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이사는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 방송법 4장(한국방송공사) 46조(이사회의 설치 및 운영 등)

'이사는 방송에 관한 전문성 및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한다' -방송문화진흥회법 6조(임원)

한국의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은 현행법에 따라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에 그 권한이 있다. 그러나 관행적으로 정치권은 여야 추천 비율을 정해 공영방송 이사회를 꾸려왔다. 그 결과 공영방송 이사회는 정쟁의 장이 되었고, 친 정권 성향의 사장이 선출되면서 '정치·자본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설립 취지를 잃고 흔들려왔다.

이러한 부작용을 구조적으로 개선하고자 국회에서는 '방송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에서 중점적으로 논의되는 방송법 개정 방향은 여야 추천을 방송법에 법률로써 명시하고 있어 반발이 거세다. 언론계와 시민사회에서는 공영방송 이사, 또는 사장 선출 과정에 시민과 각 방송사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주최로 열린 긴급 토론회 '국회의 공영방송 이사 추천, 이대로 좋은가?'에서는 언론노동계와 언론시민사회 인사들이 모여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과 관련한 방송법 개정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왼쪽부터) 김연국 언론노조 MBC본부장,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 이경호 언론노조 KBS본부장,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국장, 박태순 민언련 정책위원, 김서중 민언련 정책위원장, 김동찬 언론연대 사무처장. (사진=미디어스)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주최로 열린 긴급 토론회 '국회의 공영방송 이사추천, 이대로 좋은가?'에서는 언론노동계와 언론시민사회 인사들이 모여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과 관련한 방송법 개정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공영방송 이사회가 정치권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큰 틀 아래 기존의 시민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을 비롯하여 이사회의 전문성과 대표성을 담보할 수 있는 '노동이사제'가 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토론회에서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은 "(공영방송 이사회에)각계 목소리를 반영하고자 한다면 방송독립, 공공성에 관한 이해 당사자이자 현업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방송노동자 그 자신이 직접 이사회 구성에 참여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촛불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라며 "이참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고 제안했다.

공영방송 이사회는 사장 선출을 포함한 공영방송사의 주요 현안을 결정하는 기구이자 국영도, 민영도 아닌 공공성 책무를 부여받는 '시민의 방송'이라는 정체성을 지닌다. 때문에 시민 의견을 반영한다 해도 전문성과 대표성을 온전히 담보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 노동이사제가 이를 보완할 수 있다는 제안으로 해석된다.

공영방송사의 사원이 이사로 활동하는 사례는 영국의 공영방송 BBC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날 발제를 맡은 박태순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의 설명에 따르면 BBC는 2017년 1월 1일 BBC 헌장이 개정됨에 따라 BBC의 수신료 수입을 감독하는 최고기구인 'BBC 트러스트'가 폐지되고, 영국 방송통신 규제기관인 오프컴과 BBC 이사회의 규제를 받게 됐다.

이에 따라 BBC의 지배구조는 총 14명으로 구성되는 BBC 이사회, BBC의 모든 사업을 집행하며 총 10명으로 구성되는 BBC 집행위원회로 구성됐다. BBC 이사회는 4명의 집행위원회 위원과 비집행위원 10명으로 구성되는데 집행위원회 소속 위원이 바로 BBC 사원들이다. BBC 이사회는 BBC의 모든 사업 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집행위원회 위원들, 즉 사원들이 주도한다. 공영방송 이사회에 이해당사자인 방송사 구성원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는 셈이다.

KBS 이사인 김서중 민언련 정책위원장 역시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에 있어 방송사 구성원들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정책위원장은 "민언련이 제시해 이재정 의원 대표발의한 안의 핵심은 완충지대를 만들자는 것"이라면서 "그러면 완충지대를 만드는 고민이 필요하다. 학계와 구성원이 얘기되는데 현실적으로 학계의 대표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PD연합회, 기자협회 등의 구성원 조직이 전문성을 가지고 추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5일 대표 발의한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은 KBS 이사회 구성에 있어 KBS와 KBS 구성원, 방송학계 추천 이사가 전체 이사의 3분의 1 이상이 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사장 임명시 시민 100명 이상의 사장추천위원회를 홀수로 구성해 시민이 직접 공영방송 사장을 선출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와 별개로 토론회 참석자들은 정치권의 나눠먹기식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은 퇴행이라며 시민참여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경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촛불 정국 속에서 대한민국 시민들은 전 세계가 놀라워하는 참여민주주의를 만들어 냈고, 사회 패러다임을 바꿨다"며 "정치권력이 시민들의 참여민주주의 성숙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시대다. (공영방송은) 성숙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반영해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연국 언론노조 MBC본부장도 "촛불혁명 이후 직접민주주의, 숙의 민주주의 등 심화된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며 "대의제 민주주의는 불가피하지만 과연 그게 민주주의의 전부인가 의문이다. 숙의,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영방송 이사회는 법이 그렇게 돼 있지도 않지만, 정파적으로 형성된다. 여기서 벗어나 숙의·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회 공전 상태에서 방송법 개정안 통과가 당장은 어려운 지점을 들어, 우선 제도의 운영부터 제대로 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국회는 공영방송 이사 추천의 권한이 없는데도 위법적인 관행을 유지했다. 문제가 된 것은 이 제도를 잘못 운영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제도개선이 안되더라도 민주당이 먼저 권한을 내려놓는 정치적 선언을 하고, 이와 병행해 이 선언을 담보할 수 있는 방통위의 구체적 이행 약속이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사무처장은 "(방통위가)여야 가릴 것 없이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에 정당 추천을 배제하고 모든 선임절차를 공개해 다양한 방식의 시민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과반표결이 아닌 합의 방식으로 지역성과 성균형까지 고려한 기준을 통해 법 제도 개선 없이 선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방통위는 전혀 개혁적 방안을 내지 않고 있다"며 "방통위 스스로 증명하지 못하는 한 민주당이 아무리 정치적 개입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개선은 어렵다"고 우려했다.

방통위 산하 방송미래발전위원회(위원장 고삼석 상임위원)은 최근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공개했다. 이른바 '정치적 후견주의'를 막기 위해 공영방송 이사회 정원의 3분의 1을 학술·직능·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로부터 추천받아 '중립지대' 이사로 구성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러나 이사 추천권을 방통위가 가질지 국회가 가질지 확정되지 않았고, 둘 중 어디가 추천권을 갖더라도 '정치적 후견주의'를 막겠다는 본 취지를 살리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언론시민사회로부터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제도만으로도 방통위가 의지만 있다면 시민 참여를 보장한 이사회 구성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김 사무처장의 지적이다.

한편, 현 KBS 이사회와 방송문화진흥회의 임기는 오는 8월 종료된다. 당장 3개월 후 새 공영방송 이사진을 구성해야 하지만 국회 공전 상태로 방송법 개정은 요원하고, 국회에서 주로 논의되는 방송법 개정안의 내용 역시 '시민참여'는 배제되어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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