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한물간, 너무나 오랜 기간동안 하도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한동안은 통용되지 않을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리얼과 진정성을 요구하는 현재 예능의 추세와도 맞지 않을뿐더러 가상이고 짜고 치는 고스톱일 뿐인 사랑놀음에 시청자들이 그렇게 쉽게 넘어갈 리도 없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 TV속 세상을 지배하는 중요한 틀은 여전히 연예인들이 나와 서로 연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러브라인입니다. 그것도 민감한 지뢰밭 투성이인 20대 초반 아이돌의 사랑 이야기이죠.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지금의 러브라인 구도는 그들이 나와서 ‘사랑’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주체가 아이돌이라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으니까요. 많은 이들의 우상으로서 기능하는 이들이 실제 성격의 일부를 공개하고 스스럼없는 태도로 연애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사실이 예전과 다릅니다. 우결은 조권-가인의 아담커플이 대히트를 치자 이젠 아예 등장 커플 모두를 아이돌로 도배를 해버렸고, 잘나가는 포맷을 그대로 이식하는데 탁월한 뻔뻔함을 보이는 SBS 예능국도 슬그머니 패떴2에 택연-윤하 조합을 끼워 놓았죠. 등장하는 프로그램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여러 경로로 애정행각을 과시하는 이들의 대담함, 혹은 다양함은 새로운 러브라인 시대의 도래를 보여주고 있어요.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죠. 아이돌이 공개 연애를 포맷으로 하는 프로그램에 나오다니요. 이런 변화는 그만큼 이전 1세대 아이돌의 시대와는 달라진 지금의 팬 문화의 덕분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이들의 사랑 놀음에 반대하고 공격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일부 팬들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이러한 방송 활동이 자신이 아끼는 스타의 성장과 인지도 확산을 위한 내 남자, 내 여자의 비즈니스라는 사실을 영리하게 납득하고 응원해주고 있거든요. 오히려 이들의 알콩달콤한 관계에 자신을 투영하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아이돌의 러브라인은 방송을 통해 실체로 구현된 팬픽 문화의 일부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게다가 아시아를 무대로 넓어진 아이돌들의 활동 반경은 이런 가상 러브라인 구축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필리핀을 비롯한 몇몇 동남아 팬들에게 아이돌의 가상 연애는 친숙한 포맷이기도 하기에 판권을 판매하는 방송국이나 인지도 확산을 노리는 아이돌이나 모두 만족할만한 시도인 것이죠. 우결에 출연 중인 6명의 스타들이 모두 해외 활동에 활발한, 혹은 계획 중인 그룹의 멤버라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합류한 닉쿤과 빅토리아가 외국 출신의 아이돌인 것 역시 마찬가지이죠. 아이돌의 사랑 이야기는 이제 단순히 국내에서만 소비되고 유통되는 단계를 넘어섰어요.

거기에 20대 초반의 사랑, 혹은 연애라는 달콤한 환상을 덧붙이고 있으니 아이돌에게 관심이 없었던 이들에게도 적절한 솜사탕을 쥐여 주는 셈이죠. 이전처럼 매주 그 대상이 바뀌는 억지 로맨스가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친해지는 연애의 감정을 담고 있는 지금의 러브라인은 출연자 둘 사이뿐만이 아니라 시청자들에게까지 그 친근함, 정이 쌓여가는 과정을 함께 공유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가장 큰 장점인 시청자들과의 일체감을 형성하는 방식을 고스란히 따라가고 있는 것이죠.

글쎄요. 이런 달콤한 사랑 이야기가 얼마나 더 인기와 지지를 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대세인 아담커플의 생명력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이돌의 러브라인이라는 포맷 자체가 주는 매력은 상당하니까요. 가요계를 지배하고 있는 아이돌의 열풍, 그리고 리얼 버라이어티의 묘한 결합이 만든 이 결과물은 앞으로도 주인공과 형식만을 바꾸어가며 한동안 브라운관을 지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 같네요. 방식은 바뀌고 나오는 사람의 연령대도 변해 버렸지만 역시 사랑이야기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재는 없는가봅니다. 그것이 결국 이루어지지 않을 환상이기에 뒷맛은 조금 씁쓸하지만 말이죠.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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