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최악이었던 것은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네 명 국회의원의 사직서 처리마저도 정쟁의 도구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누구보다 헌법을 엄중하게 대하고 지켜야 할 입법부가 헌법을 가벼이 여기고 농단했다는 것은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다. 홍익표 의원의 말처럼 국회를 해산하자는 것도 무리가 아닌 상황이었다. 그러는 동안 국회에 쌓인 1만여 건의 법안에는 먼지만 쌓일 뿐이었다.

가까스로 사직서 처리는 됐지만 20대 국회는 국민들에게 게으르고 오만한 권력의 인상을 강하게 남기는 계기가 됐다. 15일 MBC <100분 토론>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국회의원이거나 국회의원을 지냈던 사람들은 이런 장기간 휴업 상태의 국회를 ‘정치’란 모호한 개념으로 합리화하려는 구태를 그대로 노출했다. 전현직 의원들 간의 설전보다도 오히려 시민의 말이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시민토론자는 “대통령은 7시간 반 동안 뭘 하는지 몰라서 탄핵까지 됐는데 국회는 42일 동안 개점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탄핵조차, 해산조차 되지 않는 현실”을 꼬집었다. 안상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한 시민의 질책에 대해서 “쉬어가는 기간도 일하는 거라고 볼 수 있다. 국회의원은 사실 하루 24시간 365일 일을 합니다. 지역주민들한테도 가야 되고”라는 말을 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내용이다.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대통령이 있는 곳이 곧 집무실이라는 논리와 같았다.

댓글공작 특검법안 본회의 상정을 요구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4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국회의원 사직처리를 결정하는 본회의 개회를 막기 위해 회의장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들은 말하고 있다. 이런 국회라면 차라리 해산하는 편이 좋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은 일을 하지 않고도 매달 1억에 가까운 세비를 꼬박꼬박 챙겨가고 있다. 국민들이 국회해산과 국민소환제를 외쳐도 반성도, 부끄럼도 없다. 의무는 방기하고 국회의원이라는 권리만 빼먹고 있다. 파렴치한이 따로 없다.

국민들은 그런 국회를 바라보며 제왕적이라고 한다. 의무는 없고 권리만 산처럼 쌓아놓고 사는 국회라면 당연한 비판이다. 매년 조사해온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는 부동의 꼴찌 자리를 도맡아왔다. 그럼에도 각 당의 정략에 따라 시도 없이 국회를 마비시켰고, 국민의 비판에는 애써 귀를 닫았다.

그러는 동안 문재인 정부가 시행한 청와대 국민청원은 새로운 여론을 모으는 장치로 국민들 사이에 존재감을 키웠다. <100분 토론>에서도 나온 말이었다. “국회가 일하고 있으면 국민들이 국회로 청원하지 왜 청와대로 청원하겠느냐”고 전현직 의원들에게 강제 침묵을 강요하는 묵직한 돌직구를 날린 것이었다.

지난 10일 한 인터넷 매체인 topstarnews는 노무현 정부부터 현재까지 대통령 취임 1년 동안 국회를 비교해 주목을 받았었다. 발의 건수는 서로 상이했지만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집권 1년 동안 국회는 발의된 법안을 모두 처리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1년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5,604건의 발의된 법안 중 처리된 것은 748건으로 불과 13.3%밖에 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본회의 보이콧 중인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피켓 시위를 하던 중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휴대전화로 촬영하자 자유한국당 김광림 의원이 이를 저지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한국은 현대사를 뒤바꿀 수도 있는 거대한 의제를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나 4월 27일 역사적인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성공리에 개최되었고, 약간의 잡음도 발생하고 있지만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이런 중차대한 국면에 국회가 힘을 실어주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일하는 정도는 해야 정치를 떠나 국민의 자격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럴 때 국회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34억에 달하는 세비만 챙겨갔다. 그래도 누군가는 양심이 있었던지 4월 세비를 어린이병원에 기부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겨우 한 명이었다. 부끄럼조차 잊은 모양이다. 6월 선거가 총선이라도 이런 꼴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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