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감독이 2년 6개월간 대표팀을 이끌면서 모두 95명의 선수들의 이름이 오르내렸습니다. 그 가운데 23명이 월드컵 본선 무대 엔트리에 최종적으로 이름을 올렸지요. 이 과정에서 '허정무호의 황태자'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상당한 주목을 받고도 마지막 경쟁에 아쉽게 살아남지 못한 선수들도 많았습니다. 비록 월드컵에서주인공이 되지 못했지만 한국 축구가 이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이러한 쾌거를 이뤄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23명의 영웅 뒤에 또 다른 영웅들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허정무호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들었던 이근호(감바 오사카)는 마지막에 안타깝게 쓴맛을 본 선수였습니다. 2008년 10월,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과 아랍에미리트와의 최종예선 2차전에서 2경기 연속 2골을 넣으며 두각을 나타냈던 이근호는 월드컵에 출전할 가장 유력한 공격 자원으로서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1년 넘게 골맛을 보지 못하고, 경기력도 떨어지면서 아쉽게 최종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 이근호 ⓒ연합뉴스
이번 월드컵에서 공격수의 필드골이 단 한 골도 없었던 가운데서 이근호가 월드컵에 출전했으면 달라졌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는데요. 그만큼 장점이 뚜렷한 이근호가 시련을 딛고 부활에 성공한다면 4년 뒤 브라질에서 더 좋은 플레이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어쨌든 이근호가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보여준 활약이 없었다면 남아공월드컵 쾌거를 이뤄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의 19년 무승 징크스를 깨는데 선제골을 터트리며 환호했던 그 모습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가장 유력한 수비 자원이었음에도 부상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던 곽태휘(교토)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다른 태극전사입니다. 대표팀 골 넣는 수비수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곽태휘는 허정무호 1기부터 꾸준하게 좋은 활약을 펼치며 가장 든든한 중앙수비수로 자주 거론됐습니다. 그러나 지난 5월 30일,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에서 무릎을 다쳐 다 잡았던 꿈을 놓쳐야만 했습니다. 능력 있는 수비 자원 발굴과 미숙했던 수비조직력이라는 성과와 과제를 동시에 얻은 수비진에 곽태휘의 존재감이 다시 한 번 생각나기도 했는데요. 어쨌든 곽태휘의 활약은 분명히 한국 축구의 쾌거에 밀알과도 같았습니다.

▲ 곽태휘 ⓒ연합뉴스
멀티 플레이어의 힘을 보여주면서 월드컵 본선 진출의 분수령이 됐던 북한과의 최종예선 5차전에서 선제 결승골을 터트렸던 김치우(서울)도 한때 돋보였던 선수였습니다. 허정무호 초기, '김치우 시프트'라는 키워드가 떠올랐을 만큼 김치우의 멀티 플레이 능력은 대표팀 내에서도 경쟁력을 발휘했습니다. 허정무호 1기, 그리고 최종엔트리 발표까지 막판 6개월 동안 꾸준하게 경쟁력 있는 선수로서의 면모를 보였던 구자철(제주), 확실한 수비형 미드필더로 존재감을 보였던 조원희(수원), 신형민(포항)은 중앙 미드필더로서 허정무호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기여도가 높았던 선수들이었습니다. 모두 경쟁에서 아깝게 탈락한 선수들이지만 허정무호 전력 향상에 나름대로 큰 기여를 해냈고, 김치우, 조원희는 최종예선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7회 연속 본선 진출에 큰 역할을 해낸 선수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밖에도 '빅-스몰 조합'의 핵심 자원으로서 대표팀 공격의 축을 담당했던 정성훈(부산), 측면에서 활발한 몸놀림을 보이면서 경쟁력을 보였던 이승현(부산), 최효진(서울), '프리킥 스페셜리스트'로서 강한 인상을 심어주며 영국 언론으로부터 '세계 10대 프리키커'라는 찬사를 받았던 김형범(전북)이 작지만 강한 존재감을 보였던 선수들이었습니다.

비록, 세계 최고의 무대라 할 수 있는 월드컵 출전이 좌절됐지만 이들 앞에는 또 하나의 큰 메이저 대회가 눈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바로 6개월 뒤, 아시아 최강팀을 가리는 2011 아시안컵이 그것입니다. 월드컵 출전에 실패한 아쉬움과 한국 축구의 아시안컵 우승 한을 동시에 풀어내면서 4년 뒤 월드컵의 주역으로 떠오를 수 있기를 이들은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모두 아시안컵까지 제 기량을 끌어올리며 대표팀에 기회를 얻는다면 기존 전력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선수들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내일은 주인공'을 꿈꾸며 다시 축구화 끈을 고쳐 메는 이들 10명의 '전(前) 태극전사들'. 쉽지 않은 도전 속에서 부활을 자신하며, 51년 만의 아시아 정상을 꿈꾸는 한국 축구의 새로운 꿈에 기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 이들의 활약에도 우리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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