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개봉한 <콜럼버스>(2017)는 한국계 미국인인 코고나다가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때문에 <콜럼버스>는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임에도 영화 시작부터 한국어 대사가 나오고, 주연을 맡은 한국계 배우 존 조가 한국어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콜럼버스>는 오랫동안 비디오 에세이스트로 활동한 코고나다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영화의 제목이자 로케이션 배경인 콜럼버스는 미국 인디애나주에 위치한 소도시로 20세기 모더니즘 건축물의 메카로 통한다. 콜럼버스에서 자란 케이시(헤일리 루 리차드슨 분)는 건축에 관심이 많은 총명한 여성이지만, 한때 마약 중독자였던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한다. 대학 입학을 미룬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케이시에게 어느 날 한국인 이진(존 조 분)이 나타난다. 유명 건축가의 아들인 진은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서울에서 지내다, 콜럼버스 건축물 답사 중 쓰러진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연고도 없는 콜럼버스 땅에 당도한다.

영화 <콜럼버스> 스틸 이미지

건축에 관심이 많은 여성과 건축가의 아들이지만 애써 건축물을 멀리해온 남성이 친해진 계기는 건축이었다. 건축물을 답사하러 오는 관광객 외에는 한적하기 그지없는 소도시에서 낯선 동양인의 존재에 눈길이 가게 된 케이시는 진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건축물들을 소개하며 교분을 쌓아간다. 아버지가 싫어서 건축도 멀리했던 진은 케이시와의 만남을 통해 건축에 다시금 흥미를 가지게 된다.

가족 여행 중 우연히 찾은 콜럼버스에서 에로 사리넨, I.M.페이, 리처드 마이어 등 유명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건물들에서 영감을 얻은 코고나다 감독은 일상 속에서 존재하는 건축물들을 통해 위안을 받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케이시와 진은 모두 부모,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 케이시에게 건축은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자 동시에 힘든 상황에 처할 때 위안을 주는 존재다.

영화 <콜럼버스> 스틸 이미지

오즈 야스지로, 로베르 브레송, 잉마르 베리만, 리처드 링클레이터 영화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비디오 에세이스트로 활동한 감독의 이력을 반영하듯이, <콜럼버스>는 에세이 영화적 요소가 다분하다. 유명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모더니즘 건축물들이 가득한 콜럼버스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한 만큼, 엘리엘 사리넨, 에로 사리넨 부자의 노스 크리스천 교회, 퍼스트 크리스천 교회, 어윈 컨퍼런스 센터, 어윈 유니언 뱅크, 콜럼버스 병원 등 미국 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하는 건물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근대주의를 뜻하는 모더니즘의 건축은 차갑고 추상적이다. 기존의 도덕, 권위, 전통 등을 부정하고 혁신을 추구하는 모더니즘 속에서 케이시와 진은 영혼이 깃든 모더니즘을 찾고자 한다. 과연 영혼이 깃든 모더니즘은 무엇일까. 현실에 지친 두 남녀는 건축을 매개로 대화를 시도하고, 소통을 통해 지친 마음을 위로 받는다.

영화 <콜럼버스> 스틸 이미지

엄마가 걱정되어 콜럼버스를 떠나기 싫어했던 케이시가 콜럼버스를 떠날 때까지 건축물로 교류를 맺은 케이시와 진은 한번도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보통의 영화나 드라마 같으면 연인 관계로 발전했겠지만, 영화 <콜럼버스>는 케이시와 진 두 사람의 관계를 우정 혹은 호감 정도로 남겨둔다. 두 남녀를 억지 연인으로 만들기보다, 이 영화가 중시한 것은 건축물을 매개로 한 치유와 위안이다.

카메라 워크를 최소한 영화는 건축물들의 풍경을 고정샷으로 보여주며, 건축물들이 흡사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을 부여한다. 차갑고 딱딱한 건물에 온기를 부여하는 것은 그 건물에 스며 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건축물을 통해 위안을 받고 용기를 얻은 사람들을 통해 비로소 건축의 의의가 완성된다. 장편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지적이고 감각적인 연출력을 인정받으며 세계 유력 언론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콜럼버스>는 극장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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