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진행 중이지만 민심도 그렇고, 언론도 마찬가지로 온통 관심은 12일에 열린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 쏠려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들을 뽑는 일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분단 73년 만에 찾아온 종전과 평화의 기대감을 뛰어넘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이 북미정상회담에 관심을 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아직도 회담이 열릴지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미정상회담이 이미 한차례 취소된 적이 있었고, 회담의 당사자들이 모두 예측하기 힘든 존재라는 사실이 주는 압박감이 작용한다. 북미정상회담은 12일 싱가포르에서 두 정상이 만날 때까지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북미정상회담(PG)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는 매우 높다. 판문점선언이 제안한 종전선언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거론된 것도 회담 성사여부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도 기대감을 증폭시킨 이유가 됐다. 게다가 야당인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결과가 정해진 선거라는 점도 국민들의 선거에 관심도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와 선거결과가 일치하지 않고 있다는 근래의 결과로 봐서 이런 현상이 누구에게 득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쨌든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은 북미정상회담이 일주일 남짓 남은 시점에서는 불안보다 기대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개성에 남북공동연락소 설치 소식에 서울에는 옥류관 지점을 내라고 아우성인 것이 민심이다. 그러나 조중동 등 보수언론들은 국민 여망과는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4일 언론사별 사설을 보면 그런 태도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조선] 수백조원 대북 지원 美는 돈 내지 않겠다는데
[동아] ‘완전 비핵화’ 없는 終戰선언 이벤트는 의미 없다
[중앙] 북·미 정상회담 청신호…디테일의 '악마'는 경계해야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조중동은 북미정상회담에 부정적 이미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물론 아무리 절실한 것이라도 외교라는 것이 워낙 변수가 많고, 하필 상대도 트럼프와 김정은이기 때문에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하며, 그 역할의 일부를 언론이 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보수언론의 태도는 그 신중함을 훌쩍 뛰어넘는 ‘재뿌리기’의 의심을 품게 하는 것이 문제다.

사설 제목들은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대북지원에 대한 부정적 의견들을 공통으로 담고 있다. 그것은 통일비용이라는 해묵은 논리로 북미정상회담과 남북관계에 대해서 부정적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로 보인다. 통일비용을 거론하면서 통일효과는 숨기는 것이 보수언론들의 일관된 태도였다.

남북미 정상회담·종전협정 가능성 (PG) (연합뉴스 자료사진)

조선일보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조중식 국제부장의 ‘미국, 때론 우리를 배신했다’라는 칼럼을 통해 북미정상회담을 ‘우리로선 최악의 거래’라는 말로 미국을 비난했다. 소제목에서는 ‘주은래와 비밀 회담했던 키신저 한국 농락했지만 노벨상 받아, 트럼프도 배신의 노벨상 받나’라고 미국을 부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칼럼에서 제기한 것들은 모두 사실이다. 우리가 미국을 경계해야 함을 보여주는 역사적 경험들을 나열하고 있다.

그러나 왜 하필 이 시점에서, 미국을 사랑하던 조선일보가 이런 말들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 칼럼은 키신저의 베트남전 종식을 위한 파리협정을 언급하면서 ‘협정은 사기였다’라고 끝을 맺고 있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미리부터 '사기'라고 하고 싶은 것일까? 조선일보의 뜬금없는 반미 선동이 놀라우면서도 서글프다. 이 칼럼에 대한 독자 댓글이 히트다. “미국은 때론 배신하지만, 조선일보는 매일 배신한다”. 기사에 좀처럼 감동하기 어렵지만 촌철살인의 댓글에는 자주 감동하게 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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