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국회 본청 앞에서 자유한국당이 ‘민주당원 댓글공작 규탄 및 특검촉구대회’를 열고 퍼포먼스를 했다. 망치로 박을 두들기면 안에 있던 현수막이 펼쳐지는 식이다. 이 망치에는 ‘진상규명’과 ‘헌정수호’라는 구호가 적혀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헌정수호’란 구호가 적혀있는 망치를 들고 있는 모습은 좀 우습다. 전임 정권이 대의민주주의라는 헌법 원리를 훼손해 붕괴됐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라는 문구가 담긴 ‘백드롭’을 내걸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마찬가지다.

겉보기에 우스워 보이지만 이런 ‘자해 마케팅’에는 명확한 의도가 있다. 자기들에 흠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상대가 깨끗한 건 아니잖느냐는 항변이다. ‘너나 나나 모두 똥 묻은 개’라는 냉소적 정치논리가 지배하는 오늘날 이런 항변의 위력은 더 강해졌다. 그리고 이는 곧 ‘내로남불’ 프레임의 절대화로 이어진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비판의 전제는 적어도 ‘로맨스’와 ‘불륜’에 해당하는 사건이 동급에 놓고 비교할만한 정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로남불’ 프레임의 위력을 아는 요즘에는 본말이 전도되기 일쑤다. 서로 다른 사건의 공통점을 취한 뒤에 그게 ‘내로남불’이라고 우기는 식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전임 정권에서의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과 ‘드루킹 사건’을 동렬에 놓고 ‘내로남불’이라고 하는 게 여기에 해당한다. 현행 법령에서 공무원 전반이 정치중립 의무를 가짐에도 특별히 국정원에 정치개입 금지 의무를 부과한 것은 업무영역이 넓고 하려고만 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정보기관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 국정원이 나열하기에도 벅찰만큼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여론조작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은 스스로가 체제를 부정한 것이다.

이에 반해 ‘드루킹 사건’은 어떤 사조직이 선거운동 개입을 통해 정치권력과의 유착을 기도한 것일 뿐이다. 여의도 말로 하면 ‘선거 브로커 사건’이다. 그나마도 정치권력과의 유착이 정확히 어떻게 어디까지 진행된 것인지 제대로 밝혀진 바도 없다. 그러니 국정원 댓글조작과 이 사건의 ‘조작’이란 공통단어를 뽑아내 ‘내로남불’ 프레임에 밀어 넣는 건 전형적인 ‘정치공세’일 뿐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가 22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민주당원 댓글공작 규탄 및 특검촉구대회에서 박 터뜨리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드루킹 사건’이 국정원 댓글 조작과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니라고 해서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후관계나 잘잘못은 당연히 따져야 한다. 그런데 경찰 수사는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인상이다. 사건에 대한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의 오락가락 설명이나 뒤늦은 압수수색 등은 이런 비판을 피할 수 없게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경남도지사 선거 후보로 확정된 김경수 의원의 보좌관이 드루킹들로부터 500만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좀 더 철저한 수사의 필요성을 보여 준다. 김경수 의원 측은 이를 ‘개인 간 금전거래’로 설명하고 있으나 군색한 얘기다. 온갖 청탁이 오가는 여의도 정치에서 ‘돈을 빌린다’는 것은 ‘돈을 받았다’는 것과 정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이 두 경우를 형식적으로라도 구분하기 위해 차용증을 쓰는 게 일반적인데 이마저도 나중에 만들어지거나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나마 김경수 의원 보좌관의 경우에는 차용증도 없었다고 하고 돈을 ‘갚은’ 시점도 드루킹이란 사람의 구속 이후라고 한다.

“먹어도 탈 안 나는 돈”이란 표현은 영화 대사에나 등장하는 것이지만, 돈 받는 일을 경계해야할 현실이 있는 건 사실이다. 대개 돈을 받는 행위는 ‘대가’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드루킹들이 인사 청탁 등이 결과적으로 좌절되자 협박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이건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클리셰’에 가깝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굳이 외면하고 김경수 의원 보좌관이 돈을 받은 이유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그럴 정도의 경계심이 없는 상황이었다고 봐야 한다. 드루킹들은 결국 어떤 조직된 지지자 모임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편’이라는 안이한 인식이 있었던 게 아닌가. 김경수 의원이 드루킹들이 추천한 ‘경공모 핵심인사’를 오사카 총영사로 추천한 것도 마찬가지다. 김경수 의원은 이에 대해 ‘열린 인사 추천 시스템’을 통한 것이어서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 바 있다. ‘열린 인사 추천 시스템’이란 새 정부에서 요직을 맡을 사람을 여권 주요 인사들이 추천하도록 시스템화한 것으로 이해되는데, 실상은 공식적인 논공행상 경로로 운영된 것이 아닌가 한다. 다만 한국일보 기사에 의하면 ‘열린 인사 추천’의 경우 추천인의 실명을 남기도록 돼있어 과거 정부들처럼 실세가 비공식적으로 인사 추천을 하는 경우와는 차이가 있다고도 한다. 요컨대 김경수 의원 얘기는 그 정도 수준의 인사 추천을 한 거지 어떤 다른 특별한 경로를 통해 인사를 관철시키려 한 일이 없다는 것인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인사 추천 기준이 개혁에 대한 태도와 능력이 아니라 정권에 우호적인가와 일정 이상의 어떤 ‘스펙’으로 대체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문제에 다소 미온적이었던 것과도 궤를 같이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기식 전 금감원장 인사 당시에 관료를 임명하는 쉬운 해법은 굳이 선택하고 싶지 않다고 한 바 있다. 이 정권의 인사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는 발언이다. 관료의 힘에 의존해 개혁을 좌초시키고 싶지 않다는 대통령의 결의는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관료에 대한 경계감’이 시민단체나 지지자 조직 출신에 대한 느슨함이나 안이함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드루킹 사건’은 정권 주요 인사들의 이런 태도가 어떤 파국적 결말을 맞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이번 일을 억울한 정치공세의 문제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청와대는 여당이 특검에 합의하면 이를 수용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는 특검 수용 여부를 둘러싸고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측과 특검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측이 대립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수사기관의 태도를 보면 앞으로 특검이 필요하다는 여론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물론 특검을 수용한다고 해서 자유한국당이나 바른미래당의 공세가 느슨해지리라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집권 여당의 ‘개혁’을 내세운 공세에 마땅히 대응할 방도가 없는 보수야당들은 검경이 어떤 수사결과를 내놓더라도 드루킹 사건을 지속적으로 언급하며 보수 유권자층을 자극할 것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초장부터 정통성에 타격을 입고 국정농단으로 결국 탄핵까지 당한 경험을 현 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연결해 투표장에 나오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그게 될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정략은 정략이고 원칙은 원칙인 것이다. 수사기관의 수사에 의문이 제기된다면 특검은 불가피하다. 특검 수용은 심각하게 고려해볼 문제이다. 개혁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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