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사건은 요즘 한국사회의 화두가 된 미투 운동의 본질이자 어쩌면 최종적 문제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시민들의 뜻이 모여 23만 명을 넘었고, 청와대가 대답하기 전에 먼저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볼 것을 결정했다. 소수의 아우성에 불과하던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마침내 현실을 바꾸게 된 것이다.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 사건을 재조사한다고 한 것은 일단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우려도 없지 않다. 우선, 장자연 사건의 공소시효는 대부분 지났다. 장자연 씨 사망 후 9년이 지났고, 대부분의 성폭력 관련 법들의 공소시효는 5년과 7년 등으로 짧은 편이어서 재수사된다고 하더라도 피의자들을 처벌할 수는 없다. JTBC 펙트체크에 의하면 공소시효가 10년인 강제 추행과 성매매 알선 등의 법이 적용돼 아직 부분적으로 처벌의 가능성이 남아있는 정도다.

국민청원 20만 돌파 …'장자연 사건' 진실 밝혀지나 (MBC 뉴스데스크 보도 화면 갈무리)

그렇지만 진짜 우려가 되는 점은 공소시효의 유무가 아닐 수 있다. 검찰이 과연 이 사건을 한 점의 의혹도 남기지 않고 해결해낼 의지가 있느냐는 의심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건의 진실을 말해줄 피해자가 생존해 있지 않다. 똑 부러지는 의지가 아니라면 이런저런 핑계로 과거와 다름없는 결론 뒤에 숨기 딱 좋은 조건이라는 것이다.

장자연 사건 이전에 검찰에게는 현직 검사의 성폭력 사건의 해결이 큰 숙제로 주어져 있다. 몇 달 전 거창하게 조사단까지 꾸려 출발했으나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셀프조사 논란까지 일었던 검찰의 자체진상조사단의 한계라는 지적이 무리가 아닌 상황이다. 그러면서도 20일 경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한다는 말이 돌고 있다.

급기야 검찰의 권인숙 법무부 성범죄 대책위원장이 검찰의 성추행조사단장인 조희진 검사장에 대해서 우려를 표명하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검찰의 조사결과에 전적인 신뢰를 보낼 수 없다는 의미인 것이다. 미투 운동이 한창인 상황에서도 검찰의 자정 의지는 그리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크다.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언론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 앞에서‘장자연리스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9년이나 지난 장자연 사건을 재수사해달라는 청원에 담긴 더 깊은 의미를 재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장자연 사건을 재수사하라는 의미는 단지 당시 장자연 리스트에 나오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만이 아닐 것이다.

재수사의 대상은 직접적으로는 장자연 씨에 대한 가해자들을 벌을 주라는 요구이겠지만 그 저변에는 그 가해자들을 결과적으로는 허술한 수사로 사건을 덮어버린 당시의 수사체계에 대한 꾸짖음이 더 클 수도 있다. 그것이 어디 장자연 사건만 그렇겠는가.

서지현 검사 성폭력 피해사건이 거창하게 진상조사단까지 꾸려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진상이 가려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자연스레 장자연 사건 재조사에도 같은 의심을 갖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정말 검찰을 믿어도 될지 걱정 반 의심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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