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안현우 기자] 정치권이 방송법 개정을 국회 정상화의 협상 카드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박홍근 안에서 특별다수제를 2/3에서 3/5으로 완화하는 방안이 협상테이블에서 다뤄졌다는 소식이다. 이 논의는 바른미래당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논의의 속내에 관심이 모아진다.

24일 복수의 국회 관계자에 따르면 정치권은 방송법 개정을 국회 정상화 협상 안건의 하나로 올려놓고 다뤄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바른미래당 김동철 원내대표가 지속적으로 방송법 개정을 협상 안건으로 요구했다고 한다.

김동철 원내대표는 4월 임시국회 첫 본회의 개의 직전, 지난 2016년 박홍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대표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을 처리하자고 한 바 있다. 자유한국당이 동조 의견을 낸 것을 시작으로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해외출장 논란,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 등이 겹치면서 4월 국회는 무산된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이다.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왼쪽)과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연합뉴스)

지난 2016년 7월 박홍근 의원이 대표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은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중립화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박홍근 안은 19대 국회 방송공정성특위에서 나온 논의 결과를 취합해 발의한 법안으로 공영방송 이사회를 현행 KBS 여당 7명, 야당 4명, MBC 정부여당 6명 야당 3명에서 여당 7명, 야당 6명으로 바꾸고, 사장 추천시 2/3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는 게 골자다.

박홍근 안은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편향적으로 치우친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으로 관심을 모았다. 다만 공영방송에서 정치권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해 방송을 정치예속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됐다.

정권교체 후 문재인 대통령이 박홍근 안에 대해 "최선의 사장을 뽑는 법이 아니다"라고 문제를 제기했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방송적폐청산이 대대적으로 진행되면서 좀 더 진일보 한 법안을 논의하자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언론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국민이 직접 공영방송 사장을 선출하는 국민추천제가 논의됐고, 추혜선 정의당 의원, 강효상 자유한국당 등이 새로운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공영방송 사장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게 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은 정치권의 개입과 영향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오로지 국민의 기준과 선택에 따라 공영방송 사장을 선출하는 국민추천 사장 선임제도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최근 국회 정상화를 위한 협상카드로 정치권이 방송법 개정을 도마에 올렸다는 것에 대해 언론시민사회가 분노한 이유다.

복수의 국회 관계자는 국회 정상화 논의 과정에서 방송법 개정안 협상은 바른미래당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이뤄졌다고 전했다. 김동철 원내대표는 현재 발의돼 있는 박홍근 안에서 특별다수제 비율을 2/3에서 3/5으로 변경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수정안을 제안했다고 한다.

한 국회 관계자는 "3/5 특별다수제 뿐만 아니라 다른 내용까지 추가해서 김동철 원내대표가 제안한 건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국회가 타결했다는 건 오보"라고 밝혔다. 다른 국회 관계자는 "논의 과정에서 김동철 원내대표가 계속해서 방송법 얘기를 꺼냈다"면서 "계속해서 같이 논의하자고 하는 걸로 안다"고 전했다.

한 국회 과방위 관계자는 "원내에서 협상을 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 "김동철 원내대표가 제안을 했고, 특별다수제 3/5이 주요 골자"라고 설명했다. 다른 과방위 관계자는 "원내에서 협상이 이뤄지고 있고 바른미래당에서 제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러한 논의 소식에 언론노조는 각당 원내대표를 항의 방문하고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동철 원내대표만 만날 수 없었다고 했다. 김환균 언론노조위원장은 "자유한국당을 포함해 원내대표를 만나 언론노조의 입장을 전달했다"면서 "그러나 김동철 원내대표만 언론노조는 이해당사자니까 만날 수 없다고 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바른미래당이 방송법 개정안에 적극적인 이유에 대해 관심이 집중된다. 언론시민사회에서는 바른미래당이 공영방송에 영향력을 가지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바른미래당의 주장대로라면 공영방송 이사 7명을 민주당이 임명하고 야당 몫 6명은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평화와 정의 교섭단체(민주평화당, 정의당)이 나눠 추천하게 된다. 현재 정치권에서 유력하게 거론된 것은 자유한국당 4명, 바른미래당 1명, 평화와 정의에서 1명을 추천하는 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별다수제 3/5를 적용하면 민주당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추천 몫 이사 7명에 야당 추천 이사 1명만 설득하면 자신들이 원하는 사장을 임명할 수 있는 구조가 된다. 평화와 정의의 경우 범진보로 분류되는 만큼 설득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별다수제 3/5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최소 8명의 찬성표가 필요하다. 이는 특별다수제 완화의 효과로 민주당으로서는 혹하지 않을 수 없는 안이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은 "민주당 또한 국회가 중심이 되는 입법부 모델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민주당이 특별다수제 완화를 고리로 방송법 개정에 나선다면 결국 공영방송은 정당별 이사회 배분이라는 문제를 여전히 유지하게 된다. 바른미래당 또한 방송법 개정을 통해 공영방송 이사 1명의 추천권을 보유하게 되는 효과를 갖게 된다. 사장 선임에 압력을 가해 공영방송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는 공영방송의 정치적 종속화가 약화되는 것이라 강화되는 것으로 언론시민사회의 반발을 불러올게 뻔하다. 현재 언론시민사회는 정치권을 향해 공영방송에서 손을 떼라고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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