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KBS와 MBC의 양승동과 최승호 사장 선임은 10년 동안 철저하게 무너진 공영방송을 정상화하는 시작점이었다. 누군가는 이들이 사장 된 것을 두고 공영방송사에 봄이 왔다 환호 하던데, 과욕은 금물. 따뜻한 봄날 이야기는, 봄을 논밭 일구고 씨 뿌리며 새로 일 나설 개시의 절기로 이해할 때만 맞는 말이 된다.

갈 길이 한참 멀다. 그간 부실하게 방치되던, 고의와 부주의로 망실된 온갖 것들이 시스템에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다. ‘전참시’ 사건은 일례에 불과할 것이다. 유사한 사건이 이후에도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10년의 시간은 길었다. 그동안 신보수신자유주의 국가권력이 철저하게 해체시켜버린 ‘시스템들의 시스템’으로서의 공영방송체계다. 그 체제의 정상적, 민주적 복구가 어찌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겠나. 비슷한 시간의 재투자가 필요할지 모른다.

더 많은 시간의 용역이 요구될 것이다. 고장 난 것 고치고 문제된 걸 대체하며 망가진 걸 뜯어내는 체제수선·체질변환의 공사는 결코 하루 이틀의 일이 될 수 없다. KBS나 MBC는 물론이고, EBS와 연합뉴스도 마찬가지. 다들 할 게 많다. 일손 거뒀던 겨울철 겨우 넘겼지만, 고역의 시간은 이제부터다. 일에 열중해 결실을 거둘 때까지 사장과 사원, 사측과 노조 가릴 것 없이 다들 손 발 걷어 부치고 자기 몫 이상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양승동 KBS 사장과 최승호 MBC 사장이 사장후보자 당시 시민들 앞에서 정책발표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그 모범을 사장이 보여줘야 한다. 작동불능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시스템을 수선정비해 재가동하는 막중한 책임과 능력을 새 사장들이 보여줘야 한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할까. 다중이 수긍할 만한 방식을 통해 다수가 인정할 수 있는 사장들을 선발했으니, 사고가 있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다급한 시그널이 위로부터 떨어졌으니. 정비 프로젝트가 아래로부터도 가동하기 시작했으니. 안일의 시스템에 일정한 책임의 긴장이 걸렸으니.

이에 비춰, 지난 두 정권 내내 똑같이 망가져 있다가 촛불을 맞고 해직자들이 복직하며 겨우 봄을 맞나 싶더니 웬걸 일탈의 최남수 사태를 겪은 YTN의 사정은 많이 다르다. 긴 파업 끝에 최 씨를 불신임 투표로 쫒아냈지만, 시스템에는 발동이 채 걸리지 않았다. 구체제의 불안이 계속된다. 뉴스 서비스는 옛 모습 그대로다. 비정상적인 사장 공백, 사장 대행의 상태가 YTN을 여전히 구태로 머물게 한다.

존재감 상실한 YTN의 복구는 시청자들에게 뉴스를 제공하는 보도국의 혁신에서 시작하고 지배구조의 중심축인 이사회의 개혁으로 귀결되어야 할 것이다. 저널리즘의 개조, 지배구조의 개선은 YTN 혁신의 내용이자 목표가 된다. 그 목표해결을 위한 전제조건이 다름 아닌 제대로 된 사장의 임명이다, 용기와 능력,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춘 사장이 조직항해의 키를 잡고 YTN를 불안의 상태로부터 구해내야 한다. 그 일이 급하다.

물론, 사장이 모든 혁신을 책임지는 건 아니다. YTN 저널리즘의 위기를 도맡아 해결할 수 없다. 진정한 변화는 위아래, 안팎의 공조와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렇지만 자기책임을 다하는 사장의 입지는 YTN에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위험조건을 간파하고 대처방안을 강구하며 현장을 지휘 통솔할 능력을 갖춘 사장이 위기탈출에 당장 나서야 한다. 미디어공공성, 공적 저널리즘의 중요한 일축을 차지한 조직의 구조, 저널리즘 재생을 최종적으로 책임질 것이다.

최남수 퇴출파업사태는 물론이고 그 퇴진 이후 보름의 공백조차 너무나 길다. 앞으로 이런 갑갑하고 무력하며 지지부진한 상태가 반복된다면 정말 큰일이다.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더 이상 뒤처지지 않기 위해 변화에 나서야 한다. 서둘러 시스템혁신의 에너지를 내야 할 것이다. 물론 시간에 쫓겨 제대로 된 절차를 지키지 못하면 큰일. 다음과 같은 조건에 YTN 노사는 당장 합의하고 움직여야 한다.

YTN 노조원들이 지난 2월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 사옥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최남수 사장 퇴진'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첫 번째로, 최남수 뽑을 때처럼 사측이 좌지우지할 수 없는, 대주주만이 아닌 노동조합과 시민사회·학계 그리고 무엇보다 시청자의 의견을 실질적으로 대의·반영할 사장추천위원회를 꾸려야 한다. 최남수 사태를 낳은, 특정인에 대한 ‘0점 담합’ 의혹을 받은, 대주주 대표 주도의 비대칭적이고 반민주적인 3 대 2 사추위 구성은 절대로 안 된다. 최소한 3 대 3의 공평한 구성이 첫 번째 조건이다.

두 번째는, 사장 추천의 민주적인 절차와 운영이다. KBS나 MBC 그리고 연합뉴스에서 모두 ‘시민참여’ 방식이 시행되었다. 일정 수의 시민자문단이 후보들을 직접 평가케 하거나, 시민들의 질문을 후보자 면접 과정에 일정하게 반영하는 식이었다. 이 방식을 YTN에서도 채택할 것인가? YTN에서는 두 가지 형태 중 어떤 게 더 타당한가? 외부의 참여성보다는 내부의 공론화가 더 긴요하고 현실적이지 않은가?

지난번과 같은 ‘깜깜이’ 밀실낙점 시스템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우선 못 박자. 참여와 공개의 원칙은 YTN에서도 똑같이 지켜져야 한다. 이를 위해, 후보자들의 정책설명회가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 후보자들은 구성원들을 상대로 출마의 이유와 YTN 개혁의 비전을 소상하게 설명한다. 거꾸로, 구성원들은 면접의 결과를 후보자 적격판단의 과정에 일정비율로 반영한다. 이런 공개과정에 시청자들도 질의전달의 형태로 참여할 수 있다. 이 정도면 합당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추위의 공정한 구성과 사장추천과정의 투명하고 민주적인 운행이라는 핵심적 절차를 현 이사회는 그대로 보장하면 된다. 딱 그까지다. 그 외 사장선임에 대한 권한은 이사회가 내려놓으라고 언론연대는 이미 성명서를 통해 요구한 바 있다. 그게 세 번째 조건인데, 이 세 가지 조건에 의거해 YTN 차기 사장을 빠른 시간 내 뽑는 게 관건이다. 이를 거부하면서 변화를 방해한다면, 그 누구건 향후 비극적 사태에 대한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 외에 또 뭐가 필요한가? 최남수 같은 이는 안 된다면, 그럼 어떤 사람은 된다거나 어떠한 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게 네 번째 조건이 될까? 한동안 YTN 안팎에 이상한 말들이 떠돌았다. 가당치 않은 배후론, 온당하지 않은 음모론이었다. 그런 마타도어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면, YTN 노사가 이미 합의한 “공정방송 훼손 및 권력유착 행위 등에 대한 청산이 YTN정상화를 위한 최우선 과제”임을 정확히 인식하는 인물 모두에게 문호는 개방되어 있다고 분명히 하자.

당연한 이야기다. 지난 16일 자 <기자협회보>는 편집위원회의 이름으로 ‘우리의 주장’이라는 걸 내놓았다. 그 글에 포함된 아래의 대략적인 기준에 맞는 인물이라면, 누가 나서건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다. YTN 안에서건 바깥에서든, YTN 출신이거나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이, 사장 후보자로서 당당히 민주적인 검증에 나설 수 있다. 외부로부터 신망을 얻고 내부의 신임도 구할 수 있는 사장이 될 수가 있다.

공정방송에 대한 열망과 혁신 의지가 분명하고 내부 화합을 이끌 수 있는, 석 달 가까이 급여를 못 받아가며 구성원들이 지키려했던 정신에 공감하고, 좋은 저널리즘이 뉴스룸 곳곳에서 꽃 필 수 있도록 정권과 자본의 외풍을 든든하게 막아주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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