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인 블로거 '디제'님은 프로야구 LG트윈스 팬임을 밝혀둡니다.

야구에서 투수가 결정구를 던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타자의 허를 찌르는 방법입니다. 타자는 타석에서 구질과 로케이션을 예상하는데, 이와는 정반대의 투구를 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바깥쪽 변화구를 예상하는 타자에게 몸쪽 직구로 승부하는 식입니다. 이럴 때 타자는 꼼짝없이 스탠딩 삼진으로 물러나곤 합니다. 타자가 방망이에 공을 맞히지 못하고 덕 아웃을 향해 돌아서면, 안타나 실책과 같은 변수가 발생하지 않기에 수비하는 팀의 입장에서는 가장 완벽한 공략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타자의 성향에 대한 면밀한 전력 분석과 배터리의 노련한 수 싸움이 필요합니다.

둘째, 타자의 예상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승부를 하는 방법입니다. 즉 바깥쪽 직구를 원하는 타자에게 공 한 개 혹은 반 개 정도 빠지는 투구로, 방망이를 내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자의 예상을 다소 빗나가는 구속이나 로케이션으로 인해 스위트 스팟에 맞히지 못하고 힘없는 뜬공이나 땅볼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삼진을 잡기 위해서는 최소한 공 3개가 필요하지만, 범타를 유도한다면 단 1개의 투구로도 아웃 카운트를 잡을 수 있기에 매우 효율적인 투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투수의 정교한 제구력과 야수진의 안정적인 수비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한 개 정도 빠지는 공을 던지려다 복판에 몰리면 장타를 허용할 수 있으며, 설령 제구가 완벽해 땅볼을 유도해도 내야진이 실책을 범하면 수비하는 팀의 입장에서는 원치 않는 출루나 실점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물론 두 가지 방법 이외에 투수의 구위로 타자를 압도하는 매우 이상적인 방법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타자들이 소위 ‘알고도 못 친다’는 압도적인 구위를 지닌 투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한정되어 있으니 논외로 하겠습니다.

어제 LG와 기아의 잠실 경기의 백미는 5:3으로 뒤진 7회말 1사 1, 2루에서 터진 조인성의 역전 3점 홈런이었습니다. 6회초 이현곤의 스퀴즈와 이용규의 홈스틸로 LG 내야진을 뒤흔들며 승리를 거머쥐는 듯 했던 기아는, 안영명이 내준 조인성의 홈런 한 방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벌써 17개의 홈런과 71타점으로 커리어 하이와 사상 최초 포수 100타점을 향해 순항하는 조인성인데, 흥미로운 것은 어제 홈런을 터뜨린 구질이 자신의 어깨 높이에 오는 엄청나게 높은 볼이었다는 점입니다. 안영명은 까마득하게 치솟아 좌측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조인성의 타구에, 투수들이 일반적으로 홈런을 허용하는 순간 보이는 자책하는 표정이 아닌, ‘어떻게 저렇게 높은 공을 치지?’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날 기아 배터리는 높은 볼로 재미를 보고 있었습니다. 5회말 1사 1, 2루에서 정성훈을, 그리고 6회말 2사 2, 3루에서 이대형을 상대로 모두 높은 볼로 승부해 헛스윙 삼진을 유도하며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두 번의 실패에서 승부구로 높은 직구를 던져 헛스윙을 유도하는 기아 배터리의 패턴을 LG가 읽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7회말 2사 1, 2루에서 조인성은 볼카운트 1-1에서 3구째 높은 직구에 뒷그물로 향하는 파울을 기록했습니다. 파울 타구가 뒷그물로 향할 때는 투수의 투구에 타자가 타이밍을 맞춘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조인성은 이 파울 타구가 나오는 순간, 입을 크게 벌리며 아쉬워했습니다. 노렸던 공이 들어 왔지만, 제대로 때려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파울 타구를 확인하느라 뒤돌아본 포수 김상훈은 그렇다 쳐도, 안영명은 조인성의 표정에서 불안한 낌새를 감지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영명이 볼카운트 2-1에서 4구째에 비슷한 높이에 다시 직구를 던졌고, 조인성의 방망이는 유감없이 돌았으며, 기아는 탄식을, LG는 환호를 터뜨렸습니다.

안영명 - 김상훈 배터리는 전술한 첫 번째 방식으로 범타를 유도하기 위해 조인성에게 높은 볼을 결정구로 던졌습니다. 타자가 공이 눈에 들어와 방망이를 쉽게 내지만 헛스윙 삼진이나 뜬공으로 물러나기 쉬운 공이 바로 높은 직구입니다. 조인성은 전력 분석을 바탕으로 높은 공이 들어올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이미 정성훈과 이대형의 삼진에서 분석한 바도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덕 아웃에서 노트북을 비롯한 전자 장비는 퇴출되었지만, 순간순간의 전력 분석마저 퇴출된 것은 아닙니다.

조인성은 3구째에 들어온 높은 직구에도 방망이가 나갔고, 4구째 동일한 구질에 홈런을 터뜨렸습니다. 따라서 조인성은 이미 예측을 한 상황에서 타격을 했고, 안영명 - 김상훈 배터리는 볼 배합을 상대에게 읽혔으며, 실투를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게다가 네 개의 투구를 변화구 하나 없이 모두 직구로 승부한 단조로운 패턴 또한 독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빠른 공이라도 변화구를 섞어 던지거나 구속의 변화를 주지 않으면 타자의 눈에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결과를 놓고 재단하는 것은 냉혹하지만, 프로는 승패가 극명하게 갈리며 결과로 말합니다. 무의미한 가정이지만, 조인성에게 4구째 승부구로 변화구를 스트라이크 존에 떨어뜨렸다면 아마도 역전 홈런을 허용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앞으로 기아 배터리가 조인성을 다시 만났을 때 높은 직구로 승부할지에 초점을 맞춰 지켜보면 흥미는 배가 될 것입니다. 특히 조인성과 다시 만났을 때, 안영명이 어떤 공으로 승부해올지도 관심거리입니다. 과거 ‘싸움닭’ 조계현은 홈런을 허용한 공을 다시 던져 승부한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안영명은 어떤 선택을 할지 자못 궁금합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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