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동아일보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내년에 결정적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의 근거는 역술·무속인들의 예언이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를 중요기사로 'PICK'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언론을 향해 사실보도를 당부한지 불과 이틀만에 벌어진 일이다.

30일 오후 동아일보와 신동아는 <'김일성 사망' 적중 역술·무속인들의 예언…"김정은, 내년 결정적 위기"> 기사를 게재했다. 동아일보는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시작된 한반도의 빅게임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며 "24년 전 기자는 김일성 사주를 놓고 역술인과 무속인을 취재해 김일성의 사망 시기를 정확히 맞힌 '신이 내린 특종'을 한 바 있다. 그때의 주역을 다시 찾아 김정은과 대한민국의 운세를 물어봤다"고 기사를 시작했다.

▲30일 보도된 동아일보의 역술인 인터뷰 기사. 동아일보는 이 기사를 중요기사로 'PICK'했다. (사진=네이버 캡처)

동아일보는 작명과 관상을 주로하는 원로 역술인 조성우 씨의 말을 빌어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어른만 있는 간위산괘의 형국과 통하는 성정인데, 이런 기운을 쓰는 이들은 임진~기해 연간에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며 "모든 일은 자업자득이다. 그렇게 행했기에 그런 결과를 맞는 것이다. 김정은도 남 탓할 것은 없다"고 했다.

또한 "이설주는 미인이지만 눈을 보면 독이 뚝뚝 떨어지는 상이다. 김정은과는 사이가 괜찮지만 자신의 자리를 넘보는 이가 있으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는다"며 "이러한 상도 좋은 결과를 낳지 않는다. 자리 덕에 부부는 권세를 누리고 충성을 뽑아내는 듯하지만 갈수록 외로워진다"고 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에 대해서는 "김여정은 뼈대가 약해서 자기주장이 없는 상"이라며 "든든하지 못한 여동생을 가까이 두는 것은 김정은의 속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동아일보가 인터뷰한 역술인 최용권 씨는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이 생시대로라면 가히 일국을 이끌 수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매해 달라지는 것이 운수다. 그의 운세는 올해와 내년이 좋지 않은데, 특히 내년이 그렇다"고 했다. 최 씨는 "판문점회담 등으로 화려하게 얼굴을 내밀었지만, 내년에는 그 영광이 까마득한 일이 될 것이다. 그는 핵 포기와 전쟁 결심을 놓고 양자택일해야 하는 모순에 몰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가 인터뷰한 무속인 심진송 씨는 "김정은은 몸이 극도로 상해 있다. 할아버지인 김일성처럼 당뇨와 심근경색 등에 걸려있다"며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기에 어쩌면 몸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올해 김정은의 운은 죽을 수도 있을 만큼 좋지 않다. 그러나 죽지는 않는다"며 "음력으로 내년 2~3월, 늦으면 5~6월에 그의 생명은 경각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네이버와 콘텐츠 제휴를 맺고 있는 매체들은 자신들이 작성한 기사 중 중요기사를 선택해 'PICK' 문구를 달 수 있다. 동아일보는 이 인터뷰 기사를 '동아일보 PICK'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동아일보의 이러한 보도는 가십잡지에나 나올 법한 비과학적인 보도라는 지적이다. 주관, 편향성을 배제하고 과학적, 객관적 접근을 통해 사실을 전달해야 할 언론이 해서는 안 되는 보도란 얘기다. 남북 정상회담 등으로 한반도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는 시점에 굳이 이런 보도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

불과 이틀 전인 지난 29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것은 언론 본연의 자세다. 남북 문제나 외교 관계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면서 "하지만 최소한의 사실 확인이 전제돼야 한다. 국익과 관련한 일이라면, 더구나 국익을 해칠 위험이 있다면 한번이라도 더 점검하는 게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보도에 대해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가십성 잡지에서나 나올만한 비과학적인 보도"라며 "매체의 신뢰도에 악영향을 주는 자해 수준의 보도"라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역술인의 얘기라는 걸 독자들이 알고 보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을 오도한 것은 아니지만, 정론지를 지향하는 매체에서는 나올 수 없는 내용"이라며 "객관성이 저널리즘의 기본인데 비객관적인 역술 등을 통해 이런 중요사안을 보도한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선정보도의 전형이다. 정치적 의도와 관계 없이 언론의, 저널리즘 원칙의 ABC를 무시한 보도"라며 "자극적이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요소만 찾아다닌 결과"라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여론조사처럼 통계,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거나, 정치인, 평론가, 교수처럼 경험이나 생각, 지식을 바탕을 얘기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무속인들의 아무런 과학적 근거 없는 것을 보도하는 것은 사안을 그야말로 가십성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진봉 교수는 라며 "결국 클릭을 유도해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보도"라며 "언론이 인터넷 기반의 언론환경이 조성되면서 전통적 언론의 역할보다는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방향을 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돈이 아니라 명분을 지키는 게 언론의 사명이다. 이런 기사는 언론인으로서의 자존심까지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