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김기식 금융감독원장를 상대로 제기한 의혹에는 소위 ‘땡처리 상여금’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임기 종료 상황에서 국회의원이 자신에게 모금된 후원금을 국고로 반납하지 않고 직원들 상여금으로 사용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김기식 원장이 의원신분이었던 19대 국회에는 이 같은 땡처리 상여금이 관행 이상의 현상이었다는 사실이다.

오마이뉴스는 2016년 정치자금 정보공개청구를 통해서 경선 탈락, 20대 국회 불출마 등의 143명의 사례를 분석했다. 그 결과 조사한 총원 143명 중 55%에 달하는 78명이 정치자금으로 퇴직금 및 상여금을 지급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78명 중에는 자유한국당이 41명으로 단연 1위를 차지했고, 더불어민주당 22명, 무소속 8명, 국민의당 5명, 정의당 2명 순으로 많거나 적음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김기식 금감원장의 사퇴를 촉구 기자회견에서 김 원장 관련 국정조사를 요구서를 제출하겠다고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 후원금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도 문제로 삼았지만, 이 역시도 김기식 원장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었다. 19대 임기 말에 출장 명목으로 해외를 다녀온 의원은 총 11명이었다. 이 경우를 꼭 관행이었다고 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김기식 원장만 그랬다는 비난은 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을 향한 야당의 문제 제기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국회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은 외유와 임기말 정치후원금 상여금이다. 앞서 피감기관 지원 외유의 경우 이미 16개 기관의 사례로 보아 19대, 20대에 167건이나 됐고, 이 경우 역시나 자유한국당이 훨씬 더 많은 사례를 보였다. 그리고 땡처리 상여금 논란 역시 김기식 원장만의 일탈로 볼 수 없는 관행의 경향이 밝혀졌다.

그런 와중에도 김기식 원장에 대한 야당과 언론의 사퇴 압박이 높아지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서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김기식 원장이 받는 의혹들 중에 “위법이 하나라도 있다면 사퇴”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당시 국회의 관행이었다면 야당의 비판과 해임요구는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면서 때문에 “위법한지, 당시 관행이었는지에 대해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 "위법 사항 하나라도 있으면 김기식 사퇴" (MBC 뉴스데스크 보도 화면 갈무리)

언론들은 일제히 이를 문재인 대통령의 출구전략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진짜 고민은 출구를 찾는 수준의 것은 아니었다. 문 대통령은 “근본적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줘야 한다는 욕심이 생긴다”면서 “하지만 과감한 선택일수록 비판과 저항이 두려워 늘 고민”이라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으로서는 이런 식의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줄곧 떠도는 말이 있다. 다른 것은 다 그대로고 대통령 하나만 바뀌었다는 것이다. 사실 적폐청산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과제가 개혁이다. 이재용 재판을 통해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대한민국에서 재벌개혁은 너무도 어려운 것이다. 은밀하거나 때로는 노골적으로 개혁을 막아서는 세력이 존재한다. 이번 김기식 원장에 대한 비토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문 대통령 "위법 사항 하나라도 있으면 김기식 사퇴" (MBC 뉴스데스크 보도 화면 갈무리)

개혁에 앞장서야 할 인물들에게서 도덕적인 완벽을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은 매우 뼈아픈 사실이다. 그렇지만 정치권과 언론의 야단법석에도 시민들이 김기식 원장을 애써 옹호하고 싶은 것은 개혁의 절실함 때문이다. 개혁이 시급한 지금으로서는 깨끗한 손만 찾을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관행으로 포장되어온 국회의원들의 과도한 특권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위법이 아니라면 일단 개혁에 쓰자는, 대통령으로서는 참으로 하기 힘들었을 말을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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