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조간 1면은 김정은 방중론으로 뒤덮였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1호열차’로 불리는 전용열차를 타고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등 중국 공산당 수뇌부를 만나 회담을 했다는 것이다.

애초에는 북한과 중국이 관련 정보를 일체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1호열차’가 움직였다는 사실만 확인됐기 때문에 우리 언론은 김여정 방중설 등을 함께 거론해야 했다. 그러나 27일 한겨레와 조선일보가 관계자를 통해 확인한 바 김정은 방중이 유력하다고 보도하면서 국내 여론은 다소 충격을 받았다. 이후 28일 북한과 중국의 관영매체가 각기 김정은과 리설주의 방중 사실을 보도하면서 김정은 방중설은 최종적으로 사실로 확인됐다.

악수하고 있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신화통신)

그간 북중관계는 김정은의 등장 이후 ‘최악’으로 규정할 만큼 얼어붙은 상태였다. 특히 김정은이 장성택과 김정남을 숙청해 중국의 개입통로를 차단하면서 이런 상황은 장기화될 것으로 예측됐다. 이런 시점에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의 의도는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첫째는 미국의 최근 행보를 볼 때 북미대화의 성과를 장담할 수 없어 ‘보험’을 들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을 국무장관 후보자로 내정한 데 이어 ‘네오콘’의 대표적 인물로 불리는 존 볼턴 전 유엔 대사를 백악관 NSC 보좌관으로 내정했다. 그야말로 ‘초강경파’ 일색의 진용을 갖춘 것이다.

물론 ‘초강경파’들이 전면에 나섰다고 해서 북미대화의 무조건 실패를 예고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북미 간의 협상 국면에서 북한이 원하는 방식대로의 문제 해결을 장담할 수는 없게 됐다. 그런 상황이니 만큼 북한으로서는 협상에서 우위를 갖기 위한 추가 레버리지를 확보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 그렇게 활용할 수 있는 소재는 북중관계가 유일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북미대화의 결과가 동아시아 질서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중국과의 협의가 필수불가결 했을 거라는 전망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한국과 북한, 미국 3자가 북핵문제 해결을 사실상 달성할 경우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동아시아 질서가 재편될 가능성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최근 언론을 통해 재조명된 과거 김정일의 발언 등이 보여주는 바가 그렇다. 김정일은 과거 남북대화 국면에서 문제적 상황이 해소되더라도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통해 중국을 제어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중국 입장에선 바로 턱밑까지 미국의 영향력을 용인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문제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해선 북중 간의 합의가 필수인 것이다.

셋째는 북한이 북미대화의 실패를 기정사실화하고 중국과의 ‘직거래’를 통해 대북제재 완화를 모색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는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국면을 사실상 원위치 시키자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현재 미군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포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대륙간탄도미사일이나 핵무기 실험을 반복하는 것도 달갑지 않다. 중국이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것은 어쨌든 ‘한반도 비핵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중국이라도 사실상 북한의 미국을 위협하는 형태의 추가 군사도발을 용인하는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는 점에서 북미대화의 실패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나 한다.

중국 입장에서도 현재 상황에선 북한과의 접촉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앞서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개입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무역불균형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의 파워게임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북핵문제를 지렛대로 삼을 필요성을 느끼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최근 중국 제품에 대한 600억 달러 규모의 관세 부과와 투자 제한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에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을 ‘직격’할 수 있는 돼지고기 등의 품목을 중심으로 보복관세 부과를 시사했다. 미국은 중국의 아픈 대목인 ‘지적재산권’ 등의 문제를 거론하며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언론은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대규모 미 국채가 마지막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런 상황은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세스가 ‘고차방정식’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는 어차피 예고됐던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도 27일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종 간 관계개선이 이뤄지는 것은 긍정적 신호”라고 했다. 대북문제 전문가들 역시 북미대화 국면 이후 6자회담 등 다자간 논의틀의 재건이 불가피하다고들 봤다. 북중관계 개선은 시기의 문제였을 뿐 예상 범위 내였다는 것이다.

기념촬영하는 북중 정상 부부. (연합뉴스/CCTV)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북미관계 개선의 과정에서 중국이 등장하는 것보다는 우려가 더 커졌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최근 미국은 러시아 외교관 60명을 추방하는 등 대러강경책을 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재선을 축하하는 등 러시아에 친화적인 태도를 취해온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결정은 영국 영토에서의 이중스파이 암살 사건의 연장선에서 이뤄진 것이지만 결국 대외정책의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영역에서의 미국 러시아 대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선 이 맥락에서 가장 첨예한 대목은 시리아 등 중동과 동아시아 문제일 것이다.

이런 틀로 보자면 향후 북핵문제 해결 국면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고전적 대결구도가 다시 짜일 수 있게 된 셈이다. 만일 이런 구도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동아시아 정세가 미국과 그 적대세력의 힘겨루기 국면의 강화로 이어진다면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 보수세력이 우려하는 대로 북한의 사실상 핵능력 유지와 주한미군의 감축, 일본의 재무장이 순차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이런 상황을 예단하는 것은 다소 섣부른 판단이라고 할 것이다. 다만 이런 우려가 증가하는 만큼 문재인 정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건 두말할 것이 없다. 28일 청와대는 “중국 정부가 곧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 사실을 발표한다고 우리 정부에 사전 통지해왔다”고 밝혔는데, 이는 결국 사전에 김정은 방중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한반도 운전자론’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가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가 이번 일을 계기로 더 발전된 외교안보역량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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