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고 안타깝고 억울한 경기였습니다.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였고 상대방을 압도하며 밀어붙인 시간이 훨씬 더 많았기에, 그리고 초반의 느닷없는 실점을 극적으로 만회하며 따라 붙은 경기였기에 더더욱 뼈아프고 괴로운 패배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가 원망스럽다거나 짜증이 난다거나 화가 나는 경기 역시도 아니었습니다. 골대를 맞는 불운과 심판의 몇몇 안타까운 판정이 만든, 하지만 대표 선수들의 투혼이 빛이 났던 눈부신 패배, 납득이 가는 경기를 보여준 그들의 이번 남아공 월드컵 도전은 아낌없는 박수와 격려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몇몇 실수들이나 아쉬운 활약을 이유로 특정 선수를 비난하거나 경기 내용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무나 잔인한 손가락질입니다. 누구보다도 이 경기를 이기고 위로 올라가고 싶었던 사람들은 남아공의 질 낮은 잔디와 싸우고, 짧은 간격의 격렬한 경기들을 소화하고, 익숙하지 않은 공기와 물을 견뎌가며 90분의 시간을 온몸으로 불태운 그라운드 위의 선수들이었을 테니까요. 누군가에겐 마지막 월드컵이었을 것이고 4년 뒤에도 다시 기회가 쥐어질지 모르는 이들에게 한 경기 한 경기의 간절함을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강렬했을 테니까요.

그러니 열전을 마치고 아직 그 흥분과 아쉬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친 우리의 선수들에게 향해야 할 것은 벌써부터 철없는 몇몇 이들이 부끄럽게 각종 게시판에 남기고 있는 것처럼 너의 실수가 8강을 망쳤다거나,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모진 채찍이 아니라 4년 만에 돌아오는 이 즐겁고 유쾌한 축제의 모든 과정을 즐길 수 있게 해준 우리의 영웅들을 향한 감사와 고마움일 것입니다. 승리와 마찬가지도 패배 역시도 축구의 일부분. 이런 아픔을 감내할 줄 알아야 승리의 기쁨을 더 크게 누릴 수 있는 법이잖아요?

그래도 여전히 패배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이 사라지지 않으신가요? 선수들이 원망스럽고 경기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장대비가 몰아치던 흠뻑 젖은 그라운드를 심장이 터질 정도로 뛰어 다니다가 종료 휘슬과 함께 쓰러져 숨을 헐떡이던 우리의 로봇 두리, 마치 방전된 로봇처럼 한동안 자리에서 숨 가쁘게 호흡을 고르며 일어나지 못했던 차두리 선수의 쓰러져 누운 장면을, 그리고 아쉬운 패배에 그토록 서럽게 울던 그의 모습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그것만큼 적절한 대답은 없을 테니까요.

그 체력이 좋다는, 피지컬 하나만은 세계 어디에 두어도 뒤지지 않는다는 그가 경기가 끝나자마자 쓰러져 버릴 정도로 월드컵의 16강은, 비 오는 그라운드에서의 90분간의 혈투는 힘겨운 것이었고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런 혼신의 힘을 다했던 그가 원했던 것도 지켜보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승리였고 8강, 또는 그 이상으로 비상하는 것이었습니다. 차두리 뿐이었을까요? 정성룡 골키퍼를 위로해주던 대인배 이운재의 위로, 아쉬움에 일어나지 못하는 이청용의 아쉬움처럼 경기를 뛰었던 선수들 모두, 아니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더라도 벤치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던 이들 모두 같은 심정, 같은 힘겨움을 공유했을 겁니다. 이들은 정말, 그야말로 최선을 다했어요.

그토록 열심을 다한 선수들이 쓰라린 패배 직후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해야 했던 잔혹한 SBS의 인터뷰에도 늘 빠뜨리지 않았던 것은 응원해준 고국의 팬들에 대한 송구하고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아니요. 그들이 미안해할 것은 전혀 없습니다. 방전된 로봇 두리의 눈물이 그들의 열심을, 노력을, 투혼을 모두 설명해 주었으니까요. 열렬히 16강을 응원하고 매 경기에 마음을 졸여가며 밤잠을 설친 우리가 이제 해야 할 것은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격려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비방과 인신공격, 패배의 원인을 찾는 일은 그들의 눈부신 노력, 그리고 그들의 열정을 응원했던 우리 자신을 더럽히는 일일 뿐이에요. 아쉬움에 잠을 이루기 어려운 새벽이지만 이런 충실함과 고마움의 마음마저 부인하며 손가락질할 대상만 찾는다면 우린 너무 매정하고 가혹한 팬일거에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덕분에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우리의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향해야 할 우리의 마음은 이런 것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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