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판문점 선언으로 온 국민을 푸른 꿈에 젖게 했던 한반도 평화의 길은 잠시 멈칫하고 있다. 북한이 한미 썬더훈련과 태영호 전 북한 공사의 국회 강연을 문제 삼고 돌연 남북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중단한 데 이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 참여할 한국기자단의 명단도 접수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그렇지만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발언 수위를 조절하는 등 신중한 자세를 흩트리지는 않고 있다. 이에 호응하듯 미국 트럼트 대통령도 직접 북한 달래기에 나섰다. 18일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사무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은 리비아와 다르다며 “김정은 위원장은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북한을 통치하게 될 것”이라며 안전을 보장했다. 또한 “북한은 매우 부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KBS 뉴스 보도 영상 갈무리

트럼트 대통령의 즉각적인 북한 달래기는 동시에 대북 강경론자인 존 볼턴 국가안전보좌관에 대한 질책의 의미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북한의 공식 반응은 없지만 내심 안도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존 볼턴에 대한 비토에 트럼프 대통령이 반발하지 않았다는 것은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만약 북한이 비핵화 합의를 이뤄 내지 못하면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면서 북한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북한의 불만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약속을 하면서도 선을 넘지 말라는 의미로 북미정상회담에 있어 북한에 끌려다니지는 않을 것을 과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현재로서는 순항하던 북미정상회담이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은 곧 22일 방미할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음을 의미한다. 청와대는 현재 상황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고 있지만 침묵 속에 북미 간의 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열릴 한미정상회담에서 배석자 없이 트럼프 대통령을 독대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배석자 없는 단독회담을 준비한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고비를 맞은 북미정상회담에 한미 간 더욱 긴밀하고 적극적인 이야기가 오갈 것이다. 이에 대해 남관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18일 “북·미 정상회담을 약 3주 앞둔 시점인 만큼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으로 이어지게 하는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목적과 의미를 전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단독정상 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로는 북한과 미국 어느 쪽도 북미정상회담의 판을 깨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 18일 트럼트 대통령의 발언으로 사실상 북한이 원하는 애초의 의도는 모두 관철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양 국가의 체면과 자존심을 유지하는 선에서 고비를 넘는 유연한 장치가 필요할 뿐이고, 여기에 22일 트럼트 대통령과 만날 문재인 대통령의 조용하고 힘 있는 설득이 어떻게 북미 간에 작용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미국이 독대 형식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가 효력을 발휘할 것을 기대하게 한다.

한반도 평화에는 꽃길만이 놓여 있지는 않다. 북미 간에 쌓아둔 신뢰의 이력이 없다는 것도 북한에는 적지 않은 불안과 스트레스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한반도의 평화를 원치 않는 나라와 세력들의 방해도 끈질기게 저항해 올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시대는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 모두에게 가본 적 없는 길이다. 당연히 고비도 없을 수 없다. 아무리 멀고 험해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의 길은 우리가 가야만 할 미래이며, 현재이다. 낯설 정도로 먹먹했던 판문점 선언의 감동과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그 길에 중단은 없을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