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18일 방송계갑질119와 방송스테프노조 준비위원회가 주최한 ‘2018 방송제작현장 성폭력 실태조사’ 기자 회견이 열린 가운데 다수의 언론이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써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기자 회견 현장에서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기사 전면에 내세우지 말아 달라는 주최 측의 요청이 있었지만 이를 무시한 것으로 “언론사에게 도덕성이 사라지고 상업성만 커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성폭력 사례를 이용해 자극적인 제목을 쓴 언론들(미디어스)

이번 실태조사에 따르면 방송 제작현장에서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비율이 90%에 달하고, 이들 중 상당수가 비정규직이었다. 개인의 평가가 고용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방송계인 만큼 권력형 성폭력 형태가 나타났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선 방송계 성폭력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언론의 노력이 필요했다. 다수의 언론이 기자 회견에 참석했고 방송계 성폭력 문제에 관한 기사를 출고했다.

문제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자극적으로 묘사한 제목이었다. 기자회견장에서 기자들에게 나눠준 자료집에는 30여 개의 성폭력 피해나 목격 사례가 있었다. 구체적인 성폭력 사례들이 담겨 있어 자칫 자극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소재였다. 이에 주최 측도 “피해 사례를 이용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는 피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기자 회견이 끝나고 출고된 다수의 기사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이용해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썼다. ▲국민일보 <"공중파PD가 사람들 앞에서 女작가 가슴 움켜줘" 방송계 성폭력 실태> ▲한강타임스 <“술자리서 옆에 앉히고 뽀뽀하며 모텔가자해” 방송계 종사자 90% 성폭력 경험> ▲파이낸셜뉴스 <"만지고 모텔 가자고.. " 방송계 만연한 권력형 성폭력> ▲뉴시스 <"PD가 작가에게 뽀뽀, 모텔 가자고"…방송계 만연한 성폭력> 등이다.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제목에 적어 기사 클릭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중 국민일보는 성폭력 사건을 묘사하는 듯한 자극적인 사진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언론사가 미투운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총장은 “언론계가 힘들다 보니까 클릭 장사를 한다”며 “선정적 제목으로 클릭하게 하는 것으로 언론에 도덕성이 없어지고 상업성만 커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제목으로 뽑아도 좋다는 건 아니다. 언론의 2차 가해”라고 강조했다.

김언경 사무총장은 “이러한 보도 행태는 성폭력 사실을 밝힌 사람을 곤경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며 “미투운동에 나선 사람을 모욕준 것이다”고 했다. 또한 “피해자의 진지한 고백을 언론에서 성적으로 소비하는 것 때문에 미투운동 동참 줄어들 것이다”고 지적했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는 “이 문제가 선정적, 자극적으로 나가게 되면 구조적 해결이 어려워진다”며 “(위의 기사를 쓴 언론이)미투운동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지, 이 상황을 바꾸려고 하는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권순택 활동가는 “자극적으로 기사가 나가는 것이 조회 수를 높일 수 있겠지만 미투운동의 취지나 본질에 반하는 부분이다”며 “기사 제목을 정하는 언론사 데스크 인식이 여전히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비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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