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회사를 바꾸려고 하시는 거죠? 그게 이주노동자들도 제일 원하는 거잖아요”

이주노동자 문제가 있어서 고용센터 직원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 듣게 되는 말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돈을 벌러 온 것이지, 회사를 계속 바꾸러 온 게 아닌데 말이다. 언젠가부터 임금체불, 폭행, 폭언 등 회사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자체를 해결하는 것보다, 이주노동자가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것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주노동자 A씨가 힘들게 회사를 옮기게 되더라도 기존 회사에 또 다른 이주노동자 B씨가 와서 동일한 문제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임금체불이 한번 일어난 사업장은 언제든지 다시 임금체불이 발생하기가 쉽고, 산재가 일어난 사업장은 별다른 재발방지 대책도 없이 위험한 기계를 계속 굴린다. 산재로 팔이 잘린 이주노동자의 사고를 그대로 지켜본 다른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주가 당장 내일부터 그 기계로 일을 하라고 시키는 것이 일상다반사다. 이 모든 문제는 고용주에게 절대적인 권리를 보장해주는 ‘고용허가제’가 유지되는 한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다.

고용센터 직원이나 노동청 근로감독관이 이주노동자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늘 사건의 결과로 사업장을 변경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한 판단을 할 뿐, 사건의 원인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2018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 포스터

이 부분에서 노동조합 활동가로서 고백하자면,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상담할 때 이게 사업장 변경이 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먼저 떠오르는 것 역시 사실이다. 몇 달 동안 노동부 진정, 지방노동위원회 구제신청 등 관련 기관에서의 결과자료를 가지고 어렵사리 이주노동자 사업장변경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그걸로 끝인 걸까? 불법파견 등으로 고용허가제법을 위반한 사업주에게 외국인 고용 제한이 내려지긴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또 그 사업장에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하러 가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힘들게 옮긴 사업장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일하는 5인 미만의 농장이나 공장에는 제대로 된 취업규칙도 없고, 근로기준법의 예외조항도 너무 많다. 대부분의 근로계약서에는 최저임금이 그대로 찍혀있고 별도로 숙식비를 공제하는 이면합의서에 강제로 서명하게 하는 경우도 최근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제대로 된 월급명세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대충 흰 편지봉투에 현금을 넣어서 월급을 주기도 하고, 출퇴큰 카드가 없어서 이주노동자 스스로 달력이나 일기장에 기록을 하는 경우도 많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물량을 뽑기 위해서 위험방지 센서를 제거한 기계를 이주노동자들이 교대로 24시간 돌려야하고 위험약물을 다루는데도 최소한의 보호장비 없이 마스크와 목장갑만을 낀 채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한 조건이 그득한 사업장에서 조금은 덜 위험하거나 그나마 월급은 제때 주는 사업장으로 가길 희망하는 수밖에 없다. 여전히 7~80년대의 노동조건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전국의 수많은 사업장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이주노동자들은 일을 하고 있다.

현재 고용허가제 하에서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변경이란 결국 시한폭탄의 뇌관은 그대로 놔둔 채 또 다른 이주노동자에게 그 위험을 떠넘기는 것이다. 결국 그 뇌관이 터지는 날, 어떤 이주노동자는 산재로 사망하고, 우울증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폭력에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한폭탄을 돌리는 싸움이 아니라 시한폭탄의 뇌관을 제거하는 싸움을 해야 한다. 그 뇌관을 제거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노동허가제를 쟁취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변경은 당연히 노동자로서 가져야할 권리로 보장되어야 한다. 결국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회사를 떠나야하는 투쟁이 아니라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바꾸는 투쟁, 이를 위해 잘못된 제도와 공무원들의 관행을 바꾸는 투쟁이 필요하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 당사자들이 모여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투쟁하는 데서 그 답이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죽음의 시한폭탄 같은 ‘고용허가제’로 고통 받는 이주노동자들을 만나서 함께 손을 맞잡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5월 한달 간 이주노동자 투쟁투어 버스(투투버스)가 달린다

다가오는 4월 29일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를 시작으로 5월 한 달 동안 이주노동자들이 문제를 겪고 있는 사업장, 고용센터, 노동청들을 순회하는 이주노동자 투쟁투어버스(투투버스)가 달릴 예정이다. 이 한 달간의 투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모두 얻어낼 수는 없을지라도, 혼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희망이라는 작은 가능성을 만들어줄 수는 있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 어릴 적 티비에서 보던 ‘가족오락관’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스피드퀴즈를 못 맞히면 시한폭탄이 펑 터질까봐 어쩔 줄 몰라 하던 출연자들의 표정이 떠올랐다. 사업주에게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한국어로 무조건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 다른 사람도 다 일하는데 왜 너만 못한다고 하냐는 폭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다고 말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표정에서 그 출연자들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그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변경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가 왜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지, 그 회사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함께 만들어가는 투쟁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 지 5년이 되어가지만 부족한 외국어실력 탓인지 가능한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 합법화 이후에 다음 역할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스스로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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