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갤럽이 27일 ‘한국인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 순위를 발표했다. <무한도전>이 1위 자리를 탈환한 것이 놀라우면서도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아마도 <무한도전>은 종영 후에도 한참 동안은 1위 자리를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그만큼 재미와 의미를 균형감 있게 전달한, 그야말로 ‘국민예능’인 때문이다.

그런 무도의 건재함 말고 이번 갤럽조사에서 크게 눈에 띈 사실이 있었다. <썰전>의 건재와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의 최초 진입이었다. 갤럽조사 결과를 보면, 여전히 한국인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은 예능과 드라마들의 각축장이었다. 그래서 당당히 3위에 오른 <썰전>과 12위로 처음 진입한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의 존재감이 더욱 커 보인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한국 갤럽 2017년 3월 27일 발표)

<썰전>은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있으니 그렇다 하더라도 유시민 작가에게 다른 직업을 알선해주겠다던 김어준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아직 시청률에서 많이 부족한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인기 프로그램에 진입했다는 점은 놀라운 사실이었다. 호사가들에게는 <썰전>과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의 각축이 흥밋거리겠지만 사실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예능과 드라마가 장악한 프로그램들의 전쟁에 진입했다는 것은 두 가지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김어준은 절대로 ‘한 팟캐스트 진행자’ 정도의 존재감이 아니라는 새삼스러운 증명이다. 사실 그런 의미를 굳이 말하는 것이 부끄럽고 남사스러울 정도로 언론인 김어준의 의미는 크다.

JTBC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가 ‘앵커브리핑’을 통해 김어준을 ‘한 팟캐스트 진행자’라는 지칭해 논란이 됐었다.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었을 때 MBC <뉴스데스크>는 <뉴스룸>과 마찬가지로 직접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김어준 등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의혹을 끈질기게 추적해온 사람들의 공로를 밝히는 의미 있는 클로징멘트를 내놓기도 했다.

그것이 김어준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낮은 시청률에도 ‘한국인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에 당당히 진입한 것 역시 많은 시민들이 그런 부분에 공감한다는 의미이며, 기대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김어준의 인기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것이다.

SBS 시사프로그램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그리고 두 번째는 시민들의 정치에 관한 관심이 여전하다는 청신호의 의미이다. 이명박근혜 9년 동안 TV는 온전히 오락에만 천착했었다. 바보상자에 매달려 시민들의 의식이 잠들어있기를 바란 부정한 권력자들의 부질없는 꿈이었다. 그렇지만 바보상자가 된 TV가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MBC와 KBS, 두 공영방송이 정상화의 궤도에 오르면서 덩달아 민영방송 SBS도 공정성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그래서 불과 1년 전에는 JTBC <뉴스룸> 밖에는 뉴스 선택권이 없었으나 지금은 공중파 어떤 뉴스를 봐도 좋다는 말들이 회자하고 있다. 그 역시도 깨어있는 시민들의 끊임없는 감시와 참여로 일군 성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최근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물론이고 다른 탐사 프로그램들에 대한 관심으로 매우 높다. 아직은 정치의 계절인 것이다. 다음 달 혹은 그 다음 달에는 또 다른 시사프로그램이 갤럽조사에 진입할 수도 있다. 그럴 정도로 요즘 TV프로그램은 볼만해졌다. 바보상자로 전락했던 TV가 이렇게 바뀔 수 있었던 것은 방송사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시민의 요구수준이 달라졌다는 의미다. 희망을 더 가져도 좋다는 의미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