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금융감독원장 문제가 가장 중요한 순간을 지나고 있는 듯 하다. 청와대가 선관위로 공을 넘겼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1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보수언론과 보수야당 등이 제기한 김기식 금감원장 관련 의혹의 적법성을 판단해달라고 질의했다. 청와대가 이날 선관위에 보낸 질의서에는 김기식 금감원장이 국회의원 시절 임기 만료를 앞두고 남은 후원금을 더미래연구소 등에 납부한 사실, 피감기관 돈으로 해외 출장 갔다 온 점, 이때 의원실 직원을 대동한 일, 해외 출장 중에 관광 일정을 포함한 것 등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김기식 금감원장을 지키기 위한 명분 마련에 들어간 것이라는 해석과 일종의 ‘출구전략’을 마련하는 모양새라는 해석이 엇갈린다. 선관위가 김기식 금감원장의 과거 행위에 하나라도 ‘불법’이란 판단을 내리면 사퇴는 불가피해진다. 불법 행위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면 “불법이 없었으니 금융감독원장직 유지도 가능하다”는 논리와 “불법 행위는 없다지만 이번 일을 관행을 바꾸는 계기로 삼자”며 김기식 금감원장의 사퇴를 유도하는 논리가 모두 가능해진다.

선거를 앞둔 현실을 고려하면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맨 마지막에 언급한 경우다. 어쨌든 김기식 금감원장을 이대로 안고 가는 것은 부담스럽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김기식 금감원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반대하는 여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11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김기식 금감원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에 응답자의 50.5%가 동의했지만 사퇴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33.4%에 그쳤다.

주목할 것은 지지정당별 응답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야당 지지층에서 사퇴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놓고 여당과 정의당 지지층에서 사퇴 반대 여론이 비교적 높은 것은 당연한 걸로 해석될 수 있다. 문제는 무당층인데, 여기서 사퇴에 찬성하는 응답은 전체의 59.3%였고 반대는 11.2%밖에 되지 않았다. 이 조사는 무선(10%) 전화면접 및 무선(70%)·유선(20%) 자동응답 혼용, 무선전화(80%)와 유선전화(20%) 병행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였다.

무당층의 이반은 선거에서는 악재이다. 특히 이런 종류의 이슈는 사실상 투표를 포기한 상태에 가까운 일부 보수층을 다시 투표장으로 불러낼 가능성까지 있다. 선거만 놓고 봐도 김기식 금감원장은 직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물러나는 게 낫다는 거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김기식 금감원장의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에는 이런 맥락이 있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감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식 금감원장이 낙마하게 되면 결국 인사검증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조국 민정수석이 또 문제가 된다. 조국 민정수석은 문재인 정권에서 인사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검증실패’라는 보수세력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 이번에는 보수세력이 ‘참여연대’ 프레임이라는 ‘덫’을 놓은 상태라 더 난감한 상황이다. 조국 민정수석은 2005년까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으로 활동했고 김기식 금감원장이 주도한 더미래연구소의 이사를 맡은 바도 있으며 문제가 된 ‘리더십 아카데미’에 강사로 참여한 바도 있다. 이를 두고 보수세력은 “참여연대들이 끼리끼리 봐준 것 아니냐”는 악선전을 유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김기식 금감원장이 낙마하더라도 선관위가 불법행위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인사검증 실패론에 대해 반론 근거를 세울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정치권 일부의 전망인 듯 하다. 무엇보다도 공수처 설치, 검경수사권 조정 이라는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문재인 정권으로서는 조국 민정수석을 인사검증 문제로 잃을 수 없는 입장이다. 청와대가 김기식 금감원장 문제를 선관위에 문의한 것을 ‘출구전략’으로 보는 시각에는 이런 사정들이 반영돼있는 셈이다.

물론 그런 전망대로 상황이 굴러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동아일보는 13일 청와대가 질의한 4건 중 선관위가 현재 답할 수 있는 내용은 국회의원이 임기 말 후원금으로 기부하거나 직원 퇴직금을 지급한 문제 하나 뿐이라고 보도했다. 이마저도 수사기관이 수사 중일 때는 답변하지 않는 게 관행이라고 한다. 동아일보는 “선관위 법제국은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이 같은 내용을 청와대에 회신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후 상황이 어찌 되든 통치의 방법론이라는 점에서 청와대가 선관위로 공을 넘긴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피감기관의 돈을 받아 해외출장을 다녀온 사례를 여야로 나눠 비교한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청와대는 12일 여당 협조로 피감기관 16곳의 자료를 무작위로 뽑아 분석한 결과 19대와 20대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피감기관의 돈으로 해외 출장을 다녀 온 사례가 모두 167차례에 달하는 걸로 나타났고 이 중 자유한국당은 94차례, 더불어민주당은 65차례였다고 밝혔다.

이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탓한다”는 일종의 자격론을 제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자격이 없는 사람들끼리도 옳고 그름을 논할 수는 있는 것이고, 또 어떤 때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차원을 더나 ‘정치적 수 싸움’로 해석될 수 있는 일은 이미 여당이 김성태 원내대표의 사례 등을 놓고 하고 있는데, 굳이 청와대가 나서서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의 피감기관 지원을 받은 출장 회수를 공개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국회 전체에 잘못된 관행이 있었다’는 수준에서 그쳤으면 더 나았을 것이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이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논란이 이는 김기식 금감원장을 청와대가 비호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비난하는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식 금감원장의 거취가 어찌되든 청와대의 개혁에는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 혹여라도 김기식 금감원장이 낙마한다면 관료로 회귀하는 게 아니라 더 강한 카드가 나와야 한다. 그러자면 ‘자격론’이 아니라 개혁 자체를 놓고 명분 싸움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의 싸움’ 구도에서는 서로의 잘못을 빌미로 개혁의 취지를 퇴색시키는 더 나쁜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한겨레는 13일 지면에 네이버 등 인터넷 포탈에서 문재인 정부를 비방하는 댓글을 쓰고 추천 수를 조작한 혐의로 3명이 구속됐다고 썼다. 이 중 2명은 더불어민주당의 당원이라고 한다. 여기서 ‘더불어민주당의 당원’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음모론’에 익숙한 한국 정치의 풍토에선 이 지점을 놓고 수십 가지의 시나리오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이 사람들의 행위가 정말 문재인 정권을 향한 충심에서 나왔을 경우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국정원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댓글을 달았는데, 우리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라는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경우가 아니길 바라지만, 지지자 입장에선 유혹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결과적으로는 개혁의 좌초로 연결되는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다. 어쨌든 개혁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신실함이 이 정권의 가장 큰 무기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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