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성범죄 보도에 있어 자극적인 삽화와 자극적인 시각이 판치고 있다. 성범죄는 어떻게 보도되어야 하는가. 27일 열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회에서 벌어진 토론은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성범죄 보도 윤리의 현실을 드러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미디어스)

논쟁의 발단은 1월 30일 방영된 <TV조선 뉴스9>이었다. 당시 TV조선은 <8년 전 그날, 법무부 장관 옆에서 버젓이…"끔찍했다"> 보도에서 남성이 여성의 허리에 손을 얹는 삽화를 내보냈다. 민원인은 방통심의위에 해당 방송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0조에 위배된다고 민원을 제기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0조는 ▲방송은 양성을 균형 있고 평등하게 묘사하여야 하며, 성차별적인 표현을 해서는 안된다 ▲방송은 특정 성을 부정적, 희화적으로 묘사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 ▲방송은 성별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등의 내용이다.

이에 대해 윤정주 위원은 “성범죄 피해자들은 피해 경험을 쉽게 잊지 못한다”며 “삽화가 건조하게 그려졌으나 피해자는 그 당시 사건이 떠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성범죄 보도는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 삽화를 자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정주 위원은 “기자들도 이를 유념해야 한다.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의견제시’를 요청했다. 심영섭 위원도 “성폭력 보도에서 2차 피해가 가장 큰 문제”라며 “꼭 손으로 허리를 만지는 그림을 써야 했는지 모르겠다”며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박상수 위원은 반대의견을 냈다. 박상수 위원은 “기자는 피해자의 진술을 토대로 기사를 썼다”며 “이런 삽화까지 문제 삼는 것은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삽화는 당시 상황을 알려주는 정보 역할을 했을 뿐”이라며 ‘문제없음’을 요청했다.

전광삼 상임위원도 “삽화 자체는 문제없다”며 “선정성도 없고, 가해자의 음흉한 모습도 심각하게 표현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컴퓨터 그래픽 자체만 보고 판단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TV조선에서 나갔던 기사. 피해자인 서 검사 위주의 보도가 이어졌다 (사진=TV조선 홈페이지 캡쳐)

방송 보도 내용에 대한 문제도 지적됐다. TV조선은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바탕으로 4개의 보도를 내보냈다. 윤정주 위원은 “성폭력 보도에서 피해 사실 자세히 밝히는 것이 경솔하다”며 “언론의 역할은 피해 사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본질을 보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정주 위원은 “기자는 (사건 현장에)검찰의 많은 사람이 있는 가운데 성희롱 성추행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더 찾아봤어야 했다”고 밝혔다.

반면 전광삼 상임위원은 “성폭력 피해를 보도하지 않을 순 없다”며 “특히 이번 보도는 자극적인 것이 아니라 단편적인 이야기를 했다. 지어낸 이야기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것을 지적한다면 성범죄 보도를 하지 말라는 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허미숙 부위원장은 “문제없다고 보긴 어렵다"며 “의견 제시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전광삼, 박상수 위원은 문제없음의 뜻을 바꾸지 않았고 결국 안건은 ‘의견제시’로 결정됐다.

이날 방송소위는 "최근 ‘미투(Me Too)’ 운동 관련 보도가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 행태로 인한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향후 동일한 사안이 발생할 경우 엄중히 심의하여 제재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기자협회 정관의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 실천 요강에는 “언론은 사진과 영상 보도에서도 피해자 등이 2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특히 삽화, 그래픽, 지도 제공이나 재연 등에 신중을 기한다”고 규정했다.

또한 “언론은 성범죄 사건의 이해와 상관없는 범죄의 수법과 과정, 양태, 그리고 수사과정에서의 현장 검증 등 수사 상황을 지나칠 정도로 상세히 보도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TV조선의 보도가 권고 기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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