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미래발전위원회가 공영방송 이사회에 중립지대 이사 1/3 이상을 추천·임명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내놨다. 시민사회는 새로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에 일부 동의하면서도 정치를 방송에서 완전히 배제시키는 방법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29일 방송미래발전위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및 제작 자율성 제고를 위한 방송미래발전위원회 정책제안 발표·토론회>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준비해온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놨다. 현행 공영방송에서 발생하고 있는 정치적 후견주의 행태를 막기 위해 1/3 이상의 중립지대 이사를 임명하는 방안이다.

▲29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및 제작 자율성 제고를 위한 방송미래발전위원회 정책제안 발표·토론회>. ⓒ미디어스

중립지대 이사를 국회나 방통위가 학술·직능·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로부터 정원 이상의 후보를 추천받아 합의를 통해 선정한다는 게 방송미래발전위의 제안이다. 여기서 선정된 이사가 문제가 있을 경우 거부권을 행사하는 방안도 마련됐다.

이날 발제를 맡은 이준웅 교수는 "국회가 임명권을 행사하든, 방통위가 임명권을 행사하든 중립지대 이사 구성에 있어 상호견제가 되면 대세에 큰 차이가 없을 거라는 게 요점"이라면서 "이렇게 되면 중립지대 이사진을 제외한 나머지 이사들이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토론자로 나선 언론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아이디어의 참신성에 주목하면서도 정치권에서 완전히 배제되지 못한 제안이라고 지적했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국민참여형 이사회 구성을 강조해온 사람으로서 언급한 걸 다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정치적으로 균형을 잡는 제안 자체로는 참신한 지점이 있다"면서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해 공영방송에 다양한 시민이 참여해야 하다"고 말했다.

강혜란 공동대표는 "중립지대 이사의 영역이야 말로 국민 참여 형태로 다양한 시민이 개입할 수 있는 영역으로 남겨두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드린다"면서 "여러 장치를 통해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구성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대식 KBS대외협력실 박사는 "과연 중립지대가 확보될 수 있느냐"며 회의적인 입장을 내놨다. 김 박사는 "완충지대를 구상하신 것 같은데 그러면 학술·직능·시민단체는 누가 구성하느냐. 제가 볼 때 아마 방통위나 국회가 할 것"이라면서 "국회와 방통위가 법적으로 다른 조직이긴 하지만 실제로 정당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김대식 박사는 "방통위의 의사결정 과정만 봐도 그렇고, 여기서 임명한 KBS 이사회가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면서 "그동안 경험한 바에 따르면 멀쩡한 학술단체 대표도 공영방송 이사회에 가면 이상한 행태를 보여주는 게 현실이다. 협의체 역시 정파성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너무 보수적으로 미래발전방안을 마련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원론적 질문은 방통위든 국회든 중립지대를 추천할 때 협의체로부터 후보를 추천 받아서 합의로 한다고 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합의선출이 가능하다면 왜 1/3인지 궁금하다"면서 "전체 이사를 이렇게 뽑으면 안 되는 건지, 안 된다면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김동찬 사무처장은 "정치적 후견주의 배제를 모토로 하면서 국회의 직간접적인 추천권을 부여하는 게 타당한가"라면서 "올 하반기에 3사 이사를 모두 교체하는데 정당 추천을 배제하고 정부여당이 최고령자를 선택해서 사실상 이사장을 지명하는 위법적 관행을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유정 MBC편성국 전문위원은 "중립지대 이사진이란 아이디어가 좋다는 생각을 했다"면서도 "전문성에 대한 요건으로 봤을 때 중립지대에만 국한시켜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권한분산 상호견제 장치가 있다고 했는데, 우리의 또 다른 현실이 무시된다"면서 "방통위원 자체가 정당과 대통령에 종속돼 있는 것 아니냐. 그 현실을 무시하고 방통위와 국회가 나눠서 하니까 분산된다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은 "언젠가부터 이사회가 누가 되는지에 따라 공영방송 사장이 왔다갔다 했다"면서 "우리나라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입법부의 구조가 반영된 입법부 모델"이라고 지적했다. 김 국장은 "결국 입법부 모델이냐 행정부 모델이냐인데, 계속 입법부 모델에 방점을 둬왔다"면서 "다시 정파성 논란이 나오는 동어반복"이라고 지적했다.

김동원 국장은 "그런 문제가 입법부 모델이 갖는 한계가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이사회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안이라고 한다면, 시민단체가 얘기한 것처럼 행정부 모델로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지금도 지배구조 모델이 국회 통과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면서 "그만큼 지배구조 논의조차 국회 종속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자들의 반박에 이준웅 교수는 "정치적 반영의 문제에서 정치적 이해관계를 반영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면서 "독일의 방송평의회는 이게 반영돼서 정치인들이 직접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정치적 이해관계, 지역의 이해관계, 계층의 관계도 정당이 그런 일 하라고 만들어 놓은 거니까, 나누는 것"이라면서 "우리가 제안한 제도는 중립지대라는 아이디어를 만들어서 최소한 지금까지 했던 100% 정치화는 막을 수 있는 명분적 댐을 만드는 진전을 이루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준웅 교수는 "나쁜 정치에 억눌려서 거기에 대한 패배주의가 있다. 정치인들이 너무 교활해서 나쁜 짓을 할 거고 공영방송을 고민하는 사람은 결국 놀아날 것이란 전제가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저도 국회 불신이 있지만, 국회를 우리가 없앨 수는 없다. 게다가 국회는 유일하게 국민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기관"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에 반해 시민단체, 직능단체 등은 국민의 주권이 반영되는 단체는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준웅 교수는 "국회의 개입 등을 통제할지언정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첫 번째 전제"라면서 "그렇게 생각하면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우리가 제시한 안들이 논의해볼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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