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불가능할 것이라 여겨졌던 미투 운동이 전개된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현직 검사의 용기와 분노가 다 꺼진 불씨를 살렸고, 거기에는 언론 특히 JTBC의 역할이 매우 컸었다. 그 사실은 마치 미투 운동이 있기 전에 존재했던 우리나라 미투 운동의 시초이자 어쩌면 결말이 되어야 할 장자연 사건에 대한 복선이나 다름없었다.

불행하게도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 전부의 동의를 얻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미투 운동에 미온적인 사람마저도 장자연 사건만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고 할 정도다. 그리고 장자연 사건의 판박이 같았던, 자매를 연쇄 자살로 이끈 단역배우 집단 성폭행 사건은 장자연 사건의 가해자들을 처벌하지 않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무거운 경고이다.

한동안 한국 언론들은 앞 다퉈 미투 운동을 다뤘다. 아니 이윤택, 고은, 안희정 등 거물급 인사들의 몰락을 즐겼다고 하는 편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한국 언론이 진정으로 미투 운동을 본질로서 다루고자 했다면 그 시작부터 장자연 사건과 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을 끈질기게 파헤쳤을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 (갈무리)

그러나 언론은 애써 장자연 사건을 모른 척했다. 단역배우 사건에도 소극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될 이슈가 언론의 외면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일 때 시민들이 활용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바로 청와대 국민청원. 청원에 시민 20만 명 이상이 동의할 경우 청와대가 직접 나서 그 대답을 하게 돼 있다.

전직 대통령의 구속, 남북관계 급진전 등 엄청난 이슈들이 발생하는 가운데 장자연 사건의 국민청원이 20만 명을 넘기기란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SNS와 커뮤니티를 통해 이 사건만은 반드시 재규명해야 한다는 호소를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한 달을 넘기지 않고 20만 명의 조건을 충족시킨 것이다.

이제 곧 청와대에서 이 20만 명의 청원에 대해서 답을 내놓을 것이다. 또한, 이 사건의 뿌리까지 파헤쳐 가해자들이 처벌을 받기 위해서는 언론이 함께 움직여야만 한다. 그러나 언론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장자연 사건 등에 전력투구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소위 장자연 리스트에 언론계 인물들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국민청원 20만 돌파 …'장자연 사건' 진실 밝혀지나 (MBC 뉴스데스크 보도 화면 갈무리)

경쟁자여야 하는데 동업자 의식이 훨씬 강한 한국의 언론의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냐는 의혹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어쩌면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라 자기 보신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 명이 넘은 이슈는 대부분의 언론들이 다루기 마련이다. 그러나 장자연 사건 규명 요구가 20만 명을 넘었음에도 주요언론들은 대부분 침묵하고 있다.

요즘 거의 마봉춘의 옛 모습을 다 찾아간다는 MBC가 주말 <뉴스데스크>에서 마침내 장자연 사건을 보도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MBC보다는 매체 영향력이 더 큰 JTBC의 보도가 더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미투 운동으로 긴 세월 고통에 시달려온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이미 피해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 사건은 어떻게 할 것인가. 피해자들의 억울함, 가족들의 분노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장자연 사건은 9년이 지났어도 아직 끝나지 않았고, 끝나서도 안 되는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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