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 사건’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경남도지사 출마 기자회견을 19일 취소했다가 오후에 다시 출마 선언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김경수 의원은 정쟁 중단을 위한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면서 특검을 포함한 어떤 조사에도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9일 하루 동안 김경수 의원의 동선을 보면 사실상 불출마를 결심했다가 청와대나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설득으로 마음을 돌린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언론은 이미 전날 밤 김경수 의원이 불출마를 결심했다가 이날 마음을 돌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김경수 의원의 불출마 고려는 자신이 출마할 경우 선거 기간 내내 ‘드루킹 사건’으로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러면 문재인 정권과 여당의 전체 선거 구도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는 점을 고려했던 걸로 생각된다.

뒤집어 말하면 김경수 의원이 출마를 강행함으로써 이번 지방선거는 ‘드루킹 사건’을 둘러싼 프레임 안에서 치러지게 됐으며 이의 가장 치열한 전선이 경남지사 선거에서 그어지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이 단기간에 수습되기는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여당이 승리하면 ‘드루킹 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고 김경수 의원은 지방선거 승리의 주인공으로서 차기 대권주자로 발돋움 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패배하면 김경수 의원의 정치적 미래는 매우 불확실해지고 문재인 정권의 국정동력은 유실될 수밖에 없다.

댓글 조작 사건 이른바 '드루킹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19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입장 발표 및 경남지사 출마 선언을 하고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어쨌든 김경수 의원의 대응은 경남도지사 출마를 상수로 놓고 봤을 때 최선이라고 볼 수 있다. 특검 수사도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은 특히 적절하다. 물론 김경수 의원의 입장 발표가 바로 특검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현재 국회 구도상 특검은 여야 합의에 의할 때만 가능한데 더불어민주당이 이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협상 과정의 진행 경과에 따라 특검 수사가 현실이 될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볼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는 현재 경찰의 수사가 부실하다는 지적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19일 서울지방경찰청은 2016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김경수 의원이 ‘드루킹’ 김모씨에게 텔레그램 메시지 총 14건을 보냈다고 밝혔다. 이중 10건에는 언론 기사 제목과 주소가 포함돼있다. 그런데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김경수 의원이 김모씨가 보낸 메시지를 대부분 확인하지 않았고 의례적으로 고맙다는 취지의 인사 정도만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스마트폰 메시지의 특성상 뒤늦게 새로 메시지가 발견될 이유는 없기 때문에 16일 기자간담회의 설명은 불성실한 것이었다는 추정을 할 수밖에 없다.

검찰과 경찰은 현재 검경수사권 조정이라는 구체적 ‘현안’을 눈앞에 두고 있다. 거기다가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은 6월 임기가 만료되는 이철성 경찰청장의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사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금까지 경찰 수사가 부실했고 앞으로도 부실하리라 예상된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수사기관이 제대로 수사할 수 없다면 특검 수사는 불가피할 것이다.

다만 김경수 의원이 김모씨에게 주소를 보냈다는 기사들이 선거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여전히 ‘드루킹’과 더불어민주당의 조직적 연결고리를 기정사실화 하는 것은 이르다고 말할 수 있다. 김경수 의원이 보냈다는 기사 제목을 보면 가벼운 내용이거나 ‘지지자 공유용’인 것으로 추정되는 게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문재인 측, ‘치매설’ 유포자 경찰에 수사의뢰…“강력대응”> 제목의 기사나 <막판 실수 땐 치명상…문 캠프 ‘SNS 댄스 자제령’> 제하 기사의 경우는 캠프의 방침을 해설한 내용이다. 다른 후보에게 의혹을 제기하거나 ‘네거티브’를 위한 것이 아니다. 김경수 의원은 16일 두 번째 해명 기자회견에서 “좋은 기사, 홍보하고 싶은 기사가 올라오거나 하면 제 주위에 있는 분들한테 그 기사를 보내거나 한 적은 있었다”, “그렇게 보낸 기사가 혹시 ‘드루킹’에게도 전달됐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한 바 있는데, 경찰이 공개한 기사 목록은 적어도 이 설명의 범위 내에 있는 걸로 추정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드루킹' 김씨에게 보낸 기사 목록 [서울지방경찰청 제공=연합뉴스]

하지만 그렇더라도 야당은 공세의 수위를 높일 수밖에 없다. 각자가 놓여있는 정치적 환경 때문에 이 과정에서 무리수가 속출할 것이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19일 ‘드루킹’ 김모씨 접견을 전날 시도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자유한국당에서 왔다고 하자 김모씨가 문을 박차고 나가더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의 이와 같은 행위가 공무집행 방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변호인 접견은 구금된 피의자나 피고인을 위해 변호인이 하는 것인데, 자유한국당은 목적이 사건변호가 아니라는 것을 숨겨 결과적으로 공무원을 기망했다는 것이다. 물론 위법 여부는 법리를 따질 문제이다. 그러나 정치적 효과를 기준으로 봐도 자유한국당이 굳이 무리한 수단을 써가며 구치소의 김모씨를 접견했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바른미래당과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한 안철수 전 의원의 경우는 다소 철학적인 측면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안철수 전 의원은 1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권위주의 군사정권은 감금하고 고문해서 민주주의를 탄압했지만, 지금은 댓글공작 등 여론조작을 통해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있다. 이것은 고문보다 더 지독한 수법”이라고 주장했다. 안철수 전 의원은 전날 “수천 수만개의 댓글로 온라인 도배하는 인터넷 테러, 과거 군사정권이 정보기관을 동원해 야당 정치인을 바다에 수장하고 등산로 절벽서 밀어 떨어뜨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는 자신이 ‘드루킹’ 등 댓글조작의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지만 “때리는 것보다 속이는 게 더 나쁘다”는 세간의 냉소주의적 현실 인식을 자극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포털 뉴스 댓글에 집착하는 지지자를 둔 문재인 정권을 반대파를 고문하고 초법적 조치를 일상적으로 남발한 박정희 정권보다 덜 민주적인 정권으로 평가하는 게 과연 올바르겠는가? ‘드루킹’이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드루킹 사건’ 같은 게 벌어질 수 있다고 봐야 한다.

공동체가 ‘드루킹 사건’과 같은 문제를 바로잡는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이다. 그런데 보수정치는 이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에서 대중의 영향력을 제거함으로써 자신들이 주도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수립하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포털 뉴스 댓글을 없앤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극성스런 지지자들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같은 방식을 반복하면 결국 우리는 대중의 인터넷 사용권한을 일정 부분 박탈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오히려 이것이 민주주의의 파괴이다.

물론 공론장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의 개입은 매우 당연히 필요하다. 앞으로 특히 공직선거법을 대상으로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걸로 보인다. 그러나 근본 문제는 더 많은 대중이 더 합리적 방식으로 통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때에야 풀린다. 그야말로 멀고도 험한 길이다. 이 길을 갈 각오 없이 단기적 이익에 편승할 채비만 돼있는 정치는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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