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유승민 공동대표가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과 일부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단일화를 암시하는 발언을 하자, 안철수 전 의원과 박주선 공동대표는 "단일화는 없다"며 수습에 나섰다. 바른미래당의 지방선거 스텝이 꼬이고 있다.

지난달 29일 유승민 대표는 6·13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과의 선거연대 문제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유 대표는 대구 방문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당과 연대한다면 당내 의원들의 아주 격한 반대가 충분히 예상된다"면서도 "국민적인 오해만 극복하면 부분적으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본다"고 말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연합뉴스)

유승민 대표는 "묵시적으로 한다고 똑똑한 국민들이 그걸 모르겠느냐"면서 "이런 것이 야합으로 보일지 아니면 문재인 정부 견제를 위한 야권의 연대·협력으로 봐주실지, 조금 열려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유 대표는 "몇 가지 장애물을 넘어야 할 게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서 결론적으로 그걸 하겠다고 말은 못드리지만 제 마음은 원희룡이나 안철수를 생각하면 열려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유승민 대표의 이러한 발언은 서울과 제주 등 유력 주자들이 있는 광역자치단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바른미래당은 서울시장 출마를 결심한 안철수 전 의원과 원희룡 제주지사라는 카드를 손에 쥐고 있다.

그러나 원희룡 지사의 경우 제주에서 무소속 출마를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각각 후보를 낼 경우 표가 갈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원 지사는 바른미래당 탈당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 지사는 제주 4·3 사건 추모 행사를 치른 후 향후 거취를 제주도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유승민 대표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원 지사의 탈당을 막아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실제로 유승민 대표의 발언이 원희룡 지사를 의식한 발언이라는 건 지난달 30일 최고위원회의 발언에서도 잘 나타난다. 유 대표는 "어제 제가 그런 발언을 했던 배경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우리 바른미래당의 유일한 현역도지사인 원희룡 제주지사가 그동안 일관되게 여러 번 이번 선거를 제주도에서 1대1 구도를 희망해왔다"고 밝혔다.

유승민 대표의 발언에 지난 1일 안철수 전 의원은 "자유한국당은 경쟁하고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라고 일축했다. 지난달 3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주선 대표도 "한국당과 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게 당론"이라면서 "어제 유 대표의 한국당 언급 내용이 언론에서 과잉 보도됐다"고 언론에 책임을 돌렸다.

▲지난 1월 15일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왼쪽·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제주도청을 방문해 원희룡 제주지사를 만났다. (연합뉴스)

원희룡 지사는 자신이 민주당과 1대1 구도를 원했다는 유승민 대표의 발언에 대해 "제가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에서 어떤 후보를 어떻게 해야 된다고 얘기한 적도 없고 실제로 그렇게 되리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면서 "(유 대표의 발언은) 전혀 아니다. 저는 이번 선거에서 어떤 상황에서라도 도민과 국민의 심판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현재 정치지형을 살펴보면 후보 단일화 없이 민주당과 경쟁을 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다만 명분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필수적인데 유승민 대표의 발언이 지나치게 이른 시점에 나왔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선거사에서는 선거 막판에 여론의 힘에 따라 단일화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유 대표도 이를 몰랐을 리가 없다. 결국 유 대표의 이른 시점에서의 단일화 발언은 원희룡 지사의 탈당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구석이 많다.

문제는 유승민 대표의 발언이 바른미래당에 독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의 경우 소선거구제의 형태로 치러지기 때문에 선거가 다가올 수록 당선 가능성이 높은 정당의 후보에게 표심이 몰리게 된다. 따라서 단일화 협상이 물꼬를 트더라도 당세가 약한 바른미래당이 자유한국당에 제안하는 형식이 돼서는 자칫 '흡수'되는 모양새를 보일 수 있다. 유 대표의 조급함이 민주당 대 한국당이란 거대양당 중심의 지방선거 구도 공고화에 '한 삽' 공헌한 셈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선거구도가 민주당 대 한국당 구도로 흘러가고 있는데,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하기도 전에 유승민 대표가 단일화 메시지를 내보낸 것은 위험한 면이 있다"면서 "유권자 입장에서 단일화 할 것 같다고 하면 힘이 큰 데로 표심이 쏠리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엄 소장은 "원희룡 지사가 탈당을 하지 않을 명분을 주기 위해 내보낸 메시지가 전략적 약점을 드러내보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엄경영 소장은 "안철수 전 대표는 지난 2012년 문재인 대통령과 단일화에 대한 실패 경험이 있고, 박주선 대표는 호남과 바른미래당 내부 진보성향을 대표하는 의원으로서 단일화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면서 "당연히 유승민 대표에게 제동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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