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관련 논란으로 뜨겁다.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 명확한 사실관계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이미 비는 ‘죽일 놈’이 되어있다.

사실관계가 불분명할 때는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맞다. ‘죽일 놈’이라는 판단은 상황이 명확해진 후에 내려도 늦지 않다. 물론 의혹제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알려진 단서들을 근거로 추론도 할 수 있고, 주장도 할 수 있다. 다만 최종 판결만은 아직 성급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럴 때 매체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매체는 이런 상황에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취재해 알리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라고 매체가 존재하는 것이며, 그런 취재활동을 한다고 간주되기 때문에 기자들이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기자들은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과도 인터뷰를 할 수 있고, 각종 기관에도 쉽게 접근하며, 일반인과는 다른 사회적 대우를 받는다. 그에 값하는 길은 기자가 사회에 진실을 알려주려는 노력을 하는 것밖에 없다.

정말 보기에 괴로운 기사가 나왔다. ‘비가 돈 때문에 눈빛이 변하더라’라는 한 투자자의 폭로를 전하는 기사였다. 이 기사는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21일 최대 화제 기사 중의 하나였다.

이 기사가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사실관계를 파헤치려는 노력은 희박한 대신에 투자자라는 인물의 입을 빌어 비를 일방적으로 모욕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비는 이렇게 추잡한 사람이니 대중이여 그를 죽여라!’라고 대자보를 붙인 것 같았다.

한 네티즌이 게시판에 쓴 것도 아니고, 이런 걸 매체의 기사라고 할 수 있나? 의혹이 불길처럼 일어나며 대중이 분노하고 있을 때 거기에 편승해 논란만을 부추기는 것은 언론이 할 일이 아니다.

더욱 괴로웠던 건 이 기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아무리 의혹이 있고, 비를 싫어한다고 해도 그건 그것이고, 그것과 별개로 이렇게 황당한 기사에 대해선 해당 기사를 비난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기사에 폭발적으로 호응했다. 기사를 비난하는 댓글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비 물어뜯기가 도를 넘고 있다고밖에 달리 생각할 수 없었다. 수단방법 상관없이 무조건 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 기사의 투자자는 비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니 TV 속 다정한 월드스타의 모습이 아니라, 돈을 벌 궁리를 하는 사업가 같았다고 했다. 야심차게 벌였던 사업이 실패하자 더욱 안달복달했다고 했다.

이건 악의적인 사생활 까발리기, 인신공격이다. 뿐만 아니라 비겁하다. 비를 인격적으로 모욕하고, 인간적으로 끌어내리며, 연예인 이미지를 망가뜨리려는 비열한 폭로로 느껴진다. 제목부터가 그랬다. ‘비 돈 때문에 눈빛이 변하더라’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비를 죽이는 제목이다. 이렇게 묻지마 증오를 부추기는 것이 언론이 할 일인가? 다음의 대목은 더욱 치졸했다.

“비는 어려운 가정형편을 딛고 스타가 됐다. 엄청난 돈을 벌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를 원했다 ... 적자를 보고받자 비의 눈빛이 변하더라‘

도대체 가정형편이 왜 나오나? 문장 전체가 민망할 만큼 악의적이다. 인신공격의 극치다. 너무나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방식의 공격이었다. 이런 글을 읽고도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다. 하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글에 호응하며 비를 공격했다. 진흙탕 물어뜯기다.

이번 일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잘못에 대한 극단적인 대응이 언제나 일어난다. ‘00녀’ 사태 때도 그 행위를 윤리적으로 비난하면 그것으로 된 것이었는데, 그 선을 넘어서 신상털기를 요구하고 사회적 매장을 요구한다.

즉, 우리 사회가 내리는 처벌은 언제나 ‘극형’인 것이다. 일단 잘못한 이상 무슨 일을 당해도 싸다는 생각, 무조건 죽어 마땅하다는 생각이 팽배해있다. 그래서 일이 생길 때마다 ‘죽여! 죽여! 죽여!’ 외침이 인터넷을 뒤덮는다.

의혹도 문제고, 잘못한 사람도 문제지만, 이렇게 모 아니면 도식으로 가는 극단적 풍조는 더 문제다. 한국사회가 병들고 있다. 누군가가 잘못하면 인권이 박탈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사생활 보호도 필요 없고, 증거도 필요 없고, 인격 보호도 필요 없다는 식의 분위기에서 사회는 병들 수밖에 없다.

보다 냉정해져야 한다. 보다 차분해져야 한다. 사회가 지나치게 달아올랐을 때 차분하게 만드는 것이 또한 언론의 역할이다. 이번에 정식 기사가 악의적인 인신공격으로 분노를 부추기고, 대중이 거기에 열렬하게 호응한 것은 너무나 괴로운 광경이었다.

이런 식의 사람 모욕하기 말고, 진짜 진실을 파헤쳐주기 바란다. 차제에 연예계와 주식시장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가 제공된다면, 그것이 더욱 선량한 개미투자자들을 위하는 길이 될 것이다. 인신공격으로 우리가 얻을 건 악플 외에 아무 것도 없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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