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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언론이 사는 법] 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인터뷰]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대표 "관점을 가진 언론만 살아남을 수 있다"
윤수현 기자 | 승인 2018.05.03 07:27

편집자주 = 경제에 위기가 없던 적은 없다. 저널리즘의 위기라는 진단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저널리즘은 위기였다. 그러나 경제 호황은 있어도 저널리즘 호황이라는 말은 없다. 다른 영역이기 때문일 게다. 방금 전까지 저널리즘은 ‘언론이 질문을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터널 속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저널리즘 위기는 질문의 방식을 묻는다. 정해진 결론은 없다. 미디어스는 질문의 방식을 묻고 있다고 판단되는 언론에 대해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 질문의 방식은 다양하며 다양함 속에 길이 있다고 믿는다. 

[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세계를 보는 창’이라 불리는 언론이 있다. 주류 시각인 미국 관점을 벗어나 제3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서구 세계에만 그치지 않고 아랍·아프리카·아시아 등 그동안 잘 다뤄지지 않았던 지역도 다룬다. 한국의 유일한 국제전문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이야기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과 프랑스판(미디어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1954년 프랑스의 유력지, 르몽드의 자매지로 창간됐다. 세계 37개 국가에서 발행된다. 국제, 외교, 경제, 사회, 문화 분야의 지식인들이 토론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러나 읽는 사람을 본 적은 드문’ 매체다. 글이 어렵고 현학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 달에 한 번, 40P의 종이신문 형태로 출간되지만 가격은 일반 신문의 월 구독료에 달한다. 판촉 행사도 없다. 온라인 기사는 대부분 결제를 해야 볼 수 있는 유료화 시스템이다. 돈 주고 기사를 읽는 문화가 생소한 한국의 상황에서 이례적인 시스템이다. 그렇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10년 가까이 생존했다.

10년이 지나면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자신만의 자리를 잡았다. 백여 명에서 시작한 정기구독자는 수천 명까지 늘었다. 월세에서 시작해 합정동에 자그마한 사옥도 마련했다. 이젠 생존의 문제를 넘어 매체의 발전을 고민하고 있다. 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대표는 “우리만의 관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미디어스는 24일 성일권 대표를 합정동 사옥에서 만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저널리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성일권 대표(미디어스)

Q.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A. 프랑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한국어판이다. 프랑스판의 기사나 다른 르몽드 자매지 기사도 번역한다. 한국만의 자체 기사도 만든다. 주로 교수, NGO, 전문가들의 글을 담는다.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길러주는 것이다.

Q. 노엄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표현했다

A. 우리 잡지에는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있다. 국내의 눈이 아니라 세계의 눈을 소개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유럽, 아랍, 아프리카 등의 기사를 통해 전 세계를 소개하는 ‘창문’이기도 하다. 지구본을 한 바퀴 둘러 본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또한 디플로마티크는 외교(diplomatique)라는 뜻이다. 하지만 국제, 외교 뉴스만 다루진 않는다. 문화, 예술, 사상, 철학, 교육 같은 모든 분야에 외교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래서 모든 분야의 지적인 흐름, 고민 등을 담는다. 이를 통해 국내와 세계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Q.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글이 어렵고 현학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A. 맞는 말이다. 그건 프랑스의 글쓰기 방식이다. 시작할 때는 거대 담론을 가지고 흥미진진하게 끌어가지만 다 읽고 나면 허전하다. 속칭 '야마'(글의 주제라는 뜻의 은어)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야마'는 한국 언론이 가진 고질적인 문제다.

한국 언론은 기사에서 결론을 내려버린다. 그러니 언론과 기자가 신뢰를 잃는 것이다. 기사를 보고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고민하고, 성찰하고. 그래서 자신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언론의 일이다. 우리 기사를 읽고 자신만의 답을 떠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글이 심층적이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Q. 한국 특유의 저널리즘과는 다른 글쓰기 방식이다

A. 한국 언론은 쉽게 읽히는 방식으로 기사를 쓴다. 긴 글도 지양한다. 길고 어려운 글을 독자들이 읽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자의 수준을 미리 재단하면 안 된다. 독자도 길고 심층적인 글에 적응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프랑스 영화와 미국 헐리우드 영화를 비교해보면 된다. 미국 헐리우드 영화는 재미있다. 주제가 단순하고 액션도 화려하다. 하지만 뒤돌아서면 까먹는다. 아마 한 달이 지나면 그런 영화가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날 것이다. 프랑스 영화는 다르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고, 주제도 어렵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기억이 난다.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즉, 독자에게 결론을 주입하는 언론은 미국 헐리우드 영화와 같다. 결말을 독자에게 넘기고 생각 거리를 주는 우린 프랑스 영화와 비슷하다. 결국 독자의 뇌리에 살아남는 건 프랑스 영화, 즉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일 것이다.

Q.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진보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A. 한국적 의미에서의 진보는 아니다. 진영논리가 아닌 이념 그 자체를 다루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진보 매체에 어려움이 있다. 지난 10년 동안에는 표적이 분명했다. 뭘 써도 기사가 됐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명확한 적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진영논리 만으론 언론이 살아남기 힘들다. 이제는 정파성이 아니라 이념 그 자체를 다뤄야 한다. 길게 보는 관점을 가지고 글을 써야 한다. 그런 방식이 지금 당장으론 답답하고 재미없을 수 있지만 10년이 지나면 통찰력으로 되돌아온다.

Q. 국제 문제를 미국의 시각이 아닌 제3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A. 시대가 흐르면서 독자의 요구도 바뀌고 있다. 이제는 미국 중심의 제도권 시각이 아니라 다른 시각으로 세계를 조망하고 싶어 하는 독자가 늘고 있다. 그런 점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특장점이다. 

Q. 필진을 보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본지 기자뿐만 아니라 교수, 전문가들이 많다

A. 한국 언론과 유럽언론의 차이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은 공개채용을 통해 기자를 뽑는다. 기수별로 줄을 세우고, 대부분의 기사를 본지 기사가 작성한다. 그럼 다양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도 신문기자 출신이기에(성일권 대표는 문화일보·경향신문 기자를 거쳤다) 이 부분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유럽은 다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의 경우 대부분 기사를 교수, NGO 활동가, 프리랜서 기자가 쓴다. 본지 기자가 하는 역할은 PD와 비슷하다. 기획하고 필진을 찾는 역할을 한다. 전문가들이 다 함께 만들어가는 언론인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다 보니 유럽의 프리랜서 기자들은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스스로 상품성을 갖춰야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 기자들은 저서도 많고 활동도 많이 한다. 한국의 기자들이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다.

Q. 주 독자층은 어디인가

A. 30대 중반과 40대 정도인 것 같다. 학자나 전문가들이 많이 읽는다. 그런데 재미있는 지점이 있다. 많이 배웠고, 학벌이 좋은 사람만 우리 잡지를 읽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양한 직업군에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읽는다. 고학력자가 아닌 분들의 독해력과 이해력은 석박사 졸업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학벌주의 사회의 이면인 것이다.

Q. 유럽에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인기는 어느정도인가

A. 프랑스의 경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27만 부 정도 팔린다. 독일은 40만 부 정도다. 주 독자층은 대입 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이나 대학 학부생이다. 젊은 층에서 국제 문제에 관심을 두고 읽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조금 안타까운 것이 있다. 한국도 젊은 층에서 국제 문제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합정역 인근에 위치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사옥(미디어스)

Q. 지면과 온라인에 광고가 거의 없다. 그런데도 10년 넘게 안정적인 운영을 이끌어왔다

A. 광고도 자체 광고가 대부분이다. 독서 모임이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주관하는 강의 광고 말이다. 일반 기업 광고를 일부러 안 받는 건 아니다. 영업에 애를 쓰지 않는 것뿐이다. 전체매출의 5~10%가 광고고 나머지는 잡지 판매 수익이다. 그 결과 기업으로부터 간섭 받지 않는 독립적인 출판이 가능해졌다.

Q. 광고 수익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대다수 언론과는 다른 구조다

A. 운영이 어렵긴 하다. 그걸 부정할 순 없다. 그런데 그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언론이 겪는 위기다. 그래도 최근 계속해서 흑자가 나서 월세에서 누추하나마 작은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합정역 근처에 사옥이 있다. 성 대표는 사옥이 아니라 사무실 겸 강의실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어느 사옥보다 알차게 보였다)

물론 광고에 대한 고민은 있었다. 우리라고 유혹을 안 느끼겠나. 그런데 최근 미투 운동과 관련해서 진보 인터넷 매체의 기사를 보는데 “20대 여대생, 밤새...”등의 광고가 있더라. 아이러니했다. 미투 기사에 이런 광고라니. 들어가서 보니 주식투자 광고더라(웃음). 그때 홈페이지 광고를 자제해야 겠다고 느꼈다. 이런 광고는 기사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언론사 스스로 좀먹는 것이다.

Q. 온라인 유료화를 시도하고 있다

A. 기사를 무료로 풀어서 많은 분이 볼 수 있으면 좋긴 하겠다. 독자 유입이 되니까. 그런데 정기구독자 입장에선 아니다. ‘내 잡지’가 인터넷에 무료로 풀린다면 누가 정기구독을 하겠나. 우린 과월호 잡지도 무료로 배포하지 않는다. 서점에서 판매되지 않은 과월호는 내가 보는 앞에서 모두 폐기 처분한다. 그게 비용을 내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구독하는 독자에 대한 배려다. 

Q. 신문지 형태의 월간지다. 외형적으론 신문 한 부에 1만 2천 원 수준이다

A. 비싸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우리도 광고를 많이 담으면 가격을 낮출 수도 있다. 요즘 신문을 보면 절반이 광고이지 않나. 우리는 다른 일간지에 있는 광고란이 모두 기사로 채워진다. 그러다 보니 분량이 책 한 권 정도에 달한다. 제작 단가도 비싸질 수밖에 없다.

비싸다고 느끼는 분들에겐 계속 읽어보길 권하고 있다. 우리 기사는 한번 읽고 지나가는 글이 아니다. 읽고 나면 기억에 남고, 곱씹어볼 수 있는 글이다.

Q. 인쇄 매체가 망할 것이란 위기설이 있는데도 ‘종이’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A. 인터넷으로 기사를 보는 방식이 늘면서 언론과 독자의 관계는 일방적이게 됐다. 기사를 강제로 주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종이는 다르다. 꼼꼼하게 밑줄을 치고 메모를 한다. 들고 다니면서 보기도 한다. 그런 ‘촉감’은 독자와 매체 사이의 연결고리가 된다.

지면을 통해 우리의 생각을 보여주기도 한다. 프랑스판의 경우 아랍과 아프리카 기사가 초반에 등장한다. 지리적으로 아랍·아프리카가 가깝고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가까운 아시아 지역으로 시작해 전 세계 기사가 나온다. 지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 전 세계가 그려진다. 옛날 지식인이 <타임>, <뉴스위크>를 통해 세계를 바라봤다면 이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인 것이다.

Q. 인쇄 매체는 망할까

A. 안 망한다. 잡지의 성장 가능성은 아직도 크다고 믿는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터넷 언론시장이 커지고 일간지도 온라인 중심으로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전문지는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우리도 그 지점에서 생존을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

Q.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생각하는 저널리즘은 뭔가

A. 저널리즘은 관점이다. 관점은 독자를 불편하게 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글을 읽고 나서 머리만 아파질 뿐이다. 그렇다고 매체가 결론을 정해주면 안 된다. 결론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 그 고민 과정을 통해 독자와 매체는 성장한다.

예를 들어, 난 예전에 썼던 연애편지를 수십 년이 지나도 기억하고 있다. 문장과 단어가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방금 보낸 카카오톡은 기억도 안 난다. 전자의 경우 고민의 산물이고, 후자는 그냥 쓴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는 진정성과 소통이 있어야 한다. 연애편지 같은 언론이 되어야 한다. 그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지향점이다.

윤수현 기자  melancholy@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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