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32회에서 마침내 숙종과 동이는 주막에서 첫날밤을 보낸다. 술상을 마주 하고 드디어 키스를 하기에 이르렀다. 동이 숙종 커플 로맨스의 절정이다.

사극에서 이렇게 손발이 오그라드는 키스신을 본 기억이 없다. 이번에 등장한 키스신은 가히 사극사상 최강이라고 할만 했다. 살짝 졸렸었는데 그 장면을 보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든다.

도저히 가만히 앉아 화면을 지켜볼 수가 없었다. 너무나 민망해서 몇 번이나 손을 쥐었다 폈다 하고, 어깨를 들썩들썩하면서 그 장면을 봐야 했다. 숙종도 민망하고, 동이도 민망하고, 나도 민망했다. 웬만한 예능프로그램 이상으로 웃기기도 했다.

숙종의 감정선과 동이의 감정선이 워낙 잘 표현됐다. 정통 로맨스 드라마 이상 가는 수준으로 오글오글했다. 정말 아무리 돌이켜봐도 사극에서 이런 정도의 장면을 본 기억이 없다. 올 최고의 키스신은 <파스타>에서 나왔었는데, <동이> 32회 키스신은 그 이상이었다.

보는 사람을 절로 깨방정으로 만드는 장면이어서, ‘이 나이에 이 지경까지 되면서 드라마를 보다니’하는 자괴감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 오글오글함에 진중할 수가 없었다. 극적인 힘이나 신선함이 약하다는 평을 듣던 <동이>가 최강의 로맨스로 빵 터뜨렸다.

소나기가 웬말인가? <동이>는 숙종과 동이의 첫 키스신을 위해 소나기라는 설정을 등장시켰다. 이것은 소설 <소나기> 이후에 순수한 첫사랑 멜로를 상징하는 전형적인 설정이다. <동이>는 그 설정을 이용해 숙종과 동이의 설레는 감정을 극대화했다. 만약 현대극이었으면 질릴 수도 있는 설정이었지만, <동이>에 나오니 오히려 신선하고 웃겼다.

지금까지 사극에서 왕은 자연스럽게 승은을 내리고, 궁녀나 상궁도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았었다. 그런데 <동이>는 그것을 멜로드라마의 수줍은 첫사랑처럼 표현했다. 숙종과 동이가 서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은 마치 10대들의 이야기처럼 사랑스러웠다. 숙종의 수줍어하면서도 능청맞은 모습이 귀엽기까지 했다. 영락없는 하이틴로맨스였다.

키스신 그 자체가 오글오글했던 것이 아니라, 키스신으로 가기까지의 과정이 워낙 섬세하고 코믹하게 표현되어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보면서 이렇게 오글오글했다는 건 ‘폭풍감정이입’이 됐다는 얘기다. 그렇게까지 구성을 만들어간 이병훈 PD의 노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점잖고 올곧고 진중한 왕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그려진 ‘깨방정 숙종’과 순수한 동이의 캐릭터가 이런 오글오글함을 만든 원흉이다. 이 두 캐릭터의 로맨스는 너무나 흥미진진해서 둘이 만날 때마다 몰입도가 껑충 뛰었었다. 이번에 주막 키스신은 그 절정이라 하겠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른 법이고, 사극에 기대하는 것도 다른 법이어서, <동이>에 나오는 이런 멜로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물론 있다. <동이>의 이야기가 너무 말도 안 되게 진행된다는 비판도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세상엔 퓨전사극도 있는 것이고, 정통사극도 있는 것이고, 또 이런 방식의 사극도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주로 혹평만 듣는 <동이>이지만 나름대로의 매력은 분명히 있다. 이번에 숙종과 동이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키스신이 바로 그런 <동이>만의 매력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야기 전개가 느리다는 타박도 많이 듣지만 이번에 동이가 승은상궁이 된 이후 시작된 새로운 위기전개는 그다지 느슨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동이가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는 느낌도 분명히 들었고, 다음이 궁금해지는 경쾌한 전개이기도 했다. <동이> 초반부엔 어떤 상황에서도 동이가 위기에 빠진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동이의 지위가 높아진 후 오히려 그 점이 개선된 것 같다.

물론 <동이>는 크게 상찬을 받을 만한 사극은 아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극적인 힘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당시의 시대상이나 정치상황에 대해 다양하게 해석할 여지를 주지도 않는다. 또, <이산> 같은 경우엔 지속적으로 오늘날의 상황과 대비하며 볼 수 있는 시사적인 설정도 많았었지만 <동이>엔 그런 것도 없다. <선덕여왕>처럼 리더십의 형태를 제시한다든가, 가치와 가치, 의지와 의지가 맞붙는 짜릿함을 느끼게 하지도 못한다. <추노>처럼 시청자에게 육박해오는 치열함도 없다.

그래서 작품적으로는 실망스럽다. 하지만 경쾌한 전개가 재미를 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깨방정 숙종이나 밝은 동이의 캐릭터도 어느 정도 매력적이다. 또 이번처럼 숙종과 동이의 어색한 로맨스가 작열할 때는 사랑스럽기도 하다. 실망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작품인 것이다.

장희빈과 대신들이 너무나도 평범한 캐릭터로 나오고, 정치적 신념의 차이는 완전히 배제된 채 단순한 궁중암투만 이어지며, 지나치게 현실적 무게감이 없는 설정이라는 한계는 분명하다. 이왕 그렇게 간다면 숙종과 동이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멜로행각이라도 더 부각시켜주면 좋겠다. 전하의 하이틴로맨스가 재밌다. 사상 최강의 깨방정 멜로를 다시 보고 싶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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