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중학교 졸업식이었다. 선생님은 졸업장을 나누어주면서 반에서 성적이 중간쯤 되는 학생에게 말씀하셨다. “사실 네가 최고야. 성실했고,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착했고, 늘 궂은 학급의 일에 솔선수범했지. 세상에 너 같은 사람이 많아져야 하는데...” 그 선생님의 찬사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 말이 가진 역설 때문이었다. 아들이 다니던 중학교에서 반에서 10등 정도 하면 대학에 가기 힘들었다. 제 아무리 최선을 다했어도 우리 사회에서 대학에도 갈 수 없는 정도의 성적을 낸 학생에게 '성실'하다 말하지 않는다. 또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라던가, 마다하지 않은 궂은일에 대해 칭찬하지 않는다. 보통 어른들은 오지랖, 심지어 ‘손해 보는 짓'이라고 말한다.

결과로 평가하고, 이득을 챙겨야 좋은 사람이 되는 세상이다. 어떤 사람이 착한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건지, 그래서 우리들은 잊어버리고 살았다. <나의 아저씨>는 그렇게 우리가 잊어버리고 산 '사람 사는 법'에 대해 깨우쳐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우리가 묻어 버리고 사는 어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기에 <나의 아저씨>는 이 시대 최고의 판타지일 수도 있다.

아마도 이 리뷰는 객관적이지 않을 것이다.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에 내 마음이 너무 깊이 들어가 모든 것이 고와 보인다. 아마도 드라마가 표현한 '아저씨' 세대의 공감 때문에도 그렇다. 그러기에 이 리뷰는 리뷰라기보다는 <나의 아저씨>에 대한 감탄사 같은 것이다.

스포츠카 여행 대신 할머니의 장례식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

동생 기훈(송새벽 분)과 함께 청소 용역업을 하던 형 상훈(박호산 분)은 가족들 몰래 수익금의 일부를 장판 밑에 숨긴다. 뒷주머니를 차려나 했는데, 그 뒷주머니의 소용처가 <나의 아저씨>답다. 동생 기훈이 질색하든 말든, 회사 짤리고 사업을 두 번이나 말아먹고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린 이 아저씨는 맨날 자신의 삶에 대해 먹고 싸기만 했다며 한탄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에 먹고 싼 것이 아닌 ‘기똥찬 순간’을 만들기로 했다. 바로 그 다른 순간을 위해 몰래, 아니 사실은 어머니도 알고 동생도 알게 모아둔 돈. 상훈은 그 돈으로 삼형제가 멋들어진 라이방을 쓰고 검은 슈트를 입고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여행을 떠나고자 했었다.

그 상훈의 꿈을 보면서, 그랬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은 저 삼형제의 폼 나는(?) 여행이겠구나. 하지만 드라마는 그런 알량한 예측을 집어 던졌다. 물론 삼형제는 검은 라이방을 썼고, 검은 슈트를 입었다. 하지만 그곳엔 바다가 보이는 스위트룸도 빨간 스포츠카도 없었다. 그들이 입은 건 상복이었고, 그들은 지안이(이지은 분) 할머니를 모시는 납골당행 버스에 올라탔다.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

상주라고는 이지안 혼자인 쓸쓸한 상가를 본 상훈은 그동안 자신이 모은 돈을 털어 상가를 풍성하게 만든다. 동생 동훈에게 너만은 회사에 남아 어머니 돌아가시면 상가를 흥청이게 만들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상훈. 그 로망을 지안이 할머니 장례식에서 실현한 것이다. 즐비한 조화, 그가 불러들인 이웃들, 그리고 할 수 있는 모든 격식을 차린 젯상과 절차들.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추모도 잠시, 상훈은 행복해했다. 스포츠카 타고 떠난 스위트룸 호텔 여행과 할머니의 장례식. 이 전혀 다른 선택, 바로 여기에 <나의 아저씨>란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함축되어 있다.

박동훈은 그런 사람이었다.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존재감이 없던 사람. 그래서 회사에서도 자신이 해오던 설계팀에서 밀려 안전진단팀으로 갔지만 그곳에서도 묵묵히 솔선수범하며 자신의 일을 해오던 사람. 형제 중에 가운데. 늘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형과 동생 사이에서 내색하지 않고 집안의 궂은 일, 뒤치다꺼리를 해오던 사람. 청렴했던 그가 잘못 배달되어 온 돈봉투 앞에서 어머니가 말한 형의 분식집 비용으로 흔들려야 했던 그런 사람. 그래서 야망도 열의도 없어 보여 변호사가 된 아내에게 밀쳐지게 돼버린 남편. 우리가 사는 세상에 공기처럼 꼭 있어야 될 사람이지만, 그 소중함이 당연하게 여겨져 뒤로 밀쳐졌던 사람. <나의 아저씨>는 그런 박동훈을 뜻하지 않게 얽혀진 회사 내 정치와 아내의 불륜이란 사건을 통해 세상 밖으로 길어 올린다.

세상 가장 불쌍한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행복의 방식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

그렇게 보잘 것 없이, 하지만 당연하게 흐르던 박동훈의 삶에 빚어진 파열음. 본의 아니게 얽혀진 그 사건으로 인해 박동훈의 삶은 바닥을 친다. 그리고 그 바닥에서 만난 이지안. 그의 말처럼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애라 생각했던 그 아이가 박동훈을 불쌍하다고 하자, 그의 서러움이 봇물 터지듯 터져나온다. 도저히 위로 받을 수 없는 대상에게서 받는 공감과 서러움이 세상 밖에 던져진 두 사람을 '연대'로 묶는다. 그리고 그 세상 밖으로 던져진 두 사람의 공감과 연대는 그들처럼 세상 살기 너무 힘들었던, 세상에서 누구 하나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 힘들었던 모든 이들을 위로한다.

박동훈의 아내 강윤희(이지아 분)와 도준영(김영민 분)의 불륜 사실을 알고, 도준영과 얽히게 된 이지안은, 자신에게 잘해준 박동훈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불법적 방식을 통해 그를 돕고자 한다. 하지만 그런 이지안의 방식은 외려 삼안 E&C의 사내정치와 엇물려 박동훈을, 그리고 그녀를 위기에 빠뜨린다.

드라마는 삼안 E&C의 사내 정치, 그런 사내 정치를 둘러싼 왕 전무와 도준영의 갈등, 도준영과 박동훈 아내의 불륜, 그런 불미스러운 사건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엮인 이지안, 그리고 그런 이지안을 옭죄는 이광일(장기용 분) 등 우리 사회의 부도덕한 잡음들을 드라마의 한 축으로 삼는다. 그리고 부도덕한 사건들을 헤치고 나가는 이지안의 저돌적이면서 맹목적인 사랑과, 그런 이지안의 자기희생적인 헌신을 보듬고 결국 그녀를 부도덕한 웅덩이에게 건져내며 그 자신도 회생한 박동훈의 우직한 행보를 대비시킨다.

그리고 그런 박동훈의, 박동훈 주변 사람들의 선택을 통해 사람의, 어른됨의 자리를 되짚는다. 이제는 무색해졌지만, 나이 마흔을 '불혹'이라 했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역설적으로 쉽게 혹해지는 시절, 혹은 요즘 세상은 키덜트라 하여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어른답지 않아도 됨을 허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월은 흘러 어느덧 누군가를 아니, 무엇보다 나를 책임져야 하는 나이에 속절없이 도달한 이들은 이익과 셈이 앞서는 세상 속에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혼란스럽다.

반갑게 웃으며 손 마주 잡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하여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

여전히 나이만 들었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는 어른들을 위해, <나의 아저씨>는 이 시대의 격언을 남긴다. 자신이 애써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이지안 할머니의 장례식에 쏟아 붓고는 한없이 행복해 하는 박상훈처럼, 세상 젤 불쌍하고 추운 아이를 알아버린 바람에 그 아이를 책임지고자 애쓴 박동훈처럼, 비록 실수는 했지만 도망치지 않고 책임지려 했던 박동훈의 아내 강윤희처럼, 20년의 애증에 도망치지 않고 답했던 겸덕(박해준 분)처럼, 그리고 기꺼이 '우리 사람'이라며 이지안을 반기고 함께했던 후계동 사람들처럼. 드라마는 사람답게 행복해지는 방식에 대해 진득하게 그려내며 나름의 답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아내보다 형제가 먼저여서 늘 아내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한 것 같던 사람. 하지만 그는 정작 아내의 불륜을 혼자 끝까지 삼키며 가정을 지키려 했다. 하루일과가 끝나면 동네 친구들과 모여서 술 마시는 게 낙인 상훈, 기훈 그리고 후계동 사람들. 그들은 세상 외로운 이지안이 다시 태어나고 싶은 좋은 곳의 인연들이 되었다. 사람을 안다는 것, 그 인연의 무게를 '행복'으로 답한다.

살아가며 만났던 인연들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도 반갑게 인사하며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손을 마주잡을 수 있는, 그만큼만의 삶이 어쩌면 우리가 이 생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복이 아닐까. <나의 아저씨>가 시작될 때 가장 한심했던 사람들이 드라마의 마지막 좋은 인연이 되어 우리의 삶을 환기시킨다. 혹시 당신 주변에 당신이 하잘 것 없다 했던 좋은 인연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요?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당신의 삶, 주변의 삶부터 잘 챙기세요라며.

후계동 사람들은 오늘 저녁도 정희네에 모여 술 한 잔 걸치며 그렇게 훈훈하게 살아갈 것이다. 대표가 된 박동훈도, 가끔은 이지안도, 어쩌면 이젠 추억이 된 겸덕도, 그리고 드라마를 본 우리도. 최소한 드라마의 여운이 흐려지기 전에 박동훈처럼 사람답게 행복해지는 삶에 대해 고민하고 좋은 인연에 애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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