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도우리 객원기자] 가뭄이다. 곧 치를 6.13 지방선거 이야기다. 지방정부의 수장인 광역자치단체장 공천 후보 중 여성은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통틀어 단 1명에 불과하다. 표방하는 이념이나 색깔은 달라도 여성 후보 가뭄 현상은 집권 여당이나 제 1, 2 야당 할 것 없이 같다. 성별뿐 아니라 나잇대도 모두 50대 중반 이상으로 편향돼 있다. 중산층 중년 남성층만 득시글한 정치판, ‘아재 정치’의 문제가 심각하다.

더불어민주당이 공시한 지방선거 공천 후보

뿌리 깊은 아재 정치

지방 정치에서의 ‘아재 정치’는 유구하다. 1995년 민선 지방자치제 출범 이후 총 6회의 지방 선거를 치르는 동안, 지방 정부의 광역자치단체장과 시·도지사로 선출된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기초자치단체장 당선자도 총 1378명 중 여성은 21명(1.52%)에 불과했다. 중앙 정부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20대 국회 기준, 17%)에 비해 턱없이 낮다(이마저도 세계의원연맹 기준 193개국 중 116위다). 당선자 평균 연령도 50대 중반 이상, 평균 학력도 대졸 이상이 대부분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총괄하고 책임지는 광역·기초자치단체장을 중산층 중년 남성층이 독식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지역구 기초의원 여성 당선자 비율만큼은 2014년 지방선거 기준 25.5%로 높은 편이다. 기초의원 직책은 광역·기초자치단체장이나 광역 의회 직책에 비해 적은 권한과 책임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가부장-안사람 구도로, 중대한 업무와 결정권이 남성에게 편향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비슷하게 남반장-여부반장, 남교장-여교사 등의 사례들이 있다. 왜 이러한 정치의 ‘아재화’가 나타나는 것일까?

바른미래당이 공시한 광역단체장 후보

견고한 아재 정치 네트워크

현재 공천 제도 자체만 놓고 보면 여성 후보에게 딱히 불리한 요소는 없다. 문제는 제도의 운영 주체가 남성 기득권이라는 점이다. 비례대표 공천 시 홀수 순번에 여성을, 짝수 순번에 남성을 할당하는 제도인 남녀 교호순번제가 대표적 사례다. 남녀교호순번제는 비례대표제 명부 작성 시 ‘비례대표 여성 의원 50%할당’이라는 규정을 지키면서도 여성 공천 후보를 당선 가능권 벗어난 쪽에 몰아 넣는 편법의 횡행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국회의원 선거나 광역단체장 선거에서는 구속력이 없고, 시·도의원 선거에만 적용토록 돼 있다. 하물며 권고 수준에 머무른 지역구 여성의원 30% 할당제를 지키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여성 후보 가산점 제도도 사정은 비슷하다. 할당제가 의무화되지 않은 가산점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공천은 관련 서류만 잘 갖추고, 열심히 발품만 판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당 차원에서의 인맥 및 인프라 등의 적극적 지지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 네트워크를 기득권 남성들이 쥐고 있다 보니 여성 후보가 제대로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 게다가 경쟁력 있는 기존 여성 후보를 배제시키기 위해 신입 여성 후보에게 가산점을 주는 등 공천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여성 후보를 배제한 사례들도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애초에 여성 정치인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네트워크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제6회 지방선거 성별 당선 비교(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전략공천은 역차별이다?

이번 인천 부평구청장 인천시장 선거에서 사전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렸던 홍미영 후보가 경선에서 탈락했다. SNS에서 ‘메갈 후보’로 낙인 찍힌 탓이 컸다. ‘비겁하게 전략공천의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 주요 이유였다. 전략공천이 기존에 지역구에 헌신한 예비 후보자들을 좌절시키므로 역차별이라는 것이다. 여성 공천 후보에 대한 전형적인 비난 논리다. 하지만 전략공천은 공고한 기득권 장에 사실상 입성이 불가능한 약자를 끌어주기 위한 적극적 조처다. ‘지역구 헌신 후보’가 애초에 지역구에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남성중심적 정치판이 보상을 가져다 줄 것이란 믿음 덕분이다. 무엇보다 역차별을 주장하는 이들은 ‘지역구 헌신 후보’의 노고만 말할 뿐, 정작 유권자들의 ‘다양한 후보 선택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정치적인 것이 개인적인 것이다

‘아재 정치’는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미친다. 무조건 구성원을 다양화하는 것만으로 대의성을 높인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 ‘아재 정치’가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것도 분명하다. 대표적 사례가 ‘미투 고발’ 흐름이다. 특히 미투 고발로 낙마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사례는 가부장 중심 정치의 폐해가 정당의 이해에도 커다란 리스크가 된다는 교훈을 줬다.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다. 바꿔 말해, 정치적인 것은 개인적이기도 하다. 아재 독식 정치는 미투 운동처럼 정치 혐오와 냉소, 구태와 적폐의 지속 등 우리 사회에 부메랑처럼 돌아올 것이다. 여성뿐 아니라 정치권 내 ‘아재층’에 속하지 않는 청년, 장애인, 다문화 구성원에 대한 차별과 배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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