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숙향 작가의 신작인 <기름진 멜로>는 첫 회에서 보여준 위트와 빠른 전개가 이 드라마의 전부였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은 늘어지고,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하나 같이 이상한 캐릭터들만 있다.

만화적 상상의 한계;
민폐에 표독하고 돈만 밝히는 여자들, 한심하고 맹목적인 남자들

첫 회를 보며 서숙향 작가의 위트와 재미로 색다른 드라마가 나올 것이란 기대는 3, 4회를 지나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빠른 전개로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이던 것과 달리, 3회부터 12회까지 이어진 이야기는 늘어져 있을 뿐 진전이 없다. 겨우 채설자가 들어와 주방의 틀이 잡힌 것이 전부다.

이 드라마에는 주요한 여성들로 단새우, 진정혜, 채설자, 석달희 등이 등장한다. 이들 중 그나마 능동적인 인물은 채설자가 유일하다. 다른 이들은 모두 수동적이며 자기애만 가득한 인물들이다.

SBS 월화드라마 <기름진 멜로>

현재까지 보여진 단새우 캐릭터는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축은행 회장 딸로 어려움 없이 살아왔던 그녀가 구김살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캐릭터는 많은 시청자들이 저주하는 민폐 캐릭터에 가까운 존재로 전락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좌충우돌하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하지만 의존적 사고는 피곤함을 준다.

결혼식장에 나타나지도 않은 채 도망간 남편. 그를 기다리기 위해 월세 천만 원이 넘는 곳에서 기거한다는 것도 기괴하다. 그동안 살아왔던 것이 있어 그렇다고 할 수는 있지만 아버지가 구속되고 망한 상태에서 설득력은 떨어진다. 무조건 자신만 믿고 기다리라는 아버지 말에만 집착하는 모습 역시 캐릭터의 성향을 구축한다.

채설자의 도발적인 행동도 불편하다. 조폭 출신 오맹달에게 뜬금없이 키스를 하고 함께 잠자리를 가지기 위해 호텔까지 찾는다. 뭐 사랑이란 감정은 순간적인 것이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호텔 문 앞에서 집이 없다는 말을 듣고 불같이 화를 내며 돌아서는 채설자의 행동은 여성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어 불편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이 모시던 새우 어머니를 위함이라는 추측이 가능하지만 그게 더 기괴하다.

석달희라는 인물 역시 채설자와 유사하다. 오랜 시간 사귀며 결혼까지 앞둔 상태에서 호텔 사장과 바람이 났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이니 파혼하고 정리에 나서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풍이의 강렬한 키스에 결혼식까지 치른다. 이 과정에서 풍은 흔들리는 달희의 감정을 느꼈고, 막기 위해 한 행동이었다.

SBS 월화드라마 <기름진 멜로>

달희라는 여성이 어떤 존재인지 드러낸 장면이기도 했다. 육체적인 관계에 약하고, 돈에 약한 한없이 속물인 여성. 성형외과 의사인 달희는 돈 많은 호텔 사장과 결혼에 대한 기대치도 없이 오래된 연인이자 남편인 풍이를 버린다. 이후 풍이가 새롭게 시작하려는 사채업자 건물에 성형외과를 열며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풍이는 호텔에서 쫓겨나고 아내에게도 버림받은 상태에서도 달희만은 놓칠 수 없다고 한다. 오래 사귀었고 자신의 요리 스승의 딸이기도 하기 때문이라 미련이 남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집착 속에 뜬금없이 이미 유부녀가 된 단새우에게 묘한 감정을 쏟아내는 것은 이상하다.

정상적인 캐릭터가 이 드라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도 알 수가 없다. 단새우에게 빠진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은 감정만 앞서 있을 뿐이다. 여전히 정신없고 대책도 없는 단새우는 갑자기 망한 처지에 징징대기는 하지만 그렇게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엄마까지 설거지를 하게 된 상황에서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다. 단새우 집에서 일하던 채설자와 임걱정이 뭉쳐 서풍의 주방에서 일을 하는 과정도 씁쓸하다. 착한 부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충성하는 노동자의 모습은 비정상적으로 다가올 뿐이다.

너무 착한 부자와 그런 주인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노동자의 공생 관계는 잘못된 시각이 부른 설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서 작가의 사고관이라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SBS 월화드라마 <기름진 멜로>

<기름진 멜로>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민망하다. 남자 캐릭터들 역시 찌질하고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여성 캐릭터는 진부하다 못해 시대착오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우려마저 들게 한다.

드라마에서 여자는 여전히 남자가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다. 그리고 여자들은 남자들의 재력에 끌려 남편도 버린다. 수동적이며 누군가의 보호를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인 여성들. 물론 드라마 흐름상 그들이 성장하고 자립해 당당한 여성이 되어간다는 이야기를 담을 수밖에 없다.

뜬금없는 방식으로 서풍과 단새우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억울한 삼각관계의 희생양이 되는 두칠성의 모습은 진부할 뿐이다. 결혼했지만 혼인 신고를 안 한 남자와, 결혼식은 못했지만 혼인 신고는 한 여자. 그들이 불륜 아닌 불륜이라는 설정도 불편하다. 꽉 막힌 이야기 구조 속에서 설득력 떨어지는 전개와 캐릭터는 시청자들을 힘겹게 만들고 있다.

단새우는 당당한 여성으로 성장할 것이다. 단새우 아버지는 누명을 벗을 것이다. 나약하기만 하던 단새우 엄마도 홀로 설 수 있는 여성이 될 것이다. 그렇게 나쁜 부자를 향한 그들의 연대는 성공할 것이다. 그리고 서풍과 단새우는 행복한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뻔한 이야기 속 변수는 존재하지 않고 민망할 정도로 늘어지는 <기름진 멜로>는 민망한 수준이다. 서숙향 작가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드라마적 재미마저 상실한 이 드라마는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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