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동 새 KBS사장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식장을 장식한 주제가 참 인상적이더군요. “당신이 주신 봄, 꽃 피우겠습니다.” 스스로를 시민이 선출한 최초의 사장으로 규정하면서, 당신은 KBS 새봄의 시작을 그렇게 약속했습니다. 평소의 온화한 인품, 차분한 언사와 잘 어울리는 메시지입니다. 겸손과 각오가 느껴집니다. 다시 세월호의 시간을 맞이하면서, 누구보다 처절하게 후회하고 철저하게 다졌을 마음가짐, 부담감이 진하게 전해집니다. 취임식에 함께 한 KBS 구성원들도 같은 심정이었겠죠?

‘시청자광장’으로 이름이 바뀐 민주광장에서 최초로 취임식을 가지셨다고요. 노동조합과 직능단체 대표들은 물론이고, 시민자문단 참여자도 함께 했더군요. 좋은 선택입니다. 사실, 오랫동안, ‘시청자’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서도 막상 주권자 시민을 매몰차게 내쫒던 냉정과 기만의 광장이었습니다. 그 불쾌한 시민 배제의 시설에 나는, MBC의 위압적인 건물과 마찬가지로, 10년 동안 출입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애당초, 여론을 전하고 민의를 대의코자 한 시민의 출입이 허용되지도 않았지만 말입니다.

대신, 우리는 자주 본관 앞 계단에 서 고함을 외치고 인도에 나앉아 시위를 했어야 했지요. 가끔은 길게 건물을 빙 둘러싼 채 인간 띠도 맺었습니다. 새로운 봄을 반드시 우리 손으로 맞이하겠다. 대낮이건 어둠 속이건 상관없이, 눈을 치켜든 채 결기 다지던 장면들이 새록새록 눈앞에 떠오릅니다. 그런 폐쇄의 광장을 활짝 열어젖혀주어 감사합니다. 새로운 생명을 가능케 한 촛불혁명의 명령을 쫒아, KBS를 반드시 민주정치의 공론채널로 되돌려놓겠다는 참석자들의 결연한 눈빛에 따라서 울컥하게 됩니다.

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양승동 사장 취임식에서 양 사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모든 게 잘 되었습니다. 기대가 큽니다. 성원을 보냅니다. 그러면서, 취임하고 바쁠 사장께 당부할 게 꼭 하나 있습니다. 내부 적폐체제를 청산하고 기득권 조직구조를 해체하며 공익적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등의 일은, 약속한 것처럼 알아서 하십시오. 국가와 자본 권력으로부터 독립하고, 편성과 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공약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혹시나 빠트리거나 소홀히 하지 않을까 해서, 자칫 나중으로 미루지는 않을까 싶어, 다음의 부탁을 특별히 하게 됩니다.

KBS시청자위원회 이야기입니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허수아비로 전락한 이 위원회를 바닥에서부터 쇄신하고 재건축하는 공사를 당장 시작해 주십시오. 시청자위원회를 단순한 민의대변과 의견청취의 기구를 넘어,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대화·협의의 채널, 이사회보다도 더 높은 권위와 신뢰를 갖춘 실질적 시민 대의의 위원회로 리-셋 해주길 부탁합니다. ‘국민’을 말로만 섬기고 시청자를 형식으로만 대하던 시대는 끝내라고 촛불이 명령했습니다. 그에 승복해, 시청자위원회를 제대로 만들어내는 그런 시민의 사장이 되어 주길 요청합니다.

‘우리’가 제대로 만들어 ‘국민’의 품으로 되돌려 주겠다! ‘당신’이 주신 봄, ‘우리’가 꽃 피우겠다? 감사한 이야기지만, 그 걸로는 아직 부족합니다. 한걸음 더 래디컬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촛불혁명이 연 KBS의 봄, 촛불시민과 함께 꽃 피우는 게 정답입니다. 시청자-주권자들이 권력을 갖고 KBS 규제·감시의 역을 맡는, 촛불시민이 개혁의 과정을 KBS 안에서 주인의 자격으로서 지켜보고 평가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구현하는 게 시급합니다. 그게 시청자를 진심으로 섬기는 공영방송 정상화의 길입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KBS는 국가와 자본이라는 권력을 더 이상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사실의 취재와 진실의 뉴스로서, 저 두 권력을 단단히 감시하고 제어해야 합니다. 그러라는 게 촛불의 명령이었습니다. 반대로, 딱 하나 두려워 할 권력이 있습니다. 바로 시청자·시민 권력입니다. 공영방송의 주권이지요. 그걸 가까이에서 실감하고 의식토록 하는 시청자위원회를 명실상부 시민의 주권기구로 쇄신하고 재구성해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게 맞습니다. 그게 시민이 뽑은 사장으로서 서두를 실천 과제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랍니다.

양승동 사장님, 2008년 사원행동 공동대표 시절을 기억하시겠죠. 민의 대의의 서비스가 좌절된 곳에서 시민의 직접 행동이 시작된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좌절 다시없도록, 그때보다 더 단단한 새 사장과 새 사원들 그리고 새 시청자들의 행동결사가 필요합니다. 당장 시청자위원회를 정상화시켜내세요. 지금처럼 계속 무력하게 방치하면 안 됩니다. 시청자 주권을 복원하면 공영방송의 힘도 따라서 강화됩니다. 그게 순리입니다. 세월호 기억의 시간을 다시 맞으면서, 새로워진 KBS가 펼칠 봄날 희망의 행동들이 무척 궁금하고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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