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시작은 분명 외세에 의한 해방, 그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후 분단을 적대의 개념으로 굳게 만든 것은 전쟁이고, 양쪽의 정권들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무려 분단 73주년이 되는 즈음의 분단 고착화의 주세력은 어쩌면 오래된 생각과 다를 수 있다.

지난 27일의 역사적 판문점 선언은 우리는 물론 세계가 기뻐하는 일이었다. 이 감격적인 일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 조금 길게 본다면 2016년의 촛불혁명을 비켜 지날 수는 없다. 촛불이 아니었다면 남북의 시계는 지금처럼 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남북관계의 직접적인 시작은 지난 평창올림픽 때 성사된 단일팀, 동시 입장 등이었다.

EBS 1TV <질문 있는 특강쇼 – 빅뱅>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편

그러나 이 감동적인 이벤트는 결코 순탄치 못했다. 청와대도, 기성세대들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통일이라는 단어는 남북 간의 교류협력에 대한 설명을 면제해왔었지만 그런 기류에 반발이 일어났다. 남북단일팀으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될 누군가에 대해 감정이입된 젊은 층의 예기치 못한 반발이었다.

모두가 당황했지만, 그것이 분단 73년을 맞는 남한의 현실이었고,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분단 고착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이번 판문점 선언에 대한 민간의 반응, 정부 차원과 달리 평양냉면 열풍이 분 것이 정말 다행인 이유이기도 하다. 분단에서 통일의 정서로의 변화는 그런 식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또 빠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만 해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다가 ‘통일은 불필요하고, 비용이 드는 것’으로 바뀐 이유 혹은 원인은 분명히 알아야만 하다. 그 이야기를 해줄 사람으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만 한 적격자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EBS 1TV <질문 있는 특강쇼 – 빅뱅>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편

최근 남북정상회담 국면을 통해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의 통일에 대한 생각을 충분히 알기에는 부족했다. 특유의 입담으로 풀어내는 정세현 전 장관의 재미있는 통일론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EBS가 새로 론칭한 <질문 있는 특강쇼-빅뱅 > 3회와 4회에 정세현 전 장관이 출연했다. 시쳇말로 강추할 만한 프로그램이었다.

우리가 통일에 대해서 고민을 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통일은 왜 해야 하느냐이고, 또 하나는 누가 혹은 무엇이 통일을 방해하는지를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우선 전자보다 시급한 문제는 후자이다. 전자의 경우는 이번 판문점 선언처럼 기승전결 없이 극적인 반전이 가능하다. 우리는 본래부터 한 민족, 한 핏줄이었기 때문이다.

통일반대세력이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한국의 보수정치세력에 대해서는 일단 접어두고 다음 혹은 더 근원적인 반대세력을 먼저 말해야 한다. 바로 이것 때문에 이 방송을 권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돈에 예민한 시대에, 통일 정서가 희박한 젊은 세대를 공략했던 소위 ‘통일비용’에 대한 정세현 전 장관의 말이 정말 통렬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통일 논쟁에 빠지지 않는 의제가 된 ‘통일비용’에 대한 문제제기는 과연 누가 시작한 것일까? 일본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일본의 존재는 사라지고, 그것에 의해 확대재생산된 공포(?)만이 존재하게 됐다. 식민사관처럼 말이다. 정 전 장관이 이 ‘통일비용’에 대응할 언어로 제시한 것이 있다. ‘분단비용’이었다.

EBS 1TV <질문 있는 특강쇼 – 빅뱅>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편

이를 <100분 토론>에 출연한 최진기 강사는 ‘통일비용’은 ‘작위에 대한 손실’이고 ‘분단비용’은 ‘부작위에 의한 손실’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요는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통일비용’보다 축적되는 ‘분단비용’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치명적이라는 사실이다. 정 전 장관이 결론적으로 말한 것은 통일로 인한 이익은 매년 11% 이상의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북한에 세계 3위에 석유가 매장됐다는 설까지 있으니 허황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물론 방송을 통한 ‘통일비용’과 ‘분단비용’의 설명은 매우 충분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 논리를 깨는 단초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방송 전반을 모두 경청할 필요가 있다. 통일연구를 40년간 한 노학자의 박학다식과 진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정세현 전 장관은 이번 남북정상회담과 관련된 일들을 미리부터 예언해 통일전문가보다는 통일예언가로 불리기도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 상황에 참 적절하다. 그가 아는 통일이야기, 그가 하고 싶은 통일이야기를 들어보라 권하고 싶다. 포털에 <질문 있는 특강쇼>를 검색하면 언제든 다시보기를 할 수 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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