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안녕하세요. 연재노동자, '일간 이슬아'의 작가 이슬아입니다"

매일 한 편의 글을 메일을 통해 독자에게 써 보내는 작가가 있다. 글의 가격은 한 편당 500원, 한 달 구독료 만원에 주말을 뺀 20일을 매일 독자에게 써 보낸다.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의 이슬아 작가는 출판사도, 매체도, 어떤 플랫폼도 거치지 않은 자신의 글을 독자들에게 직접 전한다.

그가 '셀프 연재'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작가는 글쓰기는 노동이며, 글로 먹고살고 싶고, 매체에 따라 편집되지 않은 자신의 글을 온전히 전하고 싶다고 했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일간 이슬아'를 시작했다는 그를 지난 11일 작가의 집에서 만났다.

'일간 이슬아'의 이슬아 작가.(미디어스)

Q.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해 달라

말 그대로 매일 한 편씩 이슬아의 글을 보내는 프로젝트다. 어떤 플랫폼도 거치지 않고 개인 메일을 통해 일대 다 연재를 한다. 자주 글을 누군가에게 보내고 연재하고 싶었다. 그런데 제 글을 자주 실어줄 매체가 별로 없고, 실어준다고 해도 매체의 성격에 따라 글이 수정되는 경우도 많았다. 원고료 역시 대체로 너무 적기 때문에 제가 셀프 연재를 시작한, 그런 프로젝트다.

만화를 그리는 동료작가 '잇선'씨에게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가 매일 사람들에게 자신의 일기를 보내고 후원 받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고, 허락을 구해 아이디어를 빌려 시작하게 됐다. 그는 일기와 이미지를 보낸다. 나는 읽을 만한 재미난 수필을 매일 한 편씩 완성해서 보내는 걸 목표로 한다.

Q. 웹툰 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가 아니라 글을 보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화로 연재를 해왔지만 만화는 제게 익숙한 표현 도구가 아니다. 글쓰기가 가장 익숙한 표현 방식이어서 선택했다. 만화를 했던 이유에는 글과 만화 사이의 큰 원고료 차이도 있다. 제 마음속에서의 주업은 항상 글이었지만 실제로 제 생계는 항상 만화가 책임졌다.

글로 먹고 산다 치면 한 달에 몇 군데에서 청탁을 받아야 하는지 생각했다. 감도 잡히지 않았다. 몇 군데 글을 써왔지만 등단을 작은 곳에서 했기 때문에 큰 문예지에 실리는 경우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글로 먹고 사는 건 정말 어려운가? 불가능한가?'라는 생각을 했다. 등단하지 않은 작가가 글로 먹고 사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는데, 이 프로젝트가 어쩌면 가능하게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

(이슬아 작가는 2013년 제5회 한겨레21 손바닥문학상에 자신의 누드모델 경험을 글로 담은 '상인들'이라는 작품으로 당선된 바 있다)

Q. '일간 이슬아'의 속성상 작가와 독자가 직접 연결되는 구조다. 많은 피드백이 올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반응이 많은 편이다. '일간 이슬아' 전용 메일이 있는데 그곳에는 여러 피드백들이 쌓이고 있다. 생각지 못한 유의미한 지적들과 칭찬들이 보내져 온다. 이 시스템이라 받게 되는 고통과 황홀이라고 생각한다. 감사하고, 부끄러워하며, 반성한다.

Q. 구독료를 한 편당 500원, 매월 만원으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딱 떨어지는 쉬운 금액이기도 하고 한 편당 500원이라는 것이 제 마음을 편하게 했다. 한 편당 500원이라는 게 그래서 대충 써도 된다는 게 아니라, 독자에게나 저에게나 부담이 덜하다고 여겨졌다. 만원이 큰돈이기도 작은 돈이기도 한데 누구에게나 어려움 없이 낼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작하고 나니 수십 명의 10~20대로부터 '지금 수중에 만원이 없으니 나중에 보내 드리겠다'는 문의가 많이 왔다. 나름대로 박리다매 느낌으로 한 것인데도 최저시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조차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많은 책임감을 느끼는 중이다.

Q. 최근 주 5일 중 하루는 다른 필진에게 지면을 할애한다고 공지했다. 그날 치 구독료도 필진에게 전해진다는 내용이었는데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나

나를 꾸준히 쓰게 하는 자들은 10대 때부터 함께 글을 쓰던 동료들이자 친구들이다. 다들 다르게 훌륭한 글을 쓰고, 그들이 쓴 훌륭한 글들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며 제가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그들보다 더 나아지고 싶어서, 그들 옆에서 부끄럽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써 왔는데 막상 글로 먹고 살 수 있게 된 사람이 나뿐이라는 게 이상하게 여겨졌다.

창작을 잘하는데 창작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건 오래된 얘기지만 안타까운 얘기다. '나의 이 빛나는 동료들의 글을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매체에 그들의 글을 소개했다. 실제로 연재를 한 경우도 있었는데 글의 성격이 많이 변하더라. 모 매체에 친구의 글을 연결해 준 적이 있는데, 제가 볼 때 정말 좋은 글이었는데 그 매체에서는 친구에게 글을 처음부터 다시 쓰라고 했다. 글이 원본과 달리 굉장히 상업적으로 변해있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청탁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구독자들이 모여준 덕분에 '일간 이슬아'가 좋은 지면이 됐다. 5일 중 하루 정도는 그들에게 할애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정보다도 더 큰 문제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인터넷을 사용하며 업로드 권한이 거의 동등한 시대다. 지면을 친구들에게 할애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반대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저는 감히 이 시도가 '일간 이슬아' 독자들의 읽기를 풍성하게 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친구들의 글을 기고한다고 해도 '일간 이슬아'의 이름을 걸고 나간다. 결국 기고 글에 대해 가장 까다롭게 굴 사람은 나다. 내가 친구들의 글에 자신이 있어 필진을 모셔 오는 느낌이다. 여전히 4일은 제가 쓴다. '일간 이슬아'에서 이슬아가 픽(pick)한 것에 대해 구경하는 것이기도 하니 지켜봐주시길 바란다.

Q. 자신을 '연재노동자'로 소개하셨다. 그렇게 소개하는 이유가 있나

글쓰기는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이유는 글이 애매하게 문화예술의 영역으로 불리기 시작하면 돈을 요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재 청탁을 받을 때도 돈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청탁소에서 고료를 명시하고 고료 지급일을 써주는 문화가 생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상태로는 고료가 언제 들어올지도, 얼마나 들어올지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글쓰기가 노동이라는 것을 힘주어 말해야 한다. 그래야 돈을 받을 수 있으니까.

Q. '일간 이슬아'에 실리는 글의 소재는 주로 무엇인가

저와 제 주변에서 목격한 사건과 인물에 대해 쓴다. 세계가 아주 넓다고 할 수는 없다. 제가 살고 돌아다니는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Q. 자신과 자신 주변에 천착하는 이유가 있나?

그것밖에 잘할 줄 모른다. 목격하거나 경험하지 못한 것을 쓸 때 유독 어설프게 쓰는 사람이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쓰면 항상 독자에게 들켰다.

내가 겨우 잘할 수 있는, 객관적일 수 있는 부분은 내 알몸 그리기와 나에 대해 쓰기 정도다. 누드모델을 하면서 사람들이 나를 여러 버전으로 그려 놓은 것을 몇 백점 정도 보며 진실은 이것들의 중간이겠구나 생각했다. 이후 내 알몸을 실제에 가깝게 그릴 수 있게 됐다. '일간 이슬아' 연재 전부터 나에 대해, 주변인에 대해 아주 많이 쓰거나 그렸고 대체로 여러 아쉬움을 남긴 채 끝냈다. 그때 했던 실수들을 보완하면서 다시 쓰고 있다. 계속 고치며 객관에 가까워져 가고 있는 느낌이다.

Q.매일 다른 주제로, 주변을 주제로 쓰다보면 소재 고갈에 대한 고민이 생기지는 않는지

지금까지는 나와 애인, 내 주변과 그들의 돈벌이 정도에 머물렀던 것 같다. 저의 오랜 스승이 '남의 슬픔이 내 슬픔처럼 여겨질 때 작가의 글쓰기가 겨우 확장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살아갈수록 타인의 기쁨과 슬픔이 내 일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진다. 그것은 제 세계가 넓어지는 일이고 제가 품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지는 일 같다. 점점 더 넓게, 많은 이들에게 확장되고 싶다.

Q. 자신의 글이 어떻게 읽혀지길 바라나

읽는 포만감이 들었으면 좋겠다. 읽는 게 재밌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어떤 식으로든 즐거운 독서의 경험으로 남기를 바란다. 아주 개인적이고 '나'에게 머무르는 문장들을 쓰지만 보편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제 글이 독자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들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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