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남아공월드컵의 최대 아이콘 중에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응원도구 부부젤라(vuvuzela)를 들 수 있습니다. '웽~웽~'거리는 소리 때문에 이를 TV에서 처음 접했을 때는 '방송사고' 아니냐고 오해했을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가 눈길을 끄는 응원도구였는데요. 처음에는 퇴출 얘기도 나왔지만 이제는 부부젤라 소리가 안 나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로 하나의 응원 방식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물론 부부젤라 응원에 대한 비판 여론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래도 남아공 사람들이 그렇게나 좋아한다는 응원도구라고 하니 '문화의 상대성 이론'을 감안한다면 좀 이해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 남아공에서 사 온 부부젤라 (사진-김지한)
저 같은 경우에는 부부젤라 응원이 이렇게 위력적일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 때 논란이 일면서(관련 글: http://blog.daum.net/hallo-jihan/16157391) 부부젤라가 월드컵에서 '전설'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었지요. 물론 그 '전설'이라는 것을 조금은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남아공의 응원방식인 부부젤라가 마스코트 자쿠미도, 주경기장인 사커시티도 아닌 남아공 월드컵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자리매김한 것은 그 나름대로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 됐다는 점에서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전설'로 남게 됐습니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하지만, 부부젤라 소리가 항공기 이착륙 수준의 120dB 이상의 소음을 유발한다는 얘기를 듣고 남아공에 가기 전에 조금은 겁이 났습니다. '군대에서 사격하고 나면 귀 때문에 하루정도 좀 고생했는데...이러다 귀 먹는거 아냐' 하고 말이지요. 그래서 국내에서 잘 나가는 귀마개를 장만하고, 경기를 관전할 때는 귀마개를 끼고 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안 그래도 치안 때문에 걱정이 많은데 경기 보다가 건강 잃는 건 아닐까 하는 온갖 생각을 다 하면서 남아공으로 떠났습니다.

장시간 비행을 하고 남아공의 관문인 요하네스버그 O.R 탐보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부부젤라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남아공 현지인들이 공항에서 파는 부부젤라를 입에 물고 '부~부~' 대면서 곳곳에서 '환영 인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꽤 이른 시간(오전 7시)이었음에도 일찌감치 공항에 나와 부부젤라를 부는 사람들을 보며, '의외로 남아공 사람들이 참 부지런하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그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확 달아나면서 '순탄한 여정이 이어지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남아공 사람들의 부부젤라 사랑은 '역시나' 유별났습니다. 첫날 요하네스버그와 프리토리아를 돌아다니면서 부부젤라를 팔고, 또 부부젤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날 남아공 대표팀의 경기가 있어서 흥을 북돋기 위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붉은 티셔츠를 이른 아침부터 입고 다니는 것처럼 부부젤라를 들고 다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오히려 월드컵으로 자국을 찾는 사람들을 환영하기 위해 들고 다니다가 부는 '월드컵식 독특한 인사용'으로 부부젤라를 활용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부부젤라를 부는 남아공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들. 부는 요령이 조금 어렵지만 이곳은 어린 아이(3번째 사진)도 쉽게 불 만큼 부부젤라와 친근해져 있다.
현재 부부젤라는 남아공 현지에서 개당 32랜드(약 4800원)에서 200랜드(약 3만원)까지 크기, 장식물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남아공 시중에 유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아공 사람들이 워낙 좋아하고,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지면서 남아공을 찾는 세계인들이 한꺼번에 구매해 가는 등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습니다. 우리가 봐왔던 나팔 모양의 부부젤라 뿐 아니라 소라 형태의 조그마한 것부터 긴 파이프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부부젤라까지 아주 다양한 종류들이 있었던 것은 참 놀랍기만 했습니다. 어쨌든 부부젤라는 '월드컵 특수'를 계기로 지난 2001년 붐이 일어난 이후, 최고 수준의 인기 응원 도구이자 악기로 자리매김한 듯 보였습니다.

옥외 광고에도 부부젤라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남아공월드컵 뿐 아니라 남아공을 대표하는 상징이라는 얘기다.
부부젤라는 아주 단순한 구조로 돼 있지만 부는 방법은 조금 어렵습니다. 그냥 분다면 '쉰소리'가 나면서 부부젤라의 '참소리'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입술 위아래에 힘을 주고 바람이 가늘고 세게 빠져나가도록 조절하며 힘차게 불어야 진정한 부부젤라 특유의 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처음 불어서 조금 어려움을 느꼈던 한국인들과 다르게 그들은 자유자재로 흑인 특유의 리듬을 타고 부부젤라를 불어대면서 적응이 덜 된 한국인들을 당황스럽게 했습니다. 그들 특유의 방식이라 하지만 역시 처음 접했을 때는 '뭐 이런 게 다 있어'하고 짜증을 유발했을 만큼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독특한 큰 소리와 리듬감을 타면 악기 역할을 하는 부부젤라의 '매력'을 느끼게 되고, 남아공에 있으면서 남아공인들만의 문화를 접해보는 것에 호기심을 느끼면서 일행들은 부부젤라를 구매해 직접 불어보고 친숙해지려 노력했습니다. 그 덕분이었는지 부부젤라를 이해할 수 있게 됐고, 나중에는 그 매력에 흠뻑 빠져 친구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다량으로 구입한 분들도 제법 볼 수 있었습니다. 부부젤라를 사지 못한 사람들은 구매한 사람에게 다가가 발을 동동 굴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경기장에서 응원을 펼칠 때는 부부젤라 소리에 익숙해지지 못했습니다. 큰 함성 소리가 가득해야 할 경기장에 부부젤라 소리가 가득해 마음껏 목청껏 소리를 지르지 못했던 것이 아쉽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TV로만 보던 부부젤라 소리와 실제 경기장에서 들은 소리가 다른 점이 있었다면 경기장 자체가 위가 트여져 있어 소리가 퍼져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경기에 집중하고 우리 선수들의 선전을 위해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관전하다보니 어느새 부부젤라 소리가 맨 처음 접했을 때만큼 크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경기장에서 남아공 사람들 뿐 아니라 아르헨티나 팬들도 부부젤라를 들고 불어대면서 골에 대한 기쁨도 만끽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모습들을 보면서 이제는 '세계 공용 응원 도구'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져봤습니다. 남아공인들의 유별난 사랑이 만국 공통으로 퍼졌다는 얘깁니다.

한국-아르헨티나 경기가 열렸을 당시 곤살로 이과인이 해트트릭을 기록하자 일제히 부부젤라를 불며 환호하는 남아공 축구팬들
찬반 여론은 여전히 엇갈리고 있지만 남아공 월드컵 하면 쉽게 떠오르는 아이콘이 된 부부젤라. 이해하기 힘든 면이 많겠지만 암울한 시기를 극복하고 강국으로 거듭나고 싶어 하는 남아공 인들의 희망, 꿈이 담겨있다는 면에서 부부젤라를 쉽게 거부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적어도 부부젤라가 어떤 매력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남아공에 있으면서 느끼고 와서 직접 구매한 부부젤라를 볼 때마다 그 때 느꼈던 것, 그리고 남아공 사람들이 부는 모습을 보고 경험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추억하고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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