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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다오"
황지희 기자 | 승인 2007.12.24 03:51

   
 
12월 23일 SBS <SBS 스페셜>의 한장면이다.

차마 글로 옮기기 힘든 이야기다. 감히 무엇이 '옳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아무도 자신의 가족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하는 자의 마음을 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살인피해자 가족들의 마음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아무도 그들이 어떤 고통속에서 그 답과 마주쳤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23일 <SBS 스페셜> '용서... 그 먼 길 끝에 당신이 있습니까?'편은 살인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을 담았다. 

영화 <밀양>에서 이신애(전도연 분)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하기로 한 후 잃었던 웃음을 되찾았다. 적어도 살인자와 교도소에서 면회를 할 때까지는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용서한다고 해서 고통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게 아니었다.

<SBS 스페셜>은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담아냈다. 그 용서의 길이 얼마나 길고 험한 과정인지도 가감없이 보여줬다. 이에 아직 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있는 가족들의 마음도, 용서를 선택한 가족들의 마음도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가족에게 억지로 용서를 권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완결지으려 하지 않아 다행스러웠다.

단, 도입부에서 화면 한구석에 배우 김혜수의 내레이션 장면 사진을 넣은 것은 옥의 티로 보였다.

세 가족이 나왔다. 두 가족은 유영철 살인사건 피해자들이다. 세상은 유영철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지만, 피해자들이 누구였는지는 벌써 잊었다. 그들을 기억하고 있는 가족들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유형철은 피해자만 죽인게 아니었다. 안재삼 씨는 유영철 때문에 모든 형제를 잃었다. 큰형이 참혹하게 살해당하자, 그 충격으로 둘째 형과 막내 남동생까지 자살했다. 현재는 늙은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다. 국가가 유영철을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라도 복수하겠다며 분노에 떨고 있다. 아들 셋을 잃게 만든 유영철을 용서하겠다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고정원 씨는 유영철에게 세가족을 잃었다. 어머니와 부인, 아들이 유형철에게 살해당했다. 범행현장을 처음 발견하기도 했던 그는 유영철이 검거된 후 자살까지 결심했다. 하지만 그는 용서하기로 결심한다. 살아있으니 살아야했고, 살아있는 딸 때문에 다시 살 수 밖에 없었다. 용서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어느 노부부는 딸을 잃었다. 딸의 남자친구가 딸을 살해하고, 그는 자살했다. 외동딸을 잃은 부모는 그 후 고통에 몸부림치며 하루 하루를 보냈다. 몇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은 살인자를 위해서도 기도를 올린다. 그 결심은 쉽지 않았고, 지금도 흔들리고 있다. 피해자 가족들의 모임에서 아버지는 "아빠가 용서할 수 있도록 용기를 다오"라고 말하며 절규했다.

고정원 씨는 미국으로 '희망여행'캠프를 찾았다.  '희망여행'은 살인피해자 유가족, 사형수 가족, 그리고 사형수였다가 무죄로 풀러난 사람들이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상처를 치유하는 모임이다.

그곳에서 고정원 씨는 '씨씨 맥위'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의 딸은 살해당하고, 아들은 사형당했다고 한다. 사위가 딸을 살해했음에도 곧 풀려나자, 20년 후 아들이 사위를 살해했고, 그 아들에게 사형이 집행되었다.  두 사람은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깊은 포옹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눈물을 흘렸다.

결국 방송에 나온 피해자 가족들이 살인자를 용서하는 이유는 증오, 분노, 복수가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음을 천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으로 보였다. 그 길은 쉽지 않고 단번에 이뤄지지 않는다. 용서한다고 해서 분노가 사라져버리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다만 용서의 길을 조금씩 걸어나갈 뿐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다. 

무엇이 옳은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엇이 죽은 피해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도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그 고통을 나눠야 한다는 점이다. 피해자 가족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을 위로할 사람이 필요하다. 사형제 폐지문제 또한 그런 성찰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  

TV는 아무래도 자극적이다. 내레이션과 음악이 생각을 방해한다.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나온 <희망여행>(사카가미 가오리 지음)을 읽어보길 권한다. 방송에 잠시 나왔던 '희망여행'에 대해 좀 더 깊이있게 고민해 볼 수 있다.

방송은 SBS 홈페이지(http://tv.sbs.co.kr/sbsspecial/index.html)에서 '무료'로 다시 볼 수 있다.

황지희 기자  nabt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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