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정리하는 세밑, 끝내지 못한 투쟁을 이어가며 '힘겨운 겨울'을 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명동성당에 천막을 치고 한달 넘게 농성을 하고 있는 뉴코아 노동조합의 박양수 위원장(사진 가운데)과 윤성술 순천지부장도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지난 6월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이랜드 그룹은 유통매장인 홈에버와 뉴코아의 계산원 업무를 외주화하기 위해 비정규직 사원과 계약을 해지하고 용역계약서를 쓸 것을 요구했다.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 1천여명이 집단해고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조합원들은 파업과 매장점거 투쟁으로 반발해 왔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7개월째 힘겨운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박 위원장과 윤 지부장은 사전구속영장과 체포영장이 발부돼 수개월째 수배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다 지난 11월 두 사람이 찾아간 명동성당은 우리가 기억하는 민주화의 성지, 갈 곳 없는 수배자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던 과거의 그곳이 아니었다. 성당에선 이들을 불편해 했고 나가줄 것을 요구하며 설치한 천막을 여러차례 철거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물러날 곳이 없었다. 무엇보다 오랜 수배생활로 투쟁 현장에 나서지 못하는 처지가 조합원들에게 미안했다.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하면서 이랜드-뉴코아 사태가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도록 알려내는 일이 너무나 절실했다.

애원 끝에 천막을 칠 수 있게 됐지만 아직도 눈칫밥 신세다. 명동성당에 결혼식 같은 행사가 있어 신자들이 많이 몰려들 땐 천막을 치웠다가 다시 세우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물론 신자들은 '아직까지 싸우고 있는 줄 몰랐다'며 힘내라는 말을 건네고, 국밥이나 사먹으라며 만원짜리 한장을 놓고 가기도 한다.

그래도 두 사람은 명동성당을 택한 것은 잘 한 일이라고 믿는다. 농성장으로 매일 조합원들이 찾아와 간담회도 가질 수도 있고 각종 연대단체들의 지지방문으로 큰 힘을 얻고 있다.

이제 회사와의 협상이 잘 이뤄져 7개월째 접어든 이 투쟁이 하루빨리 해결되길 바라고 있지만 상황은 쉽지가 않다. 한때 집중교섭을 통해 연내 타결을 해보자는 쪽으로 방향이 모아지는가 싶더니 회사는 지난 18일 조합 간부 수십명의 해고와 징계라는 초강수를 뒀다.

"박성수 회장이 귀국하면서 본격적으로 지휘를 하고 있어요. 노조를 당장 깰 수는 없으니 간부들의 발을 꽁꽁 묶어서 노조를 무력화하려는 전략인 거죠. 그동안 회사는 직장폐쇄, 고소고발, 손배가압류 등을 해왔는데 이제 해고와 징계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든 겁니다."

지난 6월 터진 이랜드 사태는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의 대표적 사안으로 떠오르며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반짝이었다. 아프간 피랍 사건, 변양균-신정아 사건, 대선 국면에 묻혀 점점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혀져갔다.

"여름을 보내고 추석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어요. 아무리 투쟁을 해도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하니 사람들도 '다 끝난 것 아니냐'고 말하더군요. 회사는 노조를 계속 흔들었고 버티기 힘든 조합원들은 많이 복귀했어요. 언론이 말을 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기댈 곳이 없습니다."

이랜드 그룹이 노조원들을 대량 징계조치하면서 언론이 다시 관심을 보이긴 했다. 연말을 맞아 춥고 어려운 이웃들을 조명하는 기획성 보도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간간이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대선이 끝나고 나서는 이명박 당선자의 친기업주의 성향이 이랜드 사태 해결을 어둡게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조합원도 많아졌다. 실제로 이명박 당선자가 후보 시절 '이랜드 사태는 노조의 잘못'이라는 발언을 한 직후에 회사에서 징계 결정을 내리자 영향을 미친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았다.

"수많은 비정규직이 해고되는 상황을 제발 알아달라는 것입니다. 이명박 당선자가 국민을 생각하고 섬긴다면 이 문제 만큼은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26일 밤 찾아간 농성장에는 피켓과 현수막 하나 없이 성당 한쪽 구석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비닐 천막이 전부였다. 마치 세상과 떨어진 외딴 섬처럼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져 가는 현실과 닮아 있었다. 박 위원장에게 물어보니 '뉴코아-이랜드 비정규직 대량 해고로 싸우고 있는 뉴코아 노동조합 수배자들입니다!!'라며 두 사람의 '존재'를 알려왔던 피켓도 며칠 전 누가 가져갔는지 없어졌다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인터뷰를 끝내고 명동 한복판, 바쁜 걸음을 옮기는 인파 속으로 휩쓸렸다.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이제 얼마나 이랜드-뉴코아 사태를 기억하고 있을까. 조금만 돌아보면 나 자신은 물론이고 친구, 후배, 조카, 아들, 딸들과 무관한 일이 아닌데 우리 모두가 이들을 '외딴 섬'으로 만들고 있진 않았나 가슴이 무거워졌다.

아직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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