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가석방된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법무부는 최근 가석방심사위원회를 열어 한상균 전 위원장 가석방을 허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21일 오전 10시 경 한상균 전 위원장은 다른 가석방 대상자들 800여명과 함께 출소하게 된다. 한상균 전 위원장은 지난해 5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확정 받았고 현재까지 2년 5개월여 복역했다. 형기를 6개월을 좀 더 남긴 상태에서 출소하는 셈이다.

한상균 전 위원장의 상황을 돌아보면 아쉽고 안타깝다. 한상균 전 위원장에겐 2015년 11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도한 혐의가 걸려있다. 당시 집회는 야권이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는 거의 모든 의제가 망라되었다. 여기에는 쉬운 해고를 가능케 하고 비정규직을 확산시키는 노동개악 반대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폐기, 사드 배치 반대,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과 참사의 진상규명, 사회 공공성 제고,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화 및 재협상 등이 모두 포함됐다.

2015년 11월의 첫 집회에서 백남기 씨가 물대포를 맞아 쓰러졌고, 거듭된 박근혜 정권의 실정과 서서히 드러나는 국정농단 관련 사건들 탓에 집회 규모는 점점 불어났다. 이러한 흐름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 및 탄핵을 요구한 촛불집회까지, 야권의 단결된 투쟁이라는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졌다.

당시 수사기관이 한상균 위원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사실상 2015년 말까지의 시위에서 벌어진 여러 상황을 대표로 책임지라는 것인데,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는 그에게 빚을 지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여야 4당 대표들 간의 만찬에서 “한상균 위원장이 눈에 밟힌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이런 맥락과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2018년 초 한상균 전 위원장의 사면복권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사면복권은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원포인트’로 사면복권의 수혜자가 된 것은 정봉주 전 의원이었다. 정봉주 전 의원은 BBK 관련 의혹을 앞장서서 제기하다 기소됐고 선거권을 상실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에서 보면 정치적으로 억울할만한 처우였다. 그러나 한상균 전 위원장이 세우려 했던 ‘정의’가 정봉주 전 의원의 것과 비교해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였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연합뉴스)

누구는 “또 한상균 엉엉 한다”며 비아냥댈지 모르겠지만, 한상균 전 위원장 개인을 신격화할 이유는 없다. 한상균 전 위원장 사면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됐던 것은 그가 영향력 있는 노동자 단체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앞서 민중총궐기를 언급했지만 이것 역시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민중총궐기의 전편은 2013년 말 철도노조 파업과 ‘안녕들하십니까’ 라는 대학 사회로부터 시작된 공동체의 호응이었다. 노동의제와 보수정권에 대한 정치적 반대는 이미 이때 동지적 관계를 맺었다. 이제 당시의 제1야당은 여당이 됐다. 한상균 전 위원장의 사면복권은 이 정권이 노동의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터였다.

지난 일을 굳이 시시콜콜 말하는 것은 이제부터가 또 걱정거리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권한이 가장 강력한 취임 후 1년 간 자신이 약속한 개혁 의제를 밀어 붙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이 상당한 폭으로 인상됐고 일부 비정규직들은 정규직화의 기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취임 1년을 지나는 이때부터는 다소 위험한 상황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통계청이 지난 16일 발표한 ‘4월 고용동향’은 취업자 증가 폭이 3개월 연속 10만 명대에 그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제조업 취업자 수는 전년대비 6만8천여명 줄어 11개월 만에 감소한 걸로 나타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마련해 직접 챙기겠다고 했음에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물론 단지 몇 가지 수치만을 가지고 문재인 정권 경제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논하는 것은 이르다. 글로벌 경기의 영향에 지정학적 리스크의 영향까지 따지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적 선택지가 많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이런 위기론이 대두될 때 정권 핵심부가 어떤 반응을 내놓느냐는 중요하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일종의 ‘깜빡이’로 향후 정권의 정책 방향이 어디를 향할지를 추측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경험이나 직관으로 봐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과 임금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험이나 직관’이란 조건이 들어간 것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연구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상식으로 말하자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이나 임금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제정책의 콘트롤타워가 어떤 정책의 방향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 그럼에도 김동연 부총리가 이런 방식으로 발언한 것은 관료의 어떤 관성을 보여준 것이다. 언제든지 위기론을 빌미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다는 걸 예고했다는 얘기다.

김동연 부총리와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공개설전(?)을 벌인 것도 앞으로의 일을 걱정스럽게 한다. 쟁점은 최근 경기가 침체 국면에 들어간 것인지의 여부다. 김광두 부의장이 “침체 국면의 초입”이라고 평가한 것에 대해 김동연 부총리가 17일 반론하자 바로 이어서 재반론이 나왔다. 김광두 부의장은 기업인들과 공무원들이 의지를 가지지 않고 있고, 사회적 분위기도 성장보다는 분배에 맞춰져 있다면서 통계 수치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를 직시할 것을 주문했다. 김광두 부의장은 “해외로 본사와 공장을 이전하려는 움직임들이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는데 이런 흐름은 무엇을 의미할까?”라며 “노사간의 균형”을 언급하기도 했다. 강성노조 때문에 생산기지의 해외이전이 불가피하다는 재계의 볼멘소리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개혁적 색채가 분명한, 파격적인 노동정책이 힘을 받고 추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정부의 누구를 경질해야 한다거나 누구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크다거나 또는 엇박자가 난다거나 하는 1차원적 문제가 아니다. 그런 논란은 지엽적인 것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정권이 놓여있는 환경 그 자체이다. 위기론이든 현실론이든 개혁의 속도를 조절하고 재계의 입장도 반영해야 한다는 말을 해줄 사람과 세력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에 맞는 요구를 전달할 매개나 세력이 과연 지금 존재하는가? 노동계 출신이라는 인사들 몇이 나름 요직에 앉아있긴 하지만 정부의 곤란한(?) 입장을 대변하는 정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다. 결국 노동자와 노동자를 대변하는 세력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키울 수밖에 없다. 꼭 들이받고 싸우자는 게 아니라 목소리를 내야 이 정권도 제대로 된 개혁을 마음 놓고 추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한상균 전 위원장의 사면복권이 무산될 때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사례를 찾기 위해 멀리 돌아갈 것도 없다. 당장 대통령이 정규직화를 약속했던 인천공항 비정규직 문제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협상이 타결된 이후 한국GM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를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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