핀 미국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11일까지 회동을 이어갈 전망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정상회담의 전날까지 실무적 차원의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수 언론은 이 시점까지 협의할 것이 남았다는 것은 결국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문제라는 의미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CVID’로 요악되는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하기만 하면 사실상의 체제 보장을 약속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12일 북미정상회담은 가시적 성과를 내놓긴 하겠으나 그것이 충분한 수준에 도달한 것인가에 대한 논란을 이미 예고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보수세력은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와 노벨상 등을 의식해 미국 본토에 대한 실질적 위협을 제거하되 북한의 핵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는 방향으로 합의를 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12일 어떤 합의가 이뤄져도 자유한국당과 보수세력은 이런 우려가 실현되었다는 비판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불안감이 높아지면 보수 유권자층이 투표장에 나가는 비율도 더 늘어날 수 있다.

승패를 뒤집지 못하더라도 자유한국당이 의미있는 성적을 거두는 것은 지방선거 이후의 정계개편 구도를 놓고 볼 때 매우 중요하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와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의 단일화 관련 잡음을 보면 이런 사실이 확실히 드러난다. 김문수 후보의 조건 없는 사퇴를 주장해온 안철수 후보에 김문수 후보 측은 ‘당대당 통합’을 조건으로 내거는 걸로 맞서왔다. 그런데 지난 6일 양측 캠프관계자가 주고받은 문자가 공개되면서 이런 구도가 일부 허물어졌다. 안철수 후보 측 김근식 경남대 교수가 김문수 후보 측에 선거 이후 홍준표 대표를 배제하고 야권 재편을 주도하자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 메시지는 물론 김문수 후보 측의 ‘당대당 통합’ 논의에 대한 반응이었지만 어쨌든 안철수 후보 측 핵심인사가 보수세력 중심의 정계개편의 한 축이 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니 만큼 당내의 파장이 만만찮다. 당장 박주선 공동대표를 비롯한 호남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 출신 인사들이 안철수 후보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선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여기에 안철수계와 유승민계의 공천 갈등으로 인한 상처까지 있어 바른미래당의 선거 이후 상황을 논하기란 쉽지 않다.

자유한국당이 선거 막판 결집을 노리며 분위기 반전을 꾀하는 것에는 이런 맥락도 있다. 바른미래당이 선거 이후 공중분해 되는 경우 자유한국당은 기사회생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거듭된 국민적 비토 여론에도 불구하고 양당 구도의 회귀로 자유한국당이 원내에서 몸집을 더 불리는 아이러니가 발생할 확률도 적지 않다. 어떤 관점으로 보든 이런 현상이 한국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긍정적인 걸로 보기는 어렵다. 정치적 행위와 제도 양쪽에서의 평가가 있어야 한다. 선거 이후 해결해야 할 숙제가 쌓여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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