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KBS의 '적폐청산 기구'인 'KBS 진실과미래위원회'(이하 KBS 진미위)의 설치와 관련해 KBS 감사 및 감사실이 '감사 독립성 침해'를 이유로 반대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이하 언론노조 KBS본부)는 "감사실이 사측에 '적폐청산'을 하지 말라는 의견을 낸 셈"이라며 비판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25일자 성명에서 "조합 확인 결과 지난 16일 전략기획실에는 'KBS진미위 설치 및 운영규정(안) 일상감사 의견'이라는 제목의 2페이지짜리 의견서가 접수됐다"며 "내용은 사측이 출범을 준비 중인 KBS진미위가 감사의 독립성을 침해할 뿐 아니라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감사실이 사측에 '적폐청산'을 하지 말라는 의견을 낸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KBS본부는 "묻는다. 그렇게 감사의 독립성과 법률 준수의 중요성을 생각하는 감사실이 이명박근혜 정부 10년간 한 일이 무엇인가"라며 "또 묻는다, 혹시 감사실의 존재 이유가 적폐청산 방해와 적폐청산으로 인해 책임을 져야할 구기득권 세력의 방패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또 다시 '개혁 딴죽걸기'라는 문제가 제기된다면 그 이후 벌어질 사태와 책임은 오롯이 감사에게 있음을 명확히 한다"고 강조했다.

KBS 사옥(KBS)

실제로 KBS 감사실은 지난 16일 전략기획실에 A4 2페이지 분량의 'KBS 진실과미래위원회 설치 및 운영규정(안) 일상감사 의견'을 제출했다. KBS 감사실은 해당 문건에서 KBS 진미위의 설치가 "감사원의 지적 및 처분요구사항에 역행되며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 등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KBS 감사실은 "감사원은 2016년 '비 감사부서의 감사업무 수행 부적정'을 당사에 지적하면서 이에 대한 조치를 요구한 바 있다"며 "이는 인사규정상 각 부서장의 소속직원에 대한 징계요구에 대하여 조차 감사가 할 것을 지적하고 있는 사항으로서, 진미위에 공사 업무 전반에 대한 감사 차원의 조사권과 징계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은 감사원 지적 및 처분 요구에 정면으로 역행되는 상황"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또한 KBS 감사실은 "공사의 감사 업무는 감사원 감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감사의 피감기관인 집행기관내의 별도기구(진미위)에 의해 기존에 감사가 행한 감사의 진행과정 및 처분 등을 조사대상으로 진행할 경우, 감사의 독립성을 현저히 침해하거나 위법하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KBS 감사실의 의견 제출 이후 KBS 공영노조와 KBS 노동조합, 자유한국당 과학기술방송정보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28일과 29일 KBS 감사실의 반대의견과 같은 내용의 성명을 내놓으며 KBS 진미위 출범에 반대했다.

KBS 감사실을 비롯한 이들 주장의 근거는 KBS에 대한 감사원의 2016년도 감사결과다.

감사원은 2016년 KBS에 대한 '자체감사기구 운영실태 점검'에서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을 언급하며 감사결과 KBS가 소속 부서장, 관련 부서장 또는 지역방송국장이 감사를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러나 감사원이 이러한 문제를 지적한 배경은 당시 KBS 감사실의 감사 총량에 비해 소속 부서장, 관련 부서장, 또는 지역방송국장 등 비감사부서의 감사 총량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감사원은 2014년 1월부터 2016년 3월까지 KBS가 소속 직원에 대해 조사·징계를 요구한 사례를 전수 조사했다. 감사원은 조사 결과 KBS 감사실이 수행한 감사는 총 58건, 소속 부서장 등 비감사부서가 수행한 자체감사는 총 69건이라고 밝혔다.

또한 당시 KBS 사측은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의 반대 해석을 들어 감사가 진행 중이지 않은 사건에 대해 기관장이 감사실과 별개로 징계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는데, 이에 대해 감사원은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의 취지는 중앙행정기관 등에 의한 감사가 이루어진 후 그 결과인 징계 등 처분요구가 있기 전에 자체적으로 징계절차를 진행하여 가벼운 처분을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합하면, 감사원은 KBS의 감사실 감사 총량과 비감사부서 감사 총량을 비교했을 때 KBS 감사실에 정식으로 감사를 요청해야 하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KBS의 상급 직원들이 감사를 자체 처리했을 가능성이 있고, KBS 상급 직원들에게 부여된 자체감사권이 사건의 위중함에 비해 가벼운 징계처분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감사원 지적에 따르면 부하직원에 대한 감사실 감사가 인사고과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상급 직원들이 자체감사로 감사실 감사를 무마했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감사원이 단순히 관련 법률에 따라 KBS 감사실로 감사 권한을 일원화하라고 지적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KBS 진미위는 출범 후 조사 사안으로 ▲불공정 방송 및 제작 자율성 침해 ▲방송법·사규·방송강령·윤리강령·방송제작 가이드라인 등 위반 ▲부당인사·부당노동행위·부정청탁·사실은폐 왜곡 ▲사내 성폭력행위 등을 꼽고 있다. 과거 제대로 책임소재가 드러나지 않았거나 처벌되지 않은 사안들에 대해 '재조사'라는 상대적으로 더 강력한 감사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기구인 셈인데, KBS 진미위의 위원장을 '부사장'이 맡게 된다는 점 역시 소속 부서장 등이 자체 감사를 진행해 문제라는 감사원 지적과는 결이 다르다.

KBS와 같은 공공기관 또는 국가기관은 어떨까. 알려진 대로 문재인 정부 하에 이미 국정원, 국방부, 법무부, 법원 등 정부 내 각 부처에서는 과거 진상조사를 위해 특별 기구를 설치,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최근 사례로는 대법원 산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있다. 특조단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청와대가 관심을 갖는 판결에 대해 조사하고 판결 방향까지 연구했던 정황이 담긴 문건을 발견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경호 언론노조 KBS본부 위원장은 29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KBS 진미위는 그동안 감사실에서 감사를 하지 않고 넘어갔던 부분들을 조사하겠다고 하는 것"이라며 "이미 각 정부부처의 특별기구가 설치돼 운영되고 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이 지적에 나섰다는 얘기나, 해당 부처의 감사실이 문제를 제기한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재조사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공교롭게도 KBS 감사실, KBS 노동조합, KBS 공영노조, 자유한국당 과방위원들이 같은 내용의 의견을 냈다. 굉장히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이들이 궤를 같이 한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위원장은 KBS 감사실의 반대의견으로 인해 KBS 진미위가 조사 권한이 축소된 형태로 출범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KBS 이사회는 30일 열리는 정기이사회에서 KBS 진미위 설치 및 운영규정 제정에 관한 안건을 상정·의결할 예정이다. KBS 이사회 관계자에 따르면 KBS 감사실의 반대의견은 KBS 이사회에도 보고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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