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윤수현 기자] 포털에 실시간 검색어가 등장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바로 언론사의 어뷰징이다. 실검에 등장한 검색어를 담은 기사를 쏟아내고, 이로 인해 이용자는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이용자 정보 수용의 문제를 넘어 인권을 침해하는 수준의 어뷰징까지 난무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실검에 등장한 인물의 주변인까지 어뷰징의 대상으로 삼아 피해를 주는 일부 언론의 몰상식한 행태 때문이다.

23일 인천 남동경찰서는 넥센 히어로즈 박동원, 조상우 선수가 인천 시내 호텔에서 술에 취한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두 선수는 구단의 조사에서 피해자를 방에 데려와 술을 마신 건 맞다고 인정했지만, 한 선수는 자리를 먼저 떴고, 또 다른 선수는 합의 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성폭력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은 언론보도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이 과정에서 두 선수의 신상이 공개되자 순식간에 선수들의 이름은 포털 실시간 검색어 최상단을 장식했다. 실검 등극과 함께 언론의 어뷰징도 함께 시작됐다.

▲위에서부터 세계일보, 헤럴드경제, 전자신문 로고. (사진=세계일보, 헤럴드경제, 전자신문 홈페이지 캡처)

박동원 성폭행 논란에 아내까지 들먹인 언론

언론의 어뷰징은 클릭수를 유도해 광고수익을 올리려는 행위다. 이러한 어뷰징 행위 자체도 심각한 문제지만 박동원 선수의 아내까지 어뷰징의 대상으로 삼은 건 더 심각한 문제다. 박 선수가 성폭행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과 별개로 무분별한 어뷰징으로 가족이 2차 피해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23일 오후 5시 10분을 기준으로 네이버에 관련 사건을 검색하면 수많은 언론이 박동원 선수의 아내를 대상으로 어뷰징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어뷰징 행각은 메이저매체, 중소매체를 가릴 것 없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일보, 서울신문, 전자신문, 헤럴드경제와 같은 대형 매체를 비롯해 매일신문, 부산일보, 국제신문, 중부일보, 영남일보 등 유력 지역지도 어뷰징에 가담했다. 베타뉴스, 한국정책신문, 국제뉴스, 전자신문엔터테인먼트, 뉴스인사이드, 스포츠투데이, 그린포스트코리아, 데일리안, 메트로신문, 뉴스타운, 골프한국, 스포츠한국, 메트로신문 등의 중소매체들도 박동원 선수의 아내를 어뷰징 대상으로 삼았다. 여성전문잡지 Queen도 어뷰징 대열에 동참했다.

일부 언론, 박 선수 아내 사진까지 게재

일부 언론사는 박동원 성폭행 논란을 다루면서 아무런 상관이 없는 박동원 선수의 아내 사진을 게재하기도 했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한국, 뉴스인사이드, 베타뉴스, 세계일보, 전자신문, 전자신문인터넷 등이다. 특히 헤럴드경제, 스포츠한국, 뉴스인사이드, 베타뉴스는 모자이크 처리도 하지 않은 채 사진을 내보냈다. 박동원 선수 가족에 대한 2차 피해가 가해질 수 있는 것이다.

미디어스는 이들 언론사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은 사진을 쓴 이유를 물었다. 헤럴드경제는 “우리가 쓴 게 아니라 자회사에서 쓴 것”이라고 해명했고, 베타뉴스는 “사진이 부적절하게 나간 것 같다”고 밝혔다. 그 후 두 언론사는 박동원 선수의 결혼사진 대신 넥센 히어로즈 마크로 사진을 변경했다. 뉴스인사이드와 스포츠한국은 “확인 후 연락 주겠다”고 했지만 사진을 바꾸지 않고 있다.

전자신문과 전자신문인터넷은 모자이크 처리를 한 사진을 이용했다. 아내의 얼굴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박동원 선수의 성폭행 혐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진이었다. 이에 대해 전자신문인터넷 관계자는 “기사를 확인하진 못했지만 사진을 쓴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별다른 의도는 없었을 것”이라며 “미처 그런 부분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세계일보는 <'성폭행 혐의' 유부남 박동원의 아내 자랑 "맛있는 음식 많이 챙겨줘…요리솜씨 뛰어나"> 기사에서 박동원 선수와 아내의 결혼식 사진과 웨딩 화보 사진 3장을 기사에 올렸다. 특히 기사 설명에서 박 선수 아내의 일부 신상까지 공개했다. 이에 대해 세계일보는 “다른 언론사에서 사진을 쓰니 그냥 쓴 것 같다”며 "댓글 등에서 비판이 일자 사진을 교체했다"고 해명했다.

네티즌들도 이러한 어뷰징 기사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냈다. 세계일보의 기사에는 "결혼식 사진 올리고 이런 기사는 좀 아니지. 아내가 무슨 죄냐 기자야 정신 차려라", "정말 저질기사다~ 가족은 건들지 말자~", "아내도 공범이다 뭐 이거냐? 기사 쓰는 의도가 뭐냐???" 등의 댓글이 달려 있다. 현재 세계일보는 아내 사진 대신 박동원 선수의 사진으로 교체한 상태다.

▲23일 세계일보 기사에 달린 네티즌들의 댓글. (사진=네이버 캡처)

어뷰징 기사를 또 다시 어뷰징

박동원 선수의 아내 사진을 쓴 언론사 중 헤럴드경제와 베타뉴스, 전자신문과 전자신문인터넷은 제휴사 관계다. 각자 다른 기자가 작성한 것으로 나와 있지만, 이들의 기사는 일부 단어와 조사를 제외하면 같은 형태를 보이고 있다. 어뷰징 기사를 어뷰징한 것이다.

헤럴드 경제의 <박동원·조상우, 아내 칭찬 그렇게 해놓고...> 기사와 베타뉴스의 <박동원·조상우, 아내 칭찬 그렇게 해놓고 현실은...> 기사는 거의 동일한 기사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들 기사는 밝혀졌다·드러났다, 현재·최근, 게다가·특히 등 시작 문장을 제외하곤 거의 유사하다. 이에 대해 베타뉴스 관계자는 “헤럴드 경제와 제휴사 관계라서 당직 제도를 운용 중이라 똑같은 기사가 나간 것 같다”고 해명했다. 바이라인에는 다른 기자의 이름이 올라갔다는 질문에는 “회사 방침이라 자세한 것은 모른다”고 말했다.

전자신문의 <박동원, 알고 보니 신혼? 누리꾼 "결혼한 지 2년도 안 됐는데 충격"> 과 전자신문인터넷의 <박동원, 알고 보니 기혼자? 누리꾼 "결혼한 지 2년도 안 됐는데...">도 같은 양상이다. 이들은 “미모의 재원이다”·“미모의 재원으로 전해졌다”라는 어미의 차이 빼곤 똑같은 글이었다. 이에 대해 전자신문인터넷은 “실시간 검색어 뉴스여서 서로들 기사를 보고 그렇게 쓴 것 같다”고 해명했다.

"전형적인 옐로우 저널리즘"…"취재윤리 바닥 보여줘"

이러한 어뷰징 행태에 대해 언론전문가들은 저널리즘을 저버리는 행태라고 입을 모았다. 이와 함께 어뷰징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 포털의 책임 있는 자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사건의 당사자도 아닌 가족을 기사에 등장시킬 이유가 없다"며 "사건 당사자가 신혼이라고 해서 결혼 당시 나왔던 사진을 올리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그 사람이 혐의를 받는 사람도 아닌데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취재윤리의 바닥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동찬 사무처장은 "이용자 입장에서 대단히 지저분한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이라며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의 영역이 있어 조심해야겠지만,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이러한 어뷰징성 보도들은 빠르게 판단해 걸러질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의 역할을 강조했다. 김 사무처장은 "뉴스제휴평가위가 역할을 해야 한다"며 "평가위가 이런 건 제재하지 않고, 매번 포털 입점, 폐점만 신경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어떤 사람의 성폭행 사건 자체는 수사 중이라면 다룰 수 있는 사안이지만, 가족사를 언급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지난번 미투운동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조민기 씨의 경우 행동은 문제적이었지만, 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 건 가족을 언급하는 등의 보도 행태를 보였던 언론"이라며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에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에 대한 내용은 많은데, 가해자의 가족 등을 적절히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포털이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책임있는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네이버가 어뷰징에 몰두하는 언론사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한다"며 "자신들이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단 사실을 인정하고 어뷰징 기사를 노출시키지 않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정작 해야 할 일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범죄행위가 있다고 보도를 할 수는 있지만, 가족을 연관시키는 건 자극적, 선정적 의도를 갖고 보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아내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명백히 침해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진봉 교수는 이러한 행태는 옐로우 저널리즘의 전형이라고 봤다. 최 교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클릭을 유도하려는 뿌리뽑아야 하는 선정적 보도행태"라며 "선정성과 폭력성을 내세워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옐로우 저널리즘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사건과 연관도 없고 불필요한 내용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는 요소까지 이용하는 건 언론사로서의 책임을 포기한 것"이라고 거듭 비판했다.

최진봉 교수는 어뷰징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 처벌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1차적으로 언론사가 자율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자율심의를 해야 하는데, 인터넷상 경쟁이 심한 상황에서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재 법에 있는 프라이버시, 초상관 침해를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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