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꼭 한 달 정도 남았다. 언론은 여당의 압승을 예상한다. 대구경북을 제외한 모든 광역지자체장 선거에서 승리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일단 현재로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 이번 지방선거의 하이라이트는 오랫동안 보수정치의 주요 근거지가 되어 온 부산경남의 수복(?)이 될 것이다. 부산시장과 울산광역시, 경남도지사 판세는 나쁘지 않다. ‘드루킹’ 사건에도 더불어민주당의 김경수 후보 지지율은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김태호 후보 쪽 지지세의 결집 현상이 관측된 것은 사실이지만 유의미하게 평가할만한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보수정치가 이렇게까지 수세에 몰리게 된 이유는 뭘까? 언론은 보통 정권심판론이 위력을 발휘하기 마련인 선거가 오히려 ‘야당 심판’의 구도 속에 있고 남북관계가 실제로 개선되고 있다는 어떤 효능감이 이를 강화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북미정상회담이 지방선거 전날인 6월 12일 이뤄지게 됐다는 점은 이 구도가 선거 종반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예감을 갖도록 하는 게 사실이다.

돌발변수를 배제할 수 없지만 미국의 태도를 보면 북미정상회담은 긍정적 결과를 맞을 가능성이 클 듯하다. 북한이 밝힌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계획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Thank you, a very smart and gracious gesture!”라고 반응한 게 그렇다. 일부 보수언론은 북한이 밝힌 계획을 따를 경우 일종의 ‘증거인멸’을 도와주는 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적어도 백악관은 그렇게 보지 않거나 최소한 이를 용인하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지난 남북정상회담 직후 여론은 전문가들과 여의도 관계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현 정권에 더 호의적인 방향으로 움직였다. 북미정상회담의 결과가 긍정적일 경우 비슷한 구도가 강화될 것이다. 그러니 일부 언론이 남북관계개선이 지방선거 의제를 마치 ‘블랙홀’처럼 전부 빨아들이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일이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북미정상회담이 만에 하나 실패하면 “또 속았다”는 대중적 감각에 불이 붙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시나리오의 파괴력이 클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의 반사이익을 챙겨야 할 야당의 상황이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낮 청와대에서 열린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초청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수야당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속았다는 공통감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감각은 삼성에 대한 대중적 분노에서도 드러난다. 과거 재벌개혁의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였던 “나라를 먹여 살리는 삼성”이란 비호논리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경제권력에 예외적 권한을 보장하는 것의 어떤 ‘효율성’보다 사람들이 먼저 떠올리는 것은 살시도니 비타나니 하는 말 이름으로 대표되는 ‘불공정성’이다. 이미 ‘나’를 속인 상대에게 다시 희망을 걸 수 있으려면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보수야당이 했어야 할 일은 철저한 반성과 쇄신이다. 지금까지도 유권자들에게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반복해도 될까 말까다. 그러나 특히 자유한국당은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대중의 냉소적 감성에 호소하는 기만의 악순환을 스스로 선택했다. 정권이 ‘개혁’ 아젠다를 담아 추진한 개헌을 ‘사회주의’로 포장했다. 지금도 소득주도성장 등 주요 경제정책의 맹점을 정책적으로 파고들기 보다는 어설픈 색깔론으로 일관하고 있다.

‘드루킹 특검론’이 대중적 동의를 얻지 못하는 것도 이런 상황과 맞물려 있다. 유권자의 시각에서 이 문제에 대한 보수야당의 행보는 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아니라 오직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는 듯 보인다. 특검 수사에 대한 동의가 보수야당과 정파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것으로 등치되면서 특검론은 ‘야당 심판’의 구도 안에 갇혀 버렸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4일 오전 국회 로텐더홀에서 드루킹 특검을 촉구하고 있다(연합뉴스)

보수야당이 14일 본회의 개최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런 구도의 강화를 거들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13일 국회에서 심야의총을 열고 14일 본회의를 사실상 저지하기로 했다. 이날 본회의는 지방선거 출마에 따른 4명 의원의 사직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정세균 국회의장이 여당의 요구에 따라 소집하는 ‘원포인트’의 형태로 열릴 전망이다.

자유한국당의 주장은 이 본회의에서 특검법이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빠른 특검 수사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이런 요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본회의를 저지한다고 해서 특검법 처리가 더 빨라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14일까지 4명 의원의 사직안건이 처리되지 않을 경우 해당 지역구의 국회의원 공석 상태가 내년 4월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건 특검 수사보다 더 큰 문제이다. 이런 면에서 자유한국당의 태도는 대의를 이해득실의 인질로 삼고 있다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하다.

끝까지 지켜봐야 할 문제지만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대로 지방선거는 여당의 압승으로 끝날 것이다. 그 결과는 틀림없이 정계개편의 촉발이 되겠지만 선거 직전까지 기만적 행태로 일관한 보수야당이 노선적 지향을 중심으로 한 영향력 있는 야당을 재건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본다면 양당제적 구도의 회귀 속에서 2020년까지 여당의 독주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여당의 독주가 어떤 오만이나 불통의 문제로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으로는 충분치 않다. 예를 들어 재벌 중심의 기만적 효율성에 대한 ‘원한감정’이 어디로 향하는가에 따라 한국 정치의 양상은 크게 변화할 수 있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 이 ‘원한감정’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제논리로 이어졌고 이는 극우포퓰리즘의 성장을 야기했다. 한국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사회적 문제의 원인을 여성 등 소수자의 존재에서 찾는 귀인오류와 교육, 부동산, 가상화폐 등 ‘나의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에 대한 즉자적 반감의 표출이 이의 가능성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원한감정’들은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 조직돼야 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에너지로서 활용돼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물론 현실 정치에서 성공적인 마무리를 할 수 있겠지만 ‘만능’은 아니기 때문에 야권에 속하는 누군가는 장기적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런데 보수야당의 붕괴로 오히려 양당구도가 강화되는 이 상황에서 그런 가능성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한국당의 자해적 행보는 오히려 ‘맥거핀’이 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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