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다이내믹 코리아’이다. “댓글 조작 잡고 보니 민주당원”이라는 역설(paradox)의 전형 같은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피의자들이 보수세력의 주장을 강조함으로써 문재인 정부 지지층의 결집을 위해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추천 수 조작 등을 했다고 주장한 것은 마치 서머셋 몸의 엽편 소설 <사마라에서의 약속(Appointment In Samarra)>을 떠올리게 한다.

<사마라에서의 약속>은 대략 이런 내용이다. 바그다드의 어떤 사람이 시장에서 인격화 된 ‘죽음’을 만나 놀란 나머지 사마라로 도망쳤다. 그런데 정작 ‘죽음’은 “저 사람을 오늘 밤에 사마라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바그다드에서 보게 돼 놀랐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죽음’을 피하려는 그 행동이 역설적으로 ‘죽음’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빗대자면, 피의자들이 사마라로 도망친 덕에 보수세력이 원하는 ‘진보의 이중성’과 ‘똥 묻은 개와 똥 묻은 개의 대결’ 프레임 강화가 알아서 이뤄진 셈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경찰은 이들의 주장을 답이 궁해 둘러댄 말로 판단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과 접선(?)한 당사자인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의 해명도 같은 맥락이다. 피의자들이 대선 때 자발적으로 도와준다며 접근해놓고는 나중에 인사청탁을 해 이를 물리치자 정권에 비판적인 태도로 돌변했다는 것이다.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이들이 요구한 것은 ‘오사카 총영사’ 자리였다고 한다. 또 다른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들은 가장 유력한 ‘차기’로 간주됐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지지 활동을 벌이며 권토중래(?)를 꿈꾸었다고도 한다.

어쨌든 사건의 실체는 경찰 조사가 마무리 돼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만에 하나 일방적으로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내는 수준이 아닌, 피의자들과 현 정권 핵심인사와의 직접적 연결고리가 드러난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특검까지 수용할 태세로 이 문제에 임해야 한다. 새로운 정권은 과거의 정권과 본질부터 다르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바만 보면 보수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전임 정권의 국정원 댓글조작을 떠올리게 하는, ‘권력의 여론조작’이 본질인 것으로 판단하기는 이른 것 같다. 오히려 대선 이후 논공행상의 파열음에 가까운 상황이 아닐까 싶다. 다만 그렇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은 남는다.

보통 인사청탁을 받아주지 않은 것에 대한 대응은 사건 전말을 폭로하는 것 등으로 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 경우 피의자들은 정권에 불리한 여론을 조성하는 걸로 복수(?)를 하려고 했다. ‘인사청탁’이 매우 직접적 이해관계를 전제한 것임에 반해 ‘여론 조성’은 효과를 확신하기도 입증하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14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민주당 당원 댓글공작'에 연루됐다는 한 매체 보도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경수 의원이 거짓 해명을 한 게 아니라면 두 가지 추측을 해볼 수 있다. 하나는 피의자들이 ‘건전한 여론 조성’의 위력을 실제로 맹신하였을 가능성이다. 인사청탁과 댓글 조작의 등가교환은 자신들이 실제 여론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다른 하나는 댓글 조작이라는 행위 자체에 또 다른 목적이 있었을 경우다. 다른 세력을 향해 세를 과시한 것이거나 새로운 지지 대상을 향한 일종의 ‘포트폴리오’ 작업을 한 결과일 수 있다는 얘기다.

핵심 피의자이자 온라인 유명 논객으로 보도되고 있는 ‘드루킹’이란 사람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면 진실은 두 가지 가능성의 중간쯤에 있을 걸로 추정된다. ‘드루킹’은 경제민주화를 더 철저히 하자는 취지의 모임을 운영하면서 이번 사건의 주모자가 된 걸로 보인다. 즉, 경제민주화 등 정책적 지향을 관철하는 것보다는 어떤 종류의 ‘정치적 게임’에 더 무게를 둔 활동을 해온 것으로 추측된다는 거다.

피의자가 소셜미디어 등에 올린 글을 검토하면 기만적인 명분을 내세우는 것으로 자기 세력을 늘리는 어떤 전형이 배후에 존재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기성 언론 포함 세상 천지에 다 거짓말뿐이니 본인들이 직접 인터넷을 통해 바람직한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며 포털 기사 추천 및 댓글 개입을 정당화 한 게 대표적이다. 양상은 다르지만 유사의학 등 의사과학의 신봉자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음모론적 인식 체계가 여기서도 발견된다. 이를 단순하게 정리하면 “세상은 다 가짜고 오직 나만이 진짜”라는 게 될 것이다.

그런데 오사카 총영사 직을 요구한 것 등에서 드러난 피의자들의 실제 활동 목적은 본인들이 ‘진짜’라고 주장한(여기서는 경제민주화 등) 것과 별 관계가 없다는 것에서 앞서의 신념체계 역시 ‘진정한 믿음의 대상’이었던 것인지 의문이다. 말하자면 ‘유일한 진짜를 자처하는 가짜’였던 셈이다.

그러니 어떤 가치를 관철하는 것보다는 ‘이기는 방식’을 고안해내는 것에 활동의 방점이 찍히는 것이다. ‘이기는 방식’으로서 가장 효율적인 것은 보통 불의한 수단이고 이를 정당화하는 가장 간편한 논리는 ‘거악’의 존재를 상정하는 것인데, 이게 앞서 언급한 음모론적 현실인식의 근본이다. 근본주의자의 외양을 하고 실제로는 냉소적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둔 기만적 행위를 감행하는 사례는 이슬람국가(IS)나 시리아의 정부군과 반군, 유럽과 미국의 극우 포퓰리즘 세력 등 세계 곳곳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바다.

이러한 세계관은 결국 가치와 노선을 추구하는 문제인 정치의 근본을 어떤 기술 대 기술의 대결로 전락시킨다. 사건의 주모자가 이명박 정권의 댓글 개입에 주목하며 SNS에 “인터넷 기사의 댓글이 뉴스의 가치 판단에 주요 기준으로 작용한다”, “그 중요성을 제일 먼저 깨달았던 MB가 댓글부대를 만들었다”고 쓰고 블로그에는 “대선 승리는 일반 시민의 자발적인 역량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보다 훨씬 정교한 준비를 우리 진영에서 오래 전부터 진행해 왔기 때문”이라고 적은 것 역시 이런 인식을 보여준다. 이런 인식 속에 조직적으로 여론을 조성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갈등과 이를 통해 형성되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의 존재는 완전히 무의미해진다.

하여간 이 사건의 실체는 전모가 투명하게 밝혀져야 하고 위법한 행위는 처벌받아야 하며 정치적 차원에서도 책임질 사람이 있다면 이를 피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가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에 그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과연 이 사건의 피의자들이 갖고 있는 정치에 대한 기만적 인식을 우리 역시도 공유하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세상이 다 거짓’이라는 인식은 댓글 조작의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무관심과 잘못된 정치를 방치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진실’을 대하는 바람직한 방식은 내가 믿기로 한 것 외의 ‘거짓’으로 간주된 것을 모두 눈앞에서 치워버리거나 진실 그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을 포함한 그 모든 것들 속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게 우리의 숙명이다. 이 숙명을 기꺼이 짊어질 때만 윤리적 실천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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