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이 제주 4·3사건에 대해 '좌익 폭동'이라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시 제주 인구의 1/10에 달하는 3만 여명의 양민이 학살된 사건을 '색깔론'으로 몰아가는 행태다.

3일자 조선일보는 <南勞當 폭동 떠받드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칼럼에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알리기 위해 설립된 이 박물관이 대한민국 정부 탄생을 훼방 놓는 남로당 무장폭동을 떠받드는 이 자기모순을 어떻게 봐야할까"라고 말했다.

▲3일자 조선일보 태평로 칼럼.

조선일보는 "노무현 정부는 2003년 4·3사건을 재조사해서 보고서를 내고, 대통령이 공식 사과까지 했다"면서 "보고서는 4·3사건을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했다. 정당성 있는 두 세력이 힘겨루기 하다 제3의 희생자를 낳은 것 같은 설명"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4·3폭동을 이끈 남로당 제주도당책 김달삼은 그해 8월 월북해 해주 인민대표자 대회에서 4·3을 '무장 구국항쟁'으로 소개하며 '북조선 민주개혁을 남조선에서 실시하도록 용감히 싸우자'고 연설했다"면서 "4·3폭동의 목표가 '인민공화국' 수립에 있다는 걸 고백한 셈"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이번 특별전 제목은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이다. 남로당 중심의 '4·3사관'을 대한민국 국민에게 주입시키겠다는 건가"라면서 "무엇보다 4·3 피해자인 제주도민들이 '무장봉기'한 전사, '구국항쟁'에 뛰어든 투사로 기억되길 원할까. '폭동' '사건'을 넘어 '봉기' '항쟁'으로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4·3' 앞에 현기증이 난다"고 비난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조선일보와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3일 오전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 참석에 앞서 홍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건국 과정에서 김달삼을 중심으로 한 남로당 좌익 폭동에 희생된 제주 양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행사"라면서 숱한 우여곡절 끝에 건국한 자유대한민국이 체제 위기에 와 있다. 깨어 있는 국민이 하나가 돼 자유대한민국을 지켜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와 홍준표 대표의 이러한 발언은 '색깔론' 불지피기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는 4·3사건을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인식의 부재란 지적이다. 이 사건이 남로당의 무장 봉기가 발단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4·3사건은 단순히 특정 일자의 사건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1998년 11월 23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원래 시작은 공산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지만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다"면서 "이 문제는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유가족들을 위로해줘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제주 4·3 특별법) 제2조는 제주 4·3사건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건의 과정에서 무장세력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의 토벌대에 의해 자행된 학살도 확인됐다.

따라서 약 7년여에 걸쳐 벌어진 사건의 과정에서 희생된 희생자들과 유족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가 됐다. 2000년 제주 4·3 특별법 역시 이런 취지에서 만들어졌고, 참여정부의 진상조사도 이 같은 필요성에 의해 진행됐다.

▲3일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실제로 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희생자, 유족들의 아픔을 달래는 데 집중했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4·3의 통한과 고통, 진실을 알려온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제주도민들께 대통령으로서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념이란 것을 알지 못해도 도둑 없고, 거지 없고, 대문도 없이 함께 행복할 수 있었던 죄 없는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을 당했다"면서 "2000년, 김대중 정부는 4·3진상규명특별법을 제정하고 4·3위원회를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4·3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위령제에 참석해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께 사과했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저는 오늘 그 토대 위에서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면서 "더 이상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직도 4·3의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낡은 이념의 굴절된 눈으로 4·3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대한민국엔 낡은 이념이 만들어낸 증오와 적대의 언어가 넘쳐난다"면서 "불행한 역사를 직시하는 것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만 필요한 일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도 4·3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낡은 이념의 틀에 생각을 가두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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