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던 2010 남아공월드컵도 이제 단 4경기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남미의 강세가 두드러져서 내심 사상 첫 '남미 4강'도 기대됐지만 유럽의 힘에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면서 다시 유럽이 강세를 드러낸 월드컵이 됐는데요.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가 마지막까지 상승세를 이어가느냐, 아니면 '원년 우승팀' 우루과이가 남미의 자존심을 지키느냐를 놓고 재미있는 승부가 벌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이번 월드컵이 골도 많이 안 터지고, 오심이 많아서 '재미없는 월드컵'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강팀들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린 것은 꽤 흥미로웠습니다.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와 준우승팀 프랑스는 조별 예선에서 힘 한 번 못 쓰고 탈락했으며, 잉글랜드 역시 부진한 경기력을 보인 끝에 '전차군단' 독일에 힘없이 무너지면서 '축구 종가'의 자존심에 먹칠이 가해졌습니다. 반면 독일은 젊은 피를 바탕으로 안정된 전력을 과시하면서 세 대회 연속 4강의 위업을 달성했고, 네덜란드와 스페인 역시 사상 첫 우승을 향한 순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매번 월드컵 때마다 강팀들의 희비가 엇갈려 오기는 했지만 이번 월드컵에서는 희비가 엇갈린 주요한 요인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공격 변화, 그리고 팀정신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가 각 팀들의 희비를 엇갈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4강에 오른 팀들은 대부분 이 세 가지가 잘 어우러져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반면 이탈리아, 프랑스, 잉글랜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고 망신만 당한 월드컵으로 기억하게 됐습니다.

▲ 그야말로 무결점 팀으로 완전하게 거듭난 독일 축구ⓒFIFA
현대 축구가 다변화, 퓨전을 추구하면서 전술의 경계가 사라지고, 그에 따라 각 포지션별 선수들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한 선수에 의존하는 것보다 짧고 정교한 패스플레이, 강한 조직력이 '필승 키워드'로 자리잡아가면서 몇몇 강팀들도 이에 걸맞게 변화를 추구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렇다 할 특징 하나 없었던 스페인 축구가 유럽 정상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강한 전력을 갖고 있는 선수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팀'이 만들어졌기에 가능했습니다. 스페인의 사례를 눈여겨 본 다른 유럽 강팀들은 이를 벤치마킹하면서 주목을 끌었고, 이번 월드컵에서 독일과 네덜란드가 '모범 사례'로서 좋은 성과를 내며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유로2008을 통해 꽃피운 변화가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를 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두 팀은 모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통적인 스타일을 확고히 하는 축구를 구사했던 팀들이었습니다. 독일은 강한 수비를 바탕으로 한 조직력을 앞세워 선 굵은 축구를 보여줬고, 네덜란드는 인상적인 공격이 유독 돋보였던 팀이었습니다. 그러나 감독의 전략에 따른 스타일 변화가 이들의 전력 상승을 유발하는 계기로 이어졌고, 두 팀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한 팀으로 변모하면서 이번 월드컵에서 선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독일은 짧고 정확하게 연결하는 패스플레이를 잘 하는,기술적인 강점을 가진 선수들이 대거 포진돼 보다 공격적이고 정교한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게 됐습니다. 또 네덜란드는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공격과 수비의 끈이 잘 연결돼 제대로 된 팀플레이를 보여주면서 상대를 오히려 압도하는 위력적인 경기 운영을 펼치고 있습니다. 두 팀 모두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두드러지게 하는 변화로 하나의 '팀'을 만들면서 그 어떤 강팀과 상대해도 자신 있는 경기를 펼칠 수 있는 팀이 됐습니다.

여기에 '골을 넣어야 경기를 이기는' 축구의 특성에 걸맞게 정확한 공격력을 갖춘 선수들의 활약도 전력 상승에 큰 보탬이 됐습니다. 독일에서는 '확실한 골잡이'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제 몫을 다 해주며 4골을 넣었고, '신예' 토머스 뮐러 역시 4골-3도움이라는 가공할 만 한 공격력을 보여주면서 전차군단의 '골 폭격'에 강력한 무기자원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네덜란드 역시 베슬리 스네이데르라는 '한 방' 능력이 있는 선수가 제 몫을 다 해줬으며, 스페인에서는 페르난도 토레스의 부진을 다비드 비야라는 또 다른 스타가 완전히 메워주면서 선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우루과이 역시 디에고 포를란과 루이스 수아레즈라는 걸출한 공격수의 활약 덕분에 40년 만에 4강에 오르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비록 8강에서 멈췄지만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의미있는 변화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전통적으로 개인기에 의존하는 축구가 강했던 브라질은 탄탄한 수비와 강한 공격을 적절하게 조화한 '실리 축구'로 세계 축구팬들에 비교적 강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또 아르헨티나 역시 '오합지졸 팀'이라는 논란을 어느 정도 잠재우고 16강전까지 10골을 넣는 가공할 만 한 득점력을 앞세워 보다 공격적이고 세밀한 조직 플레이를 할 줄 안다는 성과를 내면서 자국 팬들에게 찬사를 받았습니다.

▲ 남아공월드컵에서 완전히 실패한 팀의 전형을 보여줬던 프랑스 축구 ⓒFIFA
반면 이탈리아, 프랑스는 하나의 팀다운 면모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감독이 옛것을 너무 고집하다가 화만 키우면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특히 프랑스는 중심을 잡아야 할 감독이 이렇다 할 비전조차 내세우지 않고 선수 탓만 하다가 오히려 선수들과의 불화를 키우면서 초라한 성적을 내는 망신을 당했습니다. 좋은 실력을 갖춘 선수를 보유하고도, 그것도 4년 전에 우승, 준우승을 차지한 팀들이었음에도 예선 탈락의 수모를 겪은 것은 현대 축구의 대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하나의 팀을 만들지 못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패착으로 이어졌습니다. 그저 명성에만 의존하고, 자만했다가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하고 만 것입니다.

아직까지 우승팀이 가려지지 않았지만 우승 후보들의 희비가 엇갈린 특징만큼은 이번 월드컵에서 나타나 향후 세계 축구계에 자리 잡을 하나의 트렌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계적인 강호들, 그리고 아쉽게 본선에서 좋지 못한 성적을 낸 팀들이 좋은 성과를 낸 팀들을 벤치마킹하면서 향후 어떤 변화된 면모를 보여줄 지, 또 그에 따라서 세계 축구의 흐름이 어떤 식으로 바뀔 지 흥미롭게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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