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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중립 화장실, 모두를 위한 장소[도우리의 미러볼] 지방선거 '성중립 화장실' 공약 논란
도우리 객원기자 | 승인 2018.06.09 14:07

“나는 아침 8시에 등교하는 순간부터 화장실 가는 것을 참아야 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는 오후 4시까지 버티거나, 아니면 (화장실을 가서) 폭력을 견뎌야 했다.”

2009년 미국 버몬트 주의 MTF 트랜스젠더 고등학생 카일 지아드 체이스(Kyle Giard-Chase)가 성중립 화장실을 요구하며 호소한 말이다. 하루에 최소 서너 번 용변을 해결하고 위생용품을 사용하는 화장실은 가장 사적인 공간이다. 그래서 이곳에서조차 사생활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화장실이 가장 정치적인 공간이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수의 예비후보 및 후보들이 성 평등 정책의 일환으로 성중립 화장실을 공약했다. 공약한 후보들은 고은영 녹색당 제주도지사 예비후보, 홍성규 민중당 경기도지사 후보, 김응호 정의당 인천시장 예비후보다. 이를 계기로 성중립 화장실을 두고 네티즌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성중립 화장실에 대한 지적은 오해인 경우가 많다.

인권재단사람 건물에 설치된 성중립 화장실 표지판(사진출처 인권재단사람)

먼저 ‘일부 소수자들을 위해 일반 사람들이 이성과 함께 화장실을 쓰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오해부터 풀자. 성중립 화장실은 한쪽이 불편함을 감수하자거나 이성끼리 아무렇지 않게 용변을 보자는 주장이 아니다. 어떤 성 정체성이든, 장애인이든, 성별이 다른 보호자가 동행하는 환자든 신체 조건과 무관하게 접근 가능한 화장실을 마련하자는 주장이다. 선별적 불편함이 아닌 보편적인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기획이다.

이런 오해는 성중립 화장실을 ‘남녀 공용화장실’과 혼동한 탓이다. 남녀 공용화장실은 공간에 남성용 소변기와 양변기가 함께 있어 남녀가 동시에 용변을 보는 구조다. 반면 성중립 화장실은 현재 장애인용 화장실처럼 화장실마다 독립된 잠금장치가 있고 세면대와 양변기가 모두 갖춰진 구조다. 카페나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낯선 이성은 물론 동성도 만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성중립 화장실 때문에 성범죄 노출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도 오해다. 우선 성중립 화장실에는 잠금장치로 혼자 닫힌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구조인 데다, 성범죄는 부실한 몰카 규제나 잘못된 성 인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면 남녀 화장실에서 발생하는 성 소수자 폭력은 명백히 남녀를 구별하는 화장실 때문에 일어나는 폭력이다. 그래서 오히려 성중립 화장실 설치가 오히려 ‘성’ 범죄를 줄인다.

근본적으로 일반 화장실 이용이 어려운 소수자들에게는 화장실이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존엄성과 절박한 생존의 문제다. 실제로 2008년 미 UCLA 로스쿨 조사 결과 성 소수자의 68%가 화장실에서 언어적인 모욕을 당했고 9%는 폭행을 당했다고 답했다. 화장실은 기본적인 배설 욕구 해결과 청결 유지 등 인간다움에 필수적인 곳이다. 그런데 모욕감과 수치심, 폭력의 위협 때문에 변의를 조절하고 심지어 방광염까지 걸린다는 증언들은 화장실이 이동권, 건강권, 학습권까지 걸린 정치적 문제임을 뜻한다.

한국다양성연구소에 설치된 성중립 화장실 표지판(사진 출처 한국다양성연구소)

그래서 화장실의 역사는 곧 인권 확장의 역사이기도 했다. 미국의 공중화장실은 1800년대만 해도 남자 전용만 있거나 공용이었던 것이 1920년대 들어 남녀 공중화장실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1950년대에는 흑인들이 백인 화장실 사용을 요구했으며, 1980년대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반대를 뚫고 장애인 화장실이 설치됐다. 그리고 최근 2000년대 들어서 성 소수자 인권을 고려한 성중립 화장실 논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성중립 화장실은 이미 선진국들 사이에서 확산되는 추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업무용 빌딩과 공공기관 건물을 포함한 모든 1인용 공공화장실에 성중립 화장실 표시를 의무화했다. 우리나라도 공공기관과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성중립 화장실을 건물당 최소 1곳은 성 중립 화장실 표기하도록 논의해야 한다. 이들 장소는 공공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와 학습권 보장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미 설치된 장애인 화장실부터 성중립 화장실로 꾸려 점점 늘려 나가는 것도 생각해 볼 대안이다.

영국의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는 저서 <장소와 장소상실>에서 “장소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생활세계이자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토대이다. 인간답다는 것은 의미 있는 장소로 가득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며, 인간답다는 말은 곧 자신의 장소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장소를 잘 알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렐프의 지적처럼 장소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뿌리다. 성중립 화장실은 남녀 화장실 어디에도 뿌리내릴 수 없던 이들에게 마련되어야 할 장소다.

도우리 객원기자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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